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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7월부터 도시공원일몰제…우리동네 공원도 사라질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56)

우리나라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곳은 어디일까. 2월에 발표한 공시지가를 보니 명동이었다. 올해만 그런 게 아니고 수년 전부터 그랬다. 명동은 왜 이렇게 땅값이 비싼 걸까. 교통의 요지이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과거 국립극장을 비롯해 공연장이 몇 개나 되었다. 명동은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군부 독재 시절 이곳에 시민들이 모여 우리나라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동에 상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민가도 있었고 인근에 초등학교도 두 개나 되었다. 어린 시절 나도 이곳에서 자랐다. 대학에 다닐 땐 충무로에 있는 고전음악감상실에 들락거렸고 졸업을 하고는 명동에 있는 금융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명동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어쩌면 명동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지켜본 증인인 셈이다. 몇 년 전 명동 예술극장 측에서 나와 같은 추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초청해 명동 투어를 진행한 일이 있다. 그때 몇몇 시민과 명동을 거닐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과거 명동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상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지역이다. 공원 가까이에 우리 집이 있었다. 길 건너에 있던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공원에 가서 놀았다. 공원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미끄럼틀도 있고 그네 같은 놀이터도 있었다. 그곳에 어린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웃 어른도 여기저기에 모여 서로 얘기꽃을 피웠다.

과거 명동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은 크지 않았지만 미끄럼틀도 있고 그네 같은 놀이터도 있었다. [사진 Pixabay]

과거 명동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공원은 크지 않았지만 미끄럼틀도 있고 그네 같은 놀이터도 있었다. [사진 Pixabay]

당시에는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지금처럼 내세울 만한 기업이 별로 없었다. 딱히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은 공원에 모여 각자 걱정거리나 희망을 나누었다. 이렇게 시민의 쉼터 역할을 했던 공원은 1966년 당시 서울시장에 의해 폐쇄된다. 상가가 인근에 하나둘 들어서자 공원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1968년 평당 46만원에 팔려 사라지고 말았다. 명동의 유일한 공원이 없어진 것이다.

뉴욕에 가보니 맨해튼 미드타운 한가운데 브라이언트 공원이 있다. 처음 공원이 조성될 때 이렇게 땅값이 비싼 곳에 공원을 만들어야 하냐고 시민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진통 끝에 결국 공원은 조성되었다. 주변에 상가가 즐비하지만 공원은 아직도 건재하다. 오히려 지금은 삭막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명동에 있는 금융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이미 명동공원이 없어진 후였다. 가끔 점심을 먹고 공원이 있던 곳을 산책하며 명동에 이런 공원이 지금도 있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새로 조성하기도 어려운데 우리는 있는 것도 없애버렸으니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명동에 쇼핑을 온 외국인이 공원 하나 없는 우리 명동을 보며 과연 어떤 느낌을 갖고 돌아갈지도 궁금하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학 교수이자 프리츠커상 심사위원 배리 버그돌이 어느 지자체의 초청으로 내한한 적이 있다. 기자가 그에게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을 물었더니 공원이 어디에나 널려 있고, 상업적인 거리와 주택가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와 동석한 유현준 홍익대 교수도 도심에 작은 공원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동에 작은 공원을 하나 조성하려면 돈이 얼마나 소요될까. 국토교통부가 2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 부지 공시지가가 1㎡당 1억9900만원으로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 평당으로 환산하면 6억5600만원이다. 두 번째로 비싼 곳은 명동 2가의 우리은행 부지로 1㎡당 1억9200만원이다. 역시 평당으로 환산하면 6억3300만원이다.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 공원. 처음 공원이 조성될 때 이렇게 땅값이 비싼 곳에 공원을 만들어야 되냐고 시민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진통 끝에 결국 공원은 조성되었다. [사진 Pixabay]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 공원. 처음 공원이 조성될 때 이렇게 땅값이 비싼 곳에 공원을 만들어야 되냐고 시민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진통 끝에 결국 공원은 조성되었다. [사진 Pixabay]

명동공원은 그 사이에 있었으니 아마 이들 가격에 버금갔을 것이다. 그런 공원을 그때 평당 46만원에 팔았다. 서울시에서 그 땅을 소유하고만 있어도 1300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그만한 땅장사도 없다. 이제 그곳에 공원을 조성하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자되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지금으로써는 힘에 벅찬 일이다. 다만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 한다.

올해 7월부터 도시공원일몰제가 시행된다. 도시공원일몰제란 정부가 개인 사유인 토지를 도시계획시설상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고 20년 동안 공원조성을 하지 않으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제되면 토지소유자는 구역에 맞는 개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시민으로서는 그동안 이용하던 공원이 없어지게 된다. 선진국보다 그나마 부족한 녹지 시설이 더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땅이 곳곳에 널려있다.

사실 도시공원 조성은 진즉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기한이 닥쳐서야 발에 떨어진 불똥이 되었다. 지금으로써는 도시지역의 땅값이 너무 올라 지자체가 시세대로 매입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개인의 소유권 행사를 마냥 미룰 수만도 없는 처지다. 자칫 손을 놓고 있다가는 명동 공원과 같은 정책실수가 빚어질 수 있다. 지자체와 토지소유자, 그리고 도시건축전문가가 모여 어느 정도 양보와 배려를 통해 시민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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