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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법이 문제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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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서양 근대법의 모태인 로마법의 보편 원리를 집대성한 이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B.C 43)다. 그는 『법률론』(De Legibus)에서 “인민의 행복이 최고의 법률이다(Salus populi suprema lex esto)”고 했다.

단순히 성문법을 해석하는 데 그쳤던 로마법은 키케로에 의해 ‘정의’의 정신을 얻었다. 근대 계몽주의와 자연법사상 역시 그의 유산이다. 인간 본성이 옳다고 믿는 원칙이 인간이 만든 법보다 상위에 있으며,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키케로조차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진 못했다. 로마법을 한 단계 끌어올린 법률가이자 철학자로 칭송받지만, 정파(政派)적 이익을 위해 집정관 후보로 나선 카틸리나를 ‘초법적’ 방법으로 탄핵했다. 4년 뒤엔 이 행동 때문에 고발당했고, ‘로마 시민이 참여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법 규정을 이용해 도주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 사회의 부가 축적되면서 로마법은 다시 조명받았다. 주로 교회와 왕, 귀족의 재산권을 규정하기 위해서였다. ‘법의 정신’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때때로 악용됐다.

16세기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 때 원주민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논쟁이 생겼다. 당시 교회와 왕실은 ‘자유로운 왕래를 거부하는 것은 자연법에 위배된다’거나 ‘재산은 시민공동체와 사회에 기초하는데 이를 형성하지 못한 원주민 사회는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수백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근대법은 완성됐다. 여전히 자연법의 정의와 거리가 멀 때가 있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긴 나라의 법은 대체로 그 간극이 크지 않다. 법체계가 다를지언정 판례와 시민사회의 합의로 자연법에 가까운 공감대를 형성한다.

‘승자독식’ 제도가 대의 민주주의에 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한 근거는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위성정당이 난립하는 지금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 법을 악용하는 인간이 문제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가끔씩 대한민국 헌법을 읽는다. 아름답고 고귀한 문장이다. 이런 헌법을 두고도 왜 이런 코미디가 반복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