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주디 갈랜드 변신한 젤위거…'오버 더 레인보우' 눈물의 라이브

중앙일보

입력 2020.03.28 13:58

업데이트 2020.03.29 15:01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가수 주디 갈란드의 마지막 런던 공연을 다룬 영화 '주디'. 주연배우 르네 젤위거가 노래실력과 외모를 빼닮게 연기해 올 시상식 시즌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진 퍼스트런]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가수 주디 갈란드의 마지막 런던 공연을 다룬 영화 '주디'. 주연배우 르네 젤위거가 노래실력과 외모를 빼닮게 연기해 올 시상식 시즌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사진 퍼스트런]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훨씬 높은 곳에)."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주제가 ‘오버 더 레인보우’다. 당시 17살의 주연 배우 주디 갈랜드가 직접 불러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그가 맡은 캔자스 시골소녀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신비의 나라 오즈에 갔다가 각고의 모험 끝에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주디 갈랜드의 운명은 도로시와 달랐다.

명곡 '오버 더 레인보우' 그 목소리
요절한 할리우드 전설 주디 갈랜드
전기영화 '주디' 르네 젤위거 주연
노래 직접 불러 16년만에 아카데미상

이 영화로 할리우드 정상급 아이돌로 떠오른 그는 빼어난 가창력과 연기로 흥행을 거듭했지만, 어른들의 탐욕은 그를 망가뜨렸다. 돈에 눈먼 영화사(MGM)는 그에게 제대로 된 음식 대신 식욕과 잠을 억제하는 각성제를 먹이고, 수면제로 쪽잠을 재우며 하루 18시간씩 촬영을 강행시켰다. 1969년 47세에 약물과다로 사망한 순간에도 그에겐 돌아갈 집이 없었다.

요절한 아이돌의 생애 마지막 콘서트

25일 개봉한 영화 ‘주디’(감독 루퍼트 굴드)는 주디 갈랜드가 1969년 런던에서 가진 생애 마지막 콘서트를 담는다. 연극 ‘무지개 끝에서’가 토대다. 그가 세상을 떠난 그해 태어난 배우 르네 젤위거가 주연을 맡아 올해 아카데미·골든글로브·미국배우조합상 등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주디에겐 스타로서의 명성이 자신을 할퀴는 흉기가 됐던 시기다. 노래는 삶에 마지막 남은 온기이자, 영혼의 언어였다. 런던에서 수일간 이어진 콘서트 무대에서 그는 술에 취해 비틀대면서도 진심을 다해 노래했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 잇는 캐스팅

지난달 9일 르네 젤위거가 영화 '주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콜드마운틴'으로 2004년 여우조연상을 받은 지 16년 만이자 두 번째 아카데미 연기상이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9일 르네 젤위거가 영화 '주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콜드마운틴'으로 2004년 여우조연상을 받은 지 16년 만이자 두 번째 아카데미 연기상이다. [EPA=연합뉴스]

“젤위거는 쉽게 희화화되곤 했던 이 배우(주디)의 그림자까지 표현해낸다. 그리고 노래도 한다.” 미국 타임지의 호평이다. ‘주디’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노래와 연기 모두 가능한 배우는 르네 젤위거 외에 없었다”고 했다.

‘제리 맥과이어’(1996)에서 싱글맘 도로시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20파운드(9kg) 체중증량까지 감행한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로 세계적인 흥행을 거뒀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2)에선 남편 살해범으로 체포된 후 꿈꾸던 스타가 된 록시 하트 역을 맡아 흡인력 있는 가창력까지 선보였다. 연기폭도 넓다. 영화 ‘너스 베티’(2000)에선 자신을 드라마 주인공이라 착각하는 캐릭터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콜드마운틴’(2003)에선 강인한 시골여인 역으로 아카데미·골든글로브·미국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2)에서 르네 젤위거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교도소의 스타가 되는 록시 하트를 연기했다. [사진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뮤지컬 영화 '시카고'(2002)에서 르네 젤위거는 우발적인 살인으로 교도소의 스타가 되는 록시 하트를 연기했다. [사진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젤위거 "주디는 10만명 중 1명"

젤위거는 “주디는 10만명 중 1명 있을까 한 특별한 사람”이라며 배역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다. “그의 이야기와 노래를 듣고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가 이 역할을 맡아도 되나?’ 싶었다”면서 “하지만 걱정 대신 차라리 뭔가 더 배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을 맡았던 당시 17살의 주디 갈랜드 실제 모습이다. [사진 워너홈비디오]

