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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일본 바둑은 왜 몰락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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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두점머리는 죽어도 두들겨라”라는 격언이 있다. 돌의 능률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일본바둑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논리적으로는 내가 죽는 마당에 남의 두점머리를 두들기면 뭐하나 싶지만 그게 아니다. 이 격언을 읊조리다 보면 두점머리는 급소 중의 급소이고 두점머리를 얻어맞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라는 생각이 저절로 각인된다. 두점머리를 두드릴 때는 무식한(?) 상대방에 대한 안쓰러움마저 느끼게 된다.

탐미주의로 흐르다 한국에 밀려 #응씨배 서봉수 역전승이 분기점

하지만 AI의 바둑을 보면 두점머리는 흔하게 얻어맞는다. 자청해서 얻어맞기도 한다. 인간 고수들은 처음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일본바둑의 황금기에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란 기사가 있었다. 그는 기타니 도장의 수석사범으로 다케미야 마사키, 조치훈 등 수많은 정상급 기사들에게 일본바둑의 정수를 심어주었다. 그는 ‘미학(美學)’이란 두 글자로 특히 유명했다. “바둑을 질지언정 추한 수는 두지 않는다.” 이게 그의 엄숙한 바둑 철학이었다. 그는 일본미학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전도사였다.

‘한국류’란 말은 처음엔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1980년대 일본 바둑잡지에서 먼저 등장한 이 단어는 ‘세련되지 못하지만 치열하고 실전적인 수법’이란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당시 한국기사들은 몸싸움을 좋아하고 상대에게 돌을 밀착시키는 격렬한 수를 즐겼다. 일본미학의 눈으로 볼 때는 승부 호흡이 급한 덜 익은 수법이었다. 그러다 한국이 서서히 기세를 올리면서 한국류를 보는 눈도 변하기 시작했다.

1993년 2회 응씨배 결승전에서 한국의 서봉수 9단과 일본의 오타케 히데오 9단이 맞붙게 된 것은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오타케가 일본미학의 대표라면 서봉수는 잡초의 생명력으로 무장한 한국류의 대표였다. 이 둘의 대결은 2대2까지 팽팽하게 이어졌고 결국 최종 5국까지 갔다. 이 판에서 서봉수는 능률과 모양에 능한 오타케의 수법에 말려들어 일찌감치 비몽사몽이 됐고 화타가 와도 살릴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을 맞게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서봉수의 괴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둑이 아니었다. 권투선수 홍수환이 세계타이틀매치에서 비세에 몰리자 두 팔을 풍차처럼 돌리며 싸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승부는 서봉수의 대역전승으로 끝났다.

이 승부는 단지 서봉수 개인의 승리가 아니었다. 잘 가꿔진 국화 같은 일본미학이 퇴조하고 야생화 같은 한국류가 세계바둑의 전면에 등장하는 분기점이 됐다.

바둑은 전쟁을 모방했다. 따라서 승리하려면 병사에 해당하는 돌 하나하나의 능률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은 이미 수백 년 전 바로 이 ‘능률’에 착안하여 바둑을 한 단계 높여놨다. 그러나 오랜 세월 능률을 숭상하다 보니 능률적인 것은 아름답고 비능률적인 것은 추한 것이 됐다. 일본미학은 점차 탐미적인 경향을 띠며 틀에 얽매이게 됐다. ‘두점머리’나 ‘빈삼각’ 같은 금기도 자꾸 늘어났다. 바둑은 전쟁과 같은데 금기가 많아지면 불리하다.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미학은 일본바둑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었으나 결국 일본바둑을 몰락으로 몰고 간 주인공이 됐다.

일본바둑이 향기는 있었다. 낭만적으로 중앙을 경영하는 다케미야의 우주류 등은 이해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일본바둑이 왜 몰락했느냐 질문을 받으면 나는 애석하게도 이 ‘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승부는 낭만적이지 않다. AI의 바둑을 보면 돌을 밀착시킨다든지 옆구리를 자주 붙여간다든지 하는 한국류의 잔상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한국류가 나름 승부의 핵심을 짚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사가 그렇듯 바둑에도 정답은 없다. ‘삼삼’처럼 어제는 시시한 존재였으나 오늘은 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특상품이 되기도 한다. 일본바둑도 AI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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