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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올핸 '한여름 결혼식'···봄 예약, 7~8월로 대거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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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코로나19로 봄 결혼식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면서 한 번에 평균 200~300명이 모이는 결혼식이 민폐가 됐다. 특히 3·4월에 예정됐던 결혼식은 취소되거나 연기된 게 많다. 이달 28일 결혼식 예정이었던 윤명해(28)씨는 10월로 예식을 미뤘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조금씩 증가하던 2월 초부터 취소 고민을 하다가 확산 세에 접어든 3월 초 연기를 결정했다. 결혼식을 열려던 서울 명동의 웨딩홀에서 다행히 취소 아닌 연기는 위약금 없이 가능하다고 해 내린 결정이다. 필리핀 세부로 예정했던 신혼여행도 취소했다. 항공편이 아예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코로나19로 결혼 준비에 차질을 빚었다고 토로하는 게시물들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가 다 된 결혼에 재를 뿌리고 있다’ ‘코로나 뚫고 결혼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5월 예식이라 마음 놓고 있었는데 청첩장 모임도 못 열고 불안하다’ ‘결혼식 미루는 문제로 양가가 갈등을 빚고 있다’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하면서 봄 결혼식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다. 사진 wu-jianxiong by unsplash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하면서 봄 결혼식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다. 사진 wu-jianxiong by unsplash

웨딩홀 3‧4월 텅텅, 무더운 한여름 결혼 늘어

최근 대형 웨딩홀과 호텔 웨딩홀은 예약 취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호텔은 “3·4월 통틀어 단 한 건의 결혼식”만 잡혀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언제 취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에서 하우스 웨딩으로 유명한 업체도 3‧4월 예식이 거의 취소되고 단 8건만 잡혀 있다. 1년 전 모든 일정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으로 예년 같으면 3·4월에만 총 24건의 결혼식이 진행됐다.

결혼식 음식을 담당하는 한 케이터링 업체 사장은 “요즘은 취소 전화가 대부분이라 전화벨 소리 자체가 무섭다”고 토로했다. 결혼식 날짜를 바꾸는 예비부부들이 많다 보니 청첩장 업체인 바른손카드는 3~6월 예식일 변경 고객을 대상으로 할인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변경된 예식 정보로 청첩장을 추가 인쇄할 경우 50% 할인해준다.

결혼식 비수기인 7·8월이 성수기가 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결혼식 중개 업체 듀오웨드 관계자는 “보통 결혼식은 6개월 전 예약하는 경우가 많아 가을 예식은 모두 차 있고 그나마 여름이 비어 있어 7‧8월로 연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한 웨딩 업체 관계자는 “봄 예식을 여름·가을로 미루는 사람들이 늘면서 올 하반기 웨딩 예약은 일찌감치 꽉 찼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 강북의 한 야외 웨딩홀은 금요일 예식까지 포함해 10월 말까지 일정이 꽉 차 더 이상의 예약이 어려운 상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결혼식 준비 모습. 호텔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자체 방역에 힘쓰고 있다.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식기를 나르고 있는 모습. 사진 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결혼식 준비 모습. 호텔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자체 방역에 힘쓰고 있다.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식기를 나르고 있는 모습. 사진 웨스틴조선호텔

강남의 한 대형 웨딩홀은 결혼식 연기 요청이 많아지자 3·4월 결혼식을 7·8월까지 위약금 없이 미뤄주고 있다. 본래 여름은 결혼식 비수기지만 '코로나19로 불안한 지금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연기하는 예비부부들이 많다. 현재 7‧8월 첫째·둘째 주 점심 예식은 모두 예약 완료 상태다. 호텔 결혼식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관계자는 “3·4월 결혼식이 연기되면서 지난해 대비 2020년 7·8월 결혼식 예약 건수가 약 40% 상승했다”고 전했다.

