박구윤 “동갑 박현빈 뜰 때 난 어머니교실 7000곳 뛰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29 10:00

오랜 무명생활을 보내고 트로트 르네상스를 만끽하고 있는 '뿐이고'의 가수 박구윤. 그의 아버지는 ‘봉선화 연정’ ‘네 박자’ ‘무조건’ ‘있을 때 잘해’ 등 한국인의 애창곡을 수없이 쓴 작곡가 박현진이다. 사진 이광기

오랜 무명생활을 보내고 트로트 르네상스를 만끽하고 있는 '뿐이고'의 가수 박구윤. 그의 아버지는 ‘봉선화 연정’ ‘네 박자’ ‘무조건’ ‘있을 때 잘해’ 등 한국인의 애창곡을 수없이 쓴 작곡가 박현진이다. 사진 이광기

데뷔 14년 차인 트로트 가수 박구윤(38)은 요즘 가장 신바람 나고 긴장 된다고 했다. ‘미스터 트롯’ 등 잇단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활동무대가 넓어진 대신, 실력과 패기로 무장한 신예들과 경쟁도 거세졌기 때문이다. 최근 중앙일보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 촬영현장에서 만난 그는 “한 계단 한 계단 힘들게 올라와 겨우 자리 잡았더니 후배들이 나를 앞질러 간다”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무명생활 끝, 트로트 르네상스 만끽 중
"무대 안 가리고 최선… 지금에 약된 듯"
'미스터트롯' 3인방과 "형제 같은 사이"
"아버지가 쓴 임영웅 곡, 내가 가이드"

후배들에는 트로트 르네상스 주역인 임영웅‧영탁‧이찬원도 포함된다. 아무래도 방송‧행사무대가 겹치다보니 그들 데뷔 때부터 지켜봤고 끈끈한 형제처럼 지내왔다. 임영웅은 “트롯계의 신사이자 설운도 선배님과 흡사한 노래꾼”이고 영탁은 “붙임성 좋고 선후배 챙기는 게 또 하나의 나를 보는 느낌”이란다. 이찬원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는 애늙은이”이며 “작곡가들 생년월일까지 다 꿰고 있는 백과사전”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전국민방이 제작한 '전국 Top10 가요쇼'에 이른바 '영 텐'으로 불리운 젊고 실력있는 가수 10명과 함께 출연해 오프닝 무대에서 '뿐이고'를 부른 뒤 후배들과 포즈를 취한 박구윤. 왼쪽부터 소유찬, 최현상, 박구윤, 영탁, 임영웅. 이날 영텐에 이찬원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박구윤

지난해 9월 전국민방이 제작한 '전국 Top10 가요쇼'에 이른바 '영 텐'으로 불리운 젊고 실력있는 가수 10명과 함께 출연해 오프닝 무대에서 '뿐이고'를 부른 뒤 후배들과 포즈를 취한 박구윤. 왼쪽부터 소유찬, 최현상, 박구윤, 영탁, 임영웅. 이날 영텐에 이찬원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박구윤

‘5060의 아이유’로 칭송받는 송가인도 조은심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할 때부터 고민 상담해주던 사이였다. “실력은 최고인데 알려질 기회가 없어 안타까웠는데 국민가수로 사랑받으니 마치 내 일처럼 기쁘다”고 돌아봤다.

"임영웅은 신사, 영탁 붙임성 좋아…이찬원은 백과사전”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 결승전에서 부른 미션곡 ‘두 주먹’은 그의 아버지 작품이다. 부친 박현진(70)씨는 현철의 ‘봉선화 연정’ 송대관의 ‘네 박자’ 박상철의 ‘무조건’ 배일호의 ‘신토불이’ 등 전국민의 애창곡을 숱하게 쓴 작곡가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그를 부르더니 “영웅이가 연습할 곡”이라며 “네 느낌을 살려 불러봐다오” 하더란다. 임영웅을 우승으로 이끈 곡을 그가 가이드 녹음해줬다는 얘기다. “우승 후에 연락 왔느냐”고 물으니 “지금이 (그가) 가장 바쁠 때 아니냐. 축하와 감사 문자만 주고받았다”고 했다.