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 도로시 역을 맡았던 당시 17살의 주디 갈랜드 실제 모습이다. [사진 워너홈비디오]

그렇다 해도 넘보기 힘든 실력이다. 주디 갈랜드는 2살 때 작은 무대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것을 시작으로 3살부터 두 언니와 ‘검 시스터즈’(갈랜드의 본명은 ‘프란시스 검’이다)로 활동했다. 1935년 MGM 오디션에 합격 후엔 ‘오즈의 마법사’로 아카데미 아역상, 영화 ‘스타탄생’(1954)로 골든글로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무대로 돌아간 1961년 뉴욕 카네기홀 공연 실황을 담은 ‘주디 앳 카네기홀’로 그래미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최우수 여자 보컬상을 안았다.

이번 영화 '주디'에서 10대 시절 주디(다르시 쇼)가 '오즈의 마법사' 촬영 세트장에 들어선 순간을 담은 오프닝 장면. 어린 주디 옆에 선 사람은 그를 혹독하게 '가스라이팅'한 할리우드 영화사 MGM 설립자 루이 B 메이어(리처드 코더리)다. [사진 퍼스트런]

이번 영화 '주디'에서 10대 시절 주디(다르시 쇼)가 '오즈의 마법사' 촬영 세트장에 들어선 순간을 담은 오프닝 장면. 어린 주디 옆에 선 사람은 그를 혹독하게 '가스라이팅'한 할리우드 영화사 MGM 설립자 루이 B 메이어(리처드 코더리)다. [사진 퍼스트런]

노래 장면 촬영장서 라이브로 불러 

그럼에도 루퍼트 굴드 감독은 젤위거에게 영화 속 노래들을 촬영장에서 라이브로 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제 주디가 당시 했던 것처럼 말이다. 젤위거는 이 도전을 받아들였다.

촬영 1년 전부터 아리아나 그란데, 션 멘데스 등 할리우드 스타의 보컬 코치로 유명한 에릭 베트로에게 성대 훈련을 받았다. 목소리 톤이 높은 편인 그는 주디 갈랜드의 저음에 다다르기 위해 특히 애썼다. 촬영현장까지 지속된 연습 과정으로 후두염, 성대 긴장, 염증,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주디가 잘한 공연뿐 아니라 컨디션 난조로 망친 공연까지 연기해내야 했다.

영화에서 르네 젤위거는 위태롭게 생활하면서도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 어머니로서의 주디도 표현했다. 극 중 그는 "자식은 몸 밖에 있는 심장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어린 남매는 세번째 결혼에서 얻은 로나와 조이. 두 번째 남편인 영화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얻은 맏딸 루이자는 장성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온다. [사진 퍼스트런]

영화에서 르네 젤위거는 위태롭게 생활하면서도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 어머니로서의 주디도 표현했다. 극 중 그는 "자식은 몸 밖에 있는 심장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어린 남매는 세번째 결혼에서 얻은 로나와 조이. 두 번째 남편인 영화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얻은 맏딸 루이자는 장성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온다. [사진 퍼스트런]

여기에 특수 분장을 더했다. ‘닥터 스트레인지’(2016) ‘설국열차’(2013) 등에 참여한 메이크업·헤어 디자이너 제레미 우드헤드가 주디 갈랜드의 사진을 낱낱이 조사해 젤위거의 코에 보형물을 붙이고 가장 들어맞는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을 완성했다.

주디, 할리우드 피해자 아닌 생존자

“너보다 예쁜 애들은 널렸어.” “네 이름은 프란시스 검이야. 넌 그랜드래피즈 출신의 뚱뚱한 촌뜨기고 네 아빠는 게이, 엄만 돈에 눈먼 여자지. 이제 니가 누군지 기억나니 주디?”

MGM의 설립자 루이 B 메이어가 어린 주디를 ‘가스라이팅’하며 자존감을 바닥나게 만든 폭언들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주디는 네 번의 결혼 모두 실패했다. 영화엔 그가 한밤중 어린 두 아이와 숙박료가 밀린 호텔에서 쫓겨나는 장면도 나온다.

