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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성과 포기하고 신념 지켰다, 그런데 이 씁쓸함은 뭐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15)

2020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희망찬 목표를 품으며 모두가 올 한해는 행복하자며 시작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요즘 상황은 그야말로 죽상이다. 폐업을 알려오는 소식과 개업을 연기하고 싶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온다.

불안한 정세와 경제 상황이 나와 나의 고객들의 불안감 조성에 한몫한다. 그동안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린 자동차, 조선 산업은 성장이 더뎌졌다. 옛 먹거리는 가고 있는데 새 먹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꾸준히 누군가의 폐업(끝)이 누군가의 개업(시작)을 알려오며 불황기가 없던 자영업 창업 시장마저도 최근에는 폐업(끝) 소식만을 알려온다.

나 역시도, 사업 가속도가 한창 올라붙은 사업 3년 차인 올해 목표를 전년도의 2배 이상의 수치를 잡아 놓은 상태였던 터라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경기가 너무 어렵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자영업자들을 말리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모한 창업 결정이 나에겐 득이 된다. 그들이 창업 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 나의 기본 ‘업’이다.

올 한해도 희망찬 목표를 품으며 시작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요즘 상황은 그야말로 죽상이다. 폐업을 알려오는 소식과 개업을 연기하고 싶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온다. [사진 Pixabay]

올 한해도 희망찬 목표를 품으며 시작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요즘 상황은 그야말로 죽상이다. 폐업을 알려오는 소식과 개업을 연기하고 싶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온다. [사진 Pixabay]

최근 공들였던 계약 건들이 될 듯 될 듯 하다가 막판에 뭉개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계약도장을 쿨하게 찍을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당구장사장커뮤니티에서 코로나19 이후의 일 매출 감소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매출 50% 이상의 하락에 100명 중 50여명이 응답했다. 이 설문조사를 진행한 당사자인 내가, 뻔한 결과를 알고서도 이 시점에서 누군가의 당구장을 새롭게 개설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뻔뻔한 나의 행동이 동반되어야 했다.

사업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창업자의 신념이라고들 한다. 대표자가 세운 신념 하에서 모든 선택과 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념이 한번 뭉개지면 그 이후로는 신념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내가 이 업에 뛰어들면서, 세운 나의 신념은 지금 당장의 정량적인 매출 수치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자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변화가 크게 필요한 시장일수록, 매출을 목표로 두면 갈등 요소가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매출 없는 기업은 존재할 수가 없기에 타협점을 찾아내야 했다. 영세상인들이 주 고객이기에 적절한 타협선을 나 스스로 세워놓아야 했고, 그 타협선이 무너지는 순간 장사꾼으로 전락하기에는 너무 쉽기에 늘 나만의 기준을 잊지 않도록 되새겨야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무리한 초기투자 비용으로 당구장을 개설하려하는 예비창업자에게 나만의 셈법에 의해 도저히 성공확률이 낮아 보여 과감히 ’NO“라고 거절해버렸다. [사진 Pixabay]

이 어려운 시기에 무리한 초기투자 비용으로 당구장을 개설하려하는 예비창업자에게 나만의 셈법에 의해 도저히 성공확률이 낮아 보여 과감히 ’NO“라고 거절해버렸다. [사진 Pixabay]

얼마 전, 부산 출장이 잡혔다. 한번 오가고 하는 지방 출장에는 여러 기회비용이 녹아 있다. 소요시간과 무시할 수 없는 출장비용을 고려한다면 이번 출장에는 반드시 현란한 영업력과 어느 정도 나 자신과 타협할 정도의 감언이설을 동반해서라도 계약을 성사해야만 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계약 성사만이 답이다. 그러나, 부산 현장에서 만난 예비창업자와의 만남에서 난 계약 불발을 고지하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무리한 초기투자 비용으로 당구장을 개설하려 하는 예비창업자에게 나만의 셈법에 의해 도저히 성공확률이 낮아 보여 과감히 “NO”라고 거절했다. 그는 최근 당구장 추세에 따라 고급 대형 매장을 원하고 있었지만, 자금적으로 넉넉지 않아 대출자금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여러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긍정적으로 이야기만 해줘도 지금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것만 같은 예비창업자의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대형매장을 계획하던 그의 창업비용은 나의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만한 숫자였기에, 나의 단호한 거절에 상당히 황당해했다.

그렇게 나의 개똥철학으로 인해 계약은 불발되었다. 아직 사업 3년 차,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 호기로웠던 나의 신념으로 막상 계약이 불발되자 씁쓸한 이 감정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 건가.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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