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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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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도민 1364만 명 전원에게 1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1조3642억원의 예산을 투입합니다. 지역 화폐로 지급하고 3개월이라는 사용 기간이 적용되지만 사실상 현금 지급입니다. 일부 기초단체도 일정액의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지원을 엄밀히 정의하면 ‘기본 소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에게(보편성)▶자산 심사나 노동 조건 없이(무조건성)▶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개별성) ▶정기적으로 지급해야 기본소득입니다. 이번에 주민에게 주는 돈은 일회성 ‘재난 지원금’ 정도로 봐야겠죠. 그럼에도 이번 대책에 기본 소득이라는 용어를 붙이면서 새로운 실험의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합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왼쪽), 염종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왼쪽에서 세번째)과 함께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경기도]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4일 오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왼쪽), 염종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왼쪽에서 세번째)과 함께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 경기도]

기본소득은 진보-보수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입니다.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생산물을 분배할 때 공동체 구성원에게 일부를 먼저 균등하게 할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수 쪽이 기본 소득 정책을 검토하는 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철학과 맞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수급자에게 제공하는 복잡한 복지제도를 없애고 대신 그 서비스를 이용할 돈을 개인 통장에 넣어 주자는 게 보수 쪽의 시각입니다. 수급자를 선별하는 행정 비용이 들지 않죠. 조직도 필요 없습니다.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복지 시스템입니다.

진보 쪽은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합니다. 일을 해도 복지 사각지대에 갇혀 일어설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복지 제도를 확장해도 사각지대는 생기는 법입니다. 이런 소외 계층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 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이들은 앞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기본 소득을 도입해 ‘바닥 높이기’를 하면 이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건넬 수 있다는 게 진보 쪽의 시각입니다.

좌우의 논리, 나름 체계를 갖췄습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죠.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을 막을 방법은 있는지요. 사람에게 노동의 대가 없이 돈을 지급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일하지 않고 놀까요. 일정 소득이 보장되는 인간적 환경이 갖춰지면 하고 싶은 일을 찾을까요.

기본 소득 도입과 관련한 질문은 이렇게 한둘이 아닙니다. 복지 체계를 새롭게 짜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새로운 패러다임이죠. 그래서 단기간에 한두 사람이 도입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되고,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토론을 거쳐 정치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하는 거대한 담론입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기본소득 논의는 좌표를 잃고 엉뚱한 해로에서 표류한다는 느낌입니다. 기본 소득은 현금을 주는 보편복지입니다. 모든 사람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당장은 환영하겠죠. 이 돈을 소비하도록 해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마중물로 쓰자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고소득층에게 푼 돈 줘 봤자 주머니에 그대로 잠기거나 통장으로 들어갈 공산이 큽니다. 반면에 저소득층에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모두에게 10만원을 주는 것과 소외계층에 50만원을 주는 것 중 어느 쪽이 ‘바닥 높이기’에 효과가 있을까요.

모두에게 10만원을 주겠다는 발상은 선거를 앞두고 표를 끌어모으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게 아닐까요. 재난기본소득이 일회성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능력껏 일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면 됩니다. 재정적 지원은 스스로 구제하기 힘든 사람에게 집중하고, 이들이 근로의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게 지금 단계에서는 더 필요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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