박구윤이 부른 ‘뿐이고’ ‘나무꾼’은 지난해 KBS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부른 노래 공동 5위에 올랐다. 2010년 발표한 ‘뿐이고’ 덕에 2012년 대중가요 저작권료 수입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정작 트로트가수로 방향을 잡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히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시절 박효신‧김범수‧빅마마‧거미‧이적 등의 코러스로 활동할 땐 막연히 ‘R&B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단다.

“어렸을 때부터 동요보다 트로트가 친숙했던 ‘모태 트로트’였지만, 그래서 더 싫었어요. ‘나의 음악이 있다,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장윤정‧박현빈 등 트로트 신예들이 치고 나오고, 특히 동갑내기 박현빈이 2006년 축구월드컵 때 ‘빠라빠빠’로 뜨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사랑받고 싶다’ 부러워했지요.”

“무명시절 어머니교실 7000곳 이상 다녀”

막상 트로트 가수를 한다고 하자 아버지는 깐깐한 트레이너로 돌변했다. “내 곡을 부를 만한 깜냥이 안 된다”며 수차례 퇴짜를 놨다. 혹독한 훈련 끝에 받은 곡 ‘말랑말랑’으로 2007년 데뷔했다. 아버지 후광을 입기 싫어 성을 빼고 ‘구윤’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지만 반응이 더뎠다.

가수 박구윤(왼쪽)의 아버지 박현진은 ‘봉선화 연정’ ‘네 박자’ ‘무조건’ ‘있을 때 잘해’ 등 한국인의 애창곡을 수없이 쓴 작곡가다. 사진 박구윤

가수 박구윤(왼쪽)의 아버지 박현진은 ‘봉선화 연정’ ‘네 박자’ ‘무조건’ ‘있을 때 잘해’ 등 한국인의 애창곡을 수없이 쓴 작곡가다. 사진 박구윤

트로트 가수 박구윤은 무명시절 각종 행사장에서 단련된 끼와 순발력으로 흥겨운 무대를 이끌어낸다. 사진 박구윤

트로트 가수 박구윤은 무명시절 각종 행사장에서 단련된 끼와 순발력으로 흥겨운 무대를 이끌어낸다. 사진 박구윤

“불러주기만 하면 산골 오지라도 갔어요. 전국 어머니교실만 7000군데 이상 다닌 듯해요. 매니저도 없이 직접 운전하며 70만km를 주파한 승합차를 5년 만에 갈아치울 정도였죠. 덕분에 전국 곳곳 가성비 좋은 식당과 숙소는 누구보다 훤하답니다.”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다행히 그를 이끌어준 지인들이 있었다. “무대 따지지 말고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라” “방송 현장 구경이라도 하면서 감을 느껴라”는 조언을 새기며 매 순간 연습생 기분으로 버텼다. 이렇게 배운 방송 매너와 순발력은 2집 ‘뿐이고’가 터진 뒤 빠르게 예능 프로에 입성하는 데 바탕이 됐다. “돌아보면 세월이 약이고 무명생활 덕에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헤쳐갈 희망곡 들려드릴게요”

이젠 후배들이 늘어나 ‘낀 세대’가 되고 보니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단다. 최근엔 MBC에브리원의 경연대회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해 신인 시절의 긴장감을 되살리기도 했다. 지난 25일 방송분에서 박구윤은 ‘자옥아’를 불러 4라운드 최종 1위를 차지했다. “그런 현장에서도 어마어마한 트로트 열풍을 느낍니다. 마치 그동안 묻혀있던 걸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특히 젊은 친구들의 호응 덕에 세대의 벽을 허무는 듯해 더 기쁩니다.”

트로트의 매력에 대해선 “그 자체로 희로애락이 담겨있다”고 표현했다. 특히 자신이 부른 ‘뿐이고’ ‘나무꾼’을 비롯해 아버지 박현진 작곡가의 곡엔 긍정과 희망이 두드러진다고. 요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도 희망곡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전 아버지가 연락하셔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곡을 써보겠다’고 하셨어요. 힘들고 지칠 때 자양강장제가 될 수 있는 노래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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