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령 때도 눈감아주던 술···야구장보다 배달 먼저한 막걸리

중앙일보

입력 2020.03.28 05:00

장수 생막걸리가 제조죄고 있는 생산 현장.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장수 생막걸리가 제조죄고 있는 생산 현장.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막걸리 마시고 취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알코올 도수(6~8%)가 상대적으로 낮고 당도도 다른 술보다 높은 걸쭉한 막걸리를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다가 과음해서 숙취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32.장수막걸리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막걸리가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취하는 줄 모르고 계속 맛있게 먹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저렴해 이제 전국적으로 누구나 음용하는 전통주로 자리 잡았다.

양조장 막걸리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배달 

서울 시내 곳곳에 산재하던 개인 소유 양조장.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서울 시내 곳곳에 산재하던 개인 소유 양조장.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맑은 청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탁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대로 막걸리는 선조들이 애용하던 술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흉년에 금주령(禁酒令)을 내린 마을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탁주(막걸리)는 요기(療飢·시장기를 면하다)가 되기 때문에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더라도) 그냥 넘어간다’고 언급했다.

약 120년 전부턴 양조장에서 상업적으로 막걸리를 제조·판매하는 시대가 열렸다. 당시 서울 시내에만 51개 양조장이 만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51개 양조장은 서로 다른 공정과 레시피를 보유했다. 그래서 어느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막걸리의 맛과 향 등 특징이 달랐다.

일제 강점기 한국 주류 산업의 역사를 기록한 책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에 따르면, 국내 51개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된 최장수 양조장은 1909년 문을 연 무교양조장(武橋釀造塲)이다. 여기서 출발한 레시피를 이어받은 막걸리가 바로 서울장수주식회사의 ‘장수 생막걸리(이하 장수막걸리)’다.

통일벼 덕분에…막걸리 소비 3배 늘어 

1960~70년대 양조장 이미지.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1960~70년대 양조장 이미지.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서울 시내 곳곳에 산재하던 개인 소유 양조장은 62년 서울주조협회(현 서울탁주제조협회)를 설립하면서 통합한다. 다시 말해, 서울탁주제조협회는 서울시에 있던 51개의 양조장이 모여 만들어진 막걸리 합동 제조장이다.

물론 당시에는 장수막걸리라는 브랜드는 없었고, 큰 통에 막걸리를 담아 일일이 집집마다 배달하는 방식으로 막걸리를 판매했다. 양조장에서 제조해서 소비자들이 실제로 마시는 시점까지 온도 변화에 따른 품질 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에, 양조장에서 만든 막걸리는 직접 유통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런 유통 방식이 달라진 계기는 77년 국내 막걸리 유통업계가 도입한 페트병이다. 페트병 도입 이전까지는 막걸리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통 과정에서 어느 정도 품질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페트병이 도입되면서 변질 없는 막걸리 유통이 비로소 가능해졌다. 서울주조협회도 막걸리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레시피를 하나로 통일해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곡물을 발효해서 제조하는 막걸리는 한때 식량난으로 제조가 금지되기도 했다.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곡물을 발효해서 제조하는 막걸리는 한때 식량난으로 제조가 금지되기도 했다.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63년쯤 만성적인 식량 부족으로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쌀을 원료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행위를 금지했다(순곡주 제조 금지령). 어쩔 수 없이 밀가루·옥수수·보리 등을 섞어 막걸리를 빚었지만, 맛이 달라지자 막걸리 소비가 크게 줄었다. 서울장수주식회사에 따르면, 60년 약 100만 ㎘ 안팎이던 막걸리 생산량은 정부 조치 3년 후인 66년 약 50만㎘로 급감한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쌀을 증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막걸리 업계도 다시 쌀로 막걸리 제조가 가능해졌다. 덕분에 77~80년 막걸리 생산량(150만~160만㎘)은 66년 대비 3배 이상 상승한다.

31개국 외국인도 사랑하는 글로벌 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주류 판매 코너.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다. 중앙포토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주류 판매 코너.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다. 중앙포토

서울탁주제조협회는 2009년 산하 법인 서울장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서울장수주식회사가 장수막걸리라는 브랜드를 정식으로 선보인 건 96년이다. 막걸리의 브랜드화가 시작하고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면서 막걸리는 명실상부 국민주로 떠올랐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3분기 막걸리 매출액은 3087억원을 기록했다. 추세적으로 보면 연간 4000억원 넘게 팔린다는 뜻이다.

장수막걸리는 가장 오래된 막걸리 브랜드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막걸리기도 하다. 하루 평균 50만병을 생산한다. 장수막걸리를 제조하는 서울장수주식회사는 “유통기한을 10일로 고집한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한다. 생막걸리는 효모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특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짧은 유통기한을 고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수막걸리 패키지. 왼쪽부터 1996년, 1997년, 2000년, 2010년, 2011년, 2020년 패키지.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장수막걸리 패키지. 왼쪽부터 1996년, 1997년, 2000년, 2010년, 2011년, 2020년 패키지. [사진 서울장수주식회사]

이렇게 효모 활동 기간을 준수하면서 장수막걸리가 노린 것은 톡 쏘는 듯한 자연 탄산 느낌이다. 막걸리를 음용하는 사람에게 자연 탄산의 느낌을 배가하기 위해서 발효공학·미생물학·양조학 분야의 식품공학 전문가가 진천공장·연구소에 상주하고 있다. 또 도정실·증자실·발효실 등 체계적인 제조·관리 시설도 도입했다.

장수막걸리는 이제 생 막걸리뿐만 아니라 월매 쌀막걸리, 홍삼 막걸리, 장홍삼 장수막걸리 등 브랜드를 확대하면서 31개 국가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일본·미국·태국 수출을 처음으로 시작했고, 2011년에는 롯데주류·산토리와 함께 일본 산토리 수출 전용 막걸리도 개발했다.

중국·베트남에서도 막걸리는 인기 수출품이다. 막걸리 수출액의 절반은 일본(50%)이며, 미국(15%)·중국(6%)·호주(4%)·베트남(4%) 순으로 막걸리가 많이 팔린다. 백여년 전 집집마다 가정에서 담가 먹던 막걸리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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