최근 '스타 이즈 본'으로 리메이크된 영화 '스타탄생' 1954년 개봉판에서 32세의 실제 주디 갈랜드. 무명 가수 에스더가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연기했다. [사진 워너홈비디오]

최근 '스타 이즈 본'으로 리메이크된 영화 '스타탄생' 1954년 개봉판에서 32세의 실제 주디 갈랜드. 무명 가수 에스더가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연기했다. [사진 워너홈비디오]

각본을 맡은 톰 엣지는 그러나 비극적인 인물로 알려진 주디가 결코 “피해자로만 느껴지지 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주디는 할리우드의 생존자였고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다.

성탄절마다 듣던 캐럴도 주디 갈랜드

주디 갈랜드가 빛나는 순간은 무대 위다. 지금도 성탄시즌마다 들려오는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 등 무수한 명곡이 영화 내내 주크박스처럼 흐른다. 두 번째 남편 빈센트 마넬리 감독과 함께한 영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1944)에 수록됐던 ‘더 트롤리 송’에 맞춰 깃털 단 무희들과 선보이는 춤사위는 노련하고도 흥겹다. 르네 젤위거는 이 단독 콘서트를 유려하게 소화해낸다.

그가 오랜 팬인 게이 커플의 소박한 피아노연주에 맞춰 ‘겟 해피’를 부르는 장면도 뭉클하다. 그들이 겪어온 차별의 시간들을 껴안아주듯, 그는 초연한 표정으로 “고민을 제쳐두고 행복해지라”는 가사를 가만히 들려준다. 진 켈리와 출연한 영화 ‘썸머 스톡’(1950)에서 유쾌하게 불렀던 원곡의 원숙한 변주다.

10년여 만에 제2 전성기 맞은 젤위거  

여기엔 배우로서 르네 젤위거의 삶의 무게도 실렸다.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았던 그는 최근 10년여 간 인정받은 작품이 드물었다. 이번 영화로 연기가 되살아났다는 평가다.

영화 '주디'에서 르네 젤위거는 고음인 원래 목소리를 바꿔 주디 갈랜드의 저음 노래 장면까지 직접 소화했다. 무대 세트는 실제 주디 갈랜드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1960년대 런던 ‘토크 오브 더 타운’ 공연장을 재연했다. [사진 퍼스트런]

영화 '주디'에서 르네 젤위거는 고음인 원래 목소리를 바꿔 주디 갈랜드의 저음 노래 장면까지 직접 소화했다. 무대 세트는 실제 주디 갈랜드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1960년대 런던 ‘토크 오브 더 타운’ 공연장을 재연했다. [사진 퍼스트런]

그는 이번 영화에서 한층 깊어진 감정을 루퍼트 굴드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그의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주디’가 겪은 외로움, 소외, 어려움을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즘은 뭔가 서둘러 진행해서 빨리 결론에 도달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감정들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줬고 내가 주디 갈랜드의 감정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고 했다.

30년 세월 녹인 '오버 더 레인보우'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디'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은 르네 젤위거 뒤로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왼쪽)과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보인다. [AP=연합뉴스]

지난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디'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은 르네 젤위거 뒤로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왼쪽)과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보인다. [AP=연합뉴스]

영화가 절정을 이루는 건 쉰을 바라보던 주디가 30년 전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장면이다. 감정이 북받쳐 노래를 멈춘 그 대신 객석에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디는 눈물을 흘린다. ”새들은 무지개를 넘어가는데 왜 나는 그럴 수 없을까(Birds fly over the rainbow, Why then oh why can‘t I).“ 한때 한탄 같았던 노랫말이 다르게 다가온다.

주디의 노래에 숨결을 불어넣은 젤위거에게도 이 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의 전설 주디 갈랜드가 아니라 일찌감치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어야 했고 악의와 풍자의 시선에서 보호 받아 마땅했던 아름다운 여성을 포옹하는 마음으로 제작진 모두 참여했다. 마치 수백명이 모여 그를 감싸고 응원하는 듯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50년 뒤 이 현장에 존재 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

24년 전 '제리 맥과이어'에서 르네 젤위거.연기한 싱글맘 역할의 이름도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디 갈랜드가 연기한 주인공과 같은 '도로시'였다. 뒷모습은 상대역의 톰 크루즈. [사진 피터팬픽쳐스]

24년 전 '제리 맥과이어'에서 르네 젤위거.연기한 싱글맘 역할의 이름도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디 갈랜드가 연기한 주인공과 같은 '도로시'였다. 뒷모습은 상대역의 톰 크루즈. [사진 피터팬픽쳐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