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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 쓰려니 돈이, 부모님 찬스는 눈치가, 휴가도 바닥났다…육아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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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코로나19 확산으로 보육시설 휴관이 장기화 되며 맞벌이 부부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확산으로 보육시설 휴관이 장기화 되며 맞벌이 부부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뉴스1]

3월 2일이었던 개학이 다음 달 6일로 한 달 이상 미뤄지며 자녀를 둔 맞벌이 직장인들은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가느라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돌봄 공백이 길어지면서 ‘육아 품앗이’에 나서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씨는 “매일 할 일을 보고하고 부서장에게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아이를 보면서 제대로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인 그는 공동 육아를 하기로 했다. 돌아가며 상대방 집에 모여 박 씨가 일할 때는 동료가 박 씨의 아이까지 봐 주고, 동료가 일할 때는 박 씨가 동료의 아이를 돌봐주는 식이다. 최근엔 품앗이 멤버가 4명까지 늘었다. 박 씨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노니까 오히려 돌보기가 편하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 ‘애 좀 봐주세요’ 전쟁 #이웃 돌아가며 육아품앗이도 한계 #매끼 식사·도시락 챙기기도 고생 #직장맘 “힘들다, 답답하다” 아우성

아예 노트북 PC를 챙겨 친정 부모나 자매 집으로 출근하는 ‘재택 이주민’도 생겨났다. 민폐인 줄은 알면서도 아이와 함께 전업주부인 언니 집으로 출근해 일하는 식이다.

6세 아들의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는 최모 과장 부부는 처음 1~2주 어린이집 개원이 미뤄졌을 때는 ‘부모님 찬스’를 썼다. 월·수·금은 친가에, 화·목은 외가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방학이 길어지면서 연령이 높은 부모님의 체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부, 가족돌봄휴가 최대 25만원 지원

개학·개원 연기로 고충을 겪는 맞벌이들이 온라인 직장인 방과 맘카페 등에 올린 사연 화면. [사진 독자]

개학·개원 연기로 고충을 겪는 맞벌이들이 온라인 직장인 방과 맘카페 등에 올린 사연 화면. [사진 독자]

사실 올해부터 맞벌이 직장인이 자녀를 위해 쓸 수 있는 제도가 꽤 다양해졌다. 대표적으로 1년에 열흘짜리 ‘가족돌봄 휴가’가 생겼다. 기존의 가족돌봄 휴직(연 90일)이 가족의 질병·사고·노령만 사유로 인정됐다면 돌봄 휴가는 ‘자녀 양육’도 사유에 들어간다. 기간도 하루 단위로 쓸 수 있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사람은 육아휴직 1년과 별도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1년도 쓸 수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서 근로시간을 하루 1~5시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실효성과 돈이다. 돌봄과 관련한 제도들은 대부분 ‘사정이 있는 경우 회사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회사·부서장과의 합의가 필수다. 최 과장 부부 역시 유통 분야라는 회사 사정상 재택근무가 어렵고 휴가를 길게 쓰기도 여의치 않다.

가족돌봄 휴직과 가족돌봄 휴가는 무급이고, 근로시간 단축도 하루 1시간이 넘어가면 임금이 깎인다. 연차는 사실상 ‘미래 수당’을 포기하는 건데, 연차를 아끼자고 아이를 돌봐주는 ‘이모님’을 구하거나 돌봄 시간을 연장할 경우 시간당 추가 비용이 최소 1만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 당장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도 용돈은 필수다.

국내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A씨는 “일주일에 나 하루, 아내 이틀씩 연차를 쓰고 나머지는 이모님을 더 써서 막고 있는데, 비용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교 후 오후 4~7시까지만 봐 주시던 걸 하루 종일로 며칠 더 돌리면 이모님에게 거의 월급 수준 금액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회사·근로자 함께 비상상황 극복해야”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가족돌봄휴가자에게 1인당 하루 5만원씩 최대 5일간 특별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맞벌이의 경우 부부가 각각 5일 동안 25만원씩, 총 5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이미 지원금 신청사례가 나흘 만에 1만 건을 넘어섰다.

맞벌이 가정이 겪고 있는 의외의 고충이 있다. 바로 식사 챙기기다. 마케팅 기획업체 에스피랩의 하영아(45) 실장은 “매일 도시락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며 웃었다. 정부 권고로 휴원에 들어갔던 학원들이 잇달아 다시 문을 여는 가운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식당이나 배달음식을 자제하고 도시락을 지참해 달라’는 학원 측 권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 실장은 출·퇴근 시간 틈틈이 장보기 배달을 시키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은 뒤 학원에 다니는 자녀를 위해 매일 새벽 점심·저녁 도시락을 싼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난제 해결의 책임이 개인에게 미뤄지고, 시간·돈·인맥 같은 개인이 가진 자원과 운에 따라 격차가 크게 난다는 점”이라며 “근로자 복지 제도의 존재 이유가 ‘함께 살아가기’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회사와 근로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비상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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