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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경영권 오늘 '운명의 날'···11.16% 뒤진 조현아 카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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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주주총회서 표 대결 돌입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제6기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 중앙포토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제6기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 중앙포토

재계 13위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다투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의 분쟁이 오늘(27일) 오전 판가름 난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한진칼은 이날 오전 9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진빌딩 본관 26층에서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한진칼 소액주주가 던진 표가 국내 최대 운송 그룹의 경영권을 좌우한다. 장장 3개월가량 다투던 양측이 주주들의 심판을 받는 셈이다.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인 대주주 남매와 함께 지분 경쟁에 나선 당사자들 뿐 아니라, 재계 전반이 숨죽이고 주총을 지켜본다. 대한민국 대규모기업집단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양측이 초박빙 지분을 들고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어서다. 조원태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다면, 국내 대표 기업에서 오너가 지분 대결에서 경영권을 잃게 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는 것이어서다. 또한 양측이 그간 소송전·폭로전과 함께 가족간 막장 분쟁 등 숱한 화제를 낳아 사회 전반의 시선이 쏠린 상황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상속세로 발동동 

지난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석태수 한진칼 대표가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석태수 한진칼 대표가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1월 한진그룹 정기 임원인사였다. 조원태 회장은 이날 조현아 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의 복직을 배제했다. 물론 기존에도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갈등설은 종종 제기됐다. 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남매간 갈등이 수면으로 드러났다. 경영 복귀가 무산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조원태 대표가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한다”고 비판했다.

누나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생활고 때문으로 알려진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 회항’ 논란으로 지난 2014년 12월 퇴사한 이후 만 5년 넘게 별다른 수입이 없다. 2017년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잠시 복귀했지만, 동행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로 1달 만에 다시 물러났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중앙포토

조현아 전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중앙포토

퇴사 시점인 2014년 대한항공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조현아 전 부사장은 그 해 급여(4억5828만원)·기타근로소득(3억4020만원)·퇴직소득(6억7735만원) 등 14억7583억원을 받았다. 급여가 끊긴데다가 아버지인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물려준 한진칼 지분에 대한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워 온 것으로 알려진다. 조 전 부사장이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는 6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2018년 4월부터 이혼소송도 진행 중이다.

남매의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은 평소 친분이 있던 권홍사 반도건설그룹 회장에게 조현아 전 부사장의 고충을 설명했다는 것이 이번 사태에 정통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권홍사 회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권 회장에게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을 경영하면 3년 안에 망한다”며 “도와 달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반도건설그룹·KCGI와 함께 이른바 ‘3자 연합’을 결성한 계기다.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중앙포토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 중앙포토

11.16%포인트 차이 넘어서기 쉽지 않을 듯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중앙포토

지난 100여 일 동안 합종연횡하던 한진그룹 대주주 일가는 이번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돌입한다. 현재까지 상황은 조원태 회장 측에게 매우 유리하다.
조원태 회장(6.52%)은 어머니(이명희·5.31%)·동생(조현민·6.47%)·델타항공(10.0%)과 손을 잡았다. 카카오(1.0%)·GS칼텍스(0.25%)도 우호지분으로 확보했다. 또 정석인하학원·일우재단·정석물류학술재단 등 특수관계인까지 고려하면 최대 37.49%의 의결권이 있는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주주명부 폐쇄 이전 기준). 여기에 한진칼 지분 2.9%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찬성하기로 26일 결정했다. 이미 최소 40.39%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3자 연합의 의결권 있는 지분은 28.78%다. 반도건설이 보유한 일부 지분(3.2%)은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자 연합이 그간 위임장을 대거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11.16%포인트 차이를 넘어서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는 평가다.

김신배 후보, 사내 이사에 선임될까 

이날 다룰 주요 안건은 ▶재무제표 승인 ▶이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정관 변경 등이다. 이중 양측이 제시한 이사 후보 찬반 안건이 핵심이다. 한진그룹 측은 조원태·하은용 후보를, 3자 연합은 김신배·배경태 후보를 사내이사로 추천했다. 현재 사내이사진을 장악한 한진그룹이 한 자리라도 3자연합 측에 내준다면 사실상 3자 연합의 판정승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김신배 후보 선임 안건에 찬성을 권고했다.

한진그룹 위기극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성부 대표(오른쪽)과 김신배 전 SK 부회장. 연합뉴스

한진그룹 위기극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성부 대표(오른쪽)과 김신배 전 SK 부회장. 연합뉴스

사외이사진에 3자 연합이 추천한 후보가 진입할 여지도 있다. 한진칼 정관이 이사 총수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체 주식의 25% 찬성 ▶주총 참석 주식의 50% 찬성 등 요건을 갖추면 9명 모두 사외이사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사외이사진으로 한진그룹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5명을, 3자 연합은 서윤석 전 이화여대 교수 등 4명을 제안했다.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내에서 경영하는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 사외이사의 특성상 몇 명이 이사회에 진출하느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장기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1차전은 져도 전투는 이어진다  

강성부 KCGI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IFC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성부 KCGI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동 IFC빌딩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만약 이날 3자 연합이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대거 확보한다면 대한민국 재계 역사에 남을 역전극이 펼쳐진다. 국내 최대 항공사(대한항공)를 거느린 대한민국 최대 운송기업 경영진이 달라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경영 실적이 부진하면 아무리 대규모기업집단의 오너 일가라도 강제로 교체되는 선례로 남을 수도 있다. 지난 2014년~2019년 대한항공은 1조7400억원, 한진칼은 35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대주주가 경영하다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타의에 의해 밀려나는 상황은 국내 대규모기업집단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도덕적 해이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오른쪽). 사진 한진그룹

조원태 한진그룹회장(왼쪽)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오른쪽). 사진 한진그룹

이날 주주총회에서 3자 연합의 ‘반란’이 무위로 끝나더라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지속할 여지가 크다. 3자 연합은 줄곧 ‘긴 안목과 호흡’을 강조했다. 또 3자 연합이 맺은 주식 공동보유 계약 기간은 5년이다.

현재 보유 주식은 3자 연합이 더 많아

게다가 이들은 주주 명부 폐쇄 후에도 지분을 꾸준히 추가로 매입했다. 이번 주총에서 의결권 있는 지분은 3자 연합이 8.71%포인트 적지만, 현재 보유한 한진칼 주식(42.13%)은 조원태 회장 측(41.4%)보다 오히려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상대방을 인신공격까지 하는 등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서 양측이 극적으로 화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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