예비부부들은 취소 아닌 연기로 그나마 가닥을 잡고 있지만, 소규모 사업자가 많은 웨딩 업계는 코로나19로 고사 직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결혼식을 아예 안 하거나 규모를 줄이는 추세가 강해 겨우 버티는 중이었는데 코로나19로 아예 폐업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결혼식 ‘작고 간소하게’ 트렌드 가속

취소가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을 강행하지만 하객 수를 최대한 줄여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오는 4월 말 결혼식이 예정된 김지현(32)씨는 최근 결혼식 취소도 고민하다 일단은 진행을 결정했다. 취소하려면 보증 인원에 맞춰 위약금을 내야 하고, 6개월 안에 연기는 가능하지만 9‧10월 날짜가 이미 꽉 차 있어 바꿀 날짜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200명 정도 예상했던 하객을 140명까지 줄이고 청첩장 돌리기도 모바일을 활용하고 있다. 김씨는 “청첩장을 주면서 오라고 말하기 미안한 상황”이라며 “아주 친한 사람만 오게 될 가능성이 높아 의도치 않게 스몰 웨딩(간소하게 치르는 결혼식)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 호텔 웨딩홀의 모습. 예식 10분 전인데 하객이 거의 없이 텅텅 빈 모습이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공군 호텔 웨딩홀의 모습. 예식 10분 전인데 하객이 거의 없이 텅텅 빈 모습이다. 사진 독자 제공

한 웨딩 업체 관계자는 “예년에는 평균 250~300명 하객이 일반적이었다면, 코로나19로 올봄 예식 하객 수는 평균 80~100명 선까지 줄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스몰 웨딩 공간 대여업체 ‘아웃오브오피스’를 운영하는 김혜진 대표는 “양가 직계 가족만 10~20명 모여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문의가 꽤 온다”고 했다.

스몰 웨딩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웨딩 컨설팅 업체 플레르오꾸앵의 고진영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도 규모를 작게 치르는 스몰 웨딩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 추세가 더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주 친한 사람만 초대하는 소규모 야외 결혼식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 unsplash

코로나19로 인해 아주 친한 사람만 초대하는 소규모 야외 결혼식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 unsplash

‘스·드·메’도 타격, 신혼여행은 엄두도 못내

결혼식과 연결된 일명 ‘스·드·메(스튜디오 사진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업체들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결혼식 날짜에 맞춰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일정이 맞물려 돌아가는데, 3·4월 결혼식 실종으로 소규모 관련 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웨딩 촬영을 진행하는 사진 스튜디오는 ‘선 촬영, 후 결혼식’을 선택하는 예비부부들 덕분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 강남에서 17여 년간 웨딩 드레스 업체를 운영해온 모 대표는 “드레스 보러 오는 고객 자체가 반 이상 줄었다”며 “굉장히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드레스 대여 업체 대표는 “예식을 3개월만 미뤄도 계절감에 맞지 않아 다른 드레스를 선택해야 한다“며 “임박해 취소하는 경우 위약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서로에게 미안한 상황”이라고 했다. 웨딩 메이크업을 다수 진행하는 서울 강남의 한 미용실 역시 “3·4월 취소 건이 모두 하반기로 몰려 봄에는 예약이 텅텅 비고, 가을에는 더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가장 심각한 건 신혼여행이다. 상당한 금액의 취소 위약금을 내거나 미리 낸 계약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가을로 결혼식을 미룬 예비부부들도 섣불리 신혼여행지를 정하기 어렵다. 해외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에 결혼식을 앞둔 한 예비신부는 “신혼여행지로 유럽을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잠잠해지더라도 유럽에서 동양인에 대한 시선이 좋지 읂을까봐 우려돼 쉽게 결정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식은 진행해도 신혼여행은 미루는 경우가 많아지자 일선 회사들에선 신혼여행 특별 휴가 규정을 바꾸고 있다. 보통 결혼식 이후 30일 이내에 사용하게 돼 있는 신혼여행 휴가를 올해 안에 사용하도록 하는 예외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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