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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금융 가두리망"…역대급 지원책에 기업·증시 반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개월 시계(視界)를 놓고 가두리망을 (마련)해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4일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 회사채·기업어음(CP) 중 만기가 6개월 안에 돌아오는 물량을 고려해 금융지원 규모를 키웠다는 뜻이다. 은 위원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험을 볼 때 시장안정을 위해서는 선제적·과감하게 정책을 펴야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안펀드 4월 초 회사채 등 매입”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4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4일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관련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은 위원장 말대로 이날 발표된 방안은 규모 면에서 ‘역대급’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추가로 투입기로 한 자금만 따져도 41조8000억원에 달한다. 당초 시장 예상(20조원가량)의 두배 수준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2배인 20조원, 증권시장안정펀드(증안펀드)는 20배 수준으로 늘어난 10조7000억원을 조성한다.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의 재원 대부분은 금융회사로부터 캐피탈콜(펀드자금 요청) 방식으로 조달한다. 이와 함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 산업은행의 회사채 발행 지원에 4조1000억원, 기업어음(CP) 등 단기자금시장 안정에 7조원을 투입한다. 과거 금융위기 때 썼던 정책을 총 망라해 ‘금융지원 4종 세트’를 한꺼번에 내놨다.

채권시장안정펀드 설명 그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채권시장안정펀드 설명 그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융위에 따르면 기업 회사채 시장 규모는 약 300조원으로, 올해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가 31조원에 달한다. 이중 초우량 등급(AAA) 회사채는 위기 상황에서도 신규 발행,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 문제는 시장에서 소화가 어려운 그 아래 등급의 회사채와 CP이다. 그 물량을 채안펀드 등이 소화해야 하는 셈이다. 은 위원장은 “채안펀드는 24일 오후 3조원의 1차 캐피탈콜을 진행해 4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회사채 등 매입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안펀드 역시 4월 초 본격 가동된다. 1차로 3조원을 마련해 증시를 대표하는 지수상품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코스피200지수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와 인덱스펀드가 주요 투자 대상이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세제지원 방안도 내놓기로 했다. 현재 예·적금과 펀드 등으로 한정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투자대상에 주식도 포함해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다. ISA계좌 가입 문턱도 대폭 낮춰 소득이 없어도 가입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기업과 주식시장은 반색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며 코스피 지수가 1600선을 회복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27.51포인트(8.60%) 오른 1,609.97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며 코스피 지수가 1600선을 회복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27.51포인트(8.60%) 오른 1,609.97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기업 돈줄 확보’를 위한 정부의 긴급 수혈 조치에 재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4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비상금융조치 확대 방침을 환영한다”며 “회사채 인수 지원,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 가동, 대출 확대 등 정부가 가능한 최고 수준의 자금조달 방안을 담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경제위기가 심각하게 확산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책 발표는 바람직하다”며 “정책이 현장에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안했던 금융시장도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7.51포인트(8.6%) 오른 1609.97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18일 이후 7일 만에 다시 1600선을 탈환했다. 삼성전자가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10.47% 급등한 4만6950원에 마감했다. SK하이닉스(13.4%), 삼성바이오로직스(9.17%), 네이버(9.09%), 셀트리온(5.14%)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도 일제히 상승했다. 이날 원화가치는 달러당 16.9원 상승(환율은 하락)한 1249.6으로 마감했다. 이영곤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정책이 투자자 불안심리를 잠재우며 기대감을 키웠고, 이날 나온 정부의 공격적인 정책 대응도 투자심리 개선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안펀드 10조7000억원이면 매일 외국인 투자자금이 1조원씩 빠진다고 해도 열흘 넘게 버틸 수 있는 규모”라며 “증안펀드가 더 일찍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규모 면에서는 적정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증권시장안정펀드 설명 그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증권시장안정펀드 설명 그림.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채권시장엔 영향이 그리 크게 나타나진 않았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국고채(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026%포인트 하락한 1.127로 장을 마감했다(채권 가격은 상승).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과거에 썼던 모든 금융지원 방안을 한꺼번에 쏟아낸 점은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며 “다만 4월에 실제 (채안펀드 등) 자금이 투입돼야 본격적으로 채권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정부가 쏟아붓기로 한 금융시장 안정 자금 중 상당 부분은 민간 금융회사가 부담할 몫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업 신용도 하락을 막아 실물 경제를 안정시키려면 대규모 지원책이 불가피했고 바람직하다”며 “다만 채권·주식시장 안정펀드 재원을 부담하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하는 부작용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태현 금융위 사무처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해서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애란·문현경·허정원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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