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기부 릴레이가 이어진다면, 코로나로 위기에 놓여 실의에 빠진 분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50년간 구두 닦아 장만한 땅 1만평 기부 서약한 김병록씨
50년 가까이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땅 3만3000㎡(1만평, 임야)를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지난 10일 아무 조건 없이 내놓겠다고 중앙일보에 밝혔던 김병록(61)씨의 말이다. 〈중앙일보 3월 12일자 1면〉
그는 지난 23일 당초 계획대로 경기도 파주시청을 방문, 이 땅에 대한 기부채납 서약서를 제출한 후 이런 말을 건넸다.
파주시, 곧바로 땅 매각 착수
이수호 파주시 기획경제국장은 “기부하신 분의 뜻에 따라 곧바로 해당 임야의 매각에 나서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코로나19 여파로 파주 지역 경제도 몹시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렇게 어려운 때에 자산을 기증하는 뜻깊은 결정을 해준 데 대해 감사드리며 파주시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주시에 따르면 김씨 부부가 기증한 땅의 현재 공시지가는 ㎡당 7330원으로, 3.3㎡(1평)당 2만4200원이다. 3만3000㎡ 전체의 공시지가는 2억4200만원이다. 현재 시가로는 5억∼7억원이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이웃 돕고 싶어”
김씨에게 이 땅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11세 때부터 50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해 온 김씨는 6년 전 이 땅을 매입했다. 그는 “노후에 오갈 곳 없는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농사지으며 살려고 사 두었던 곳”이라고 했다.
김씨는 고양시 행신동 노점에서 구두 수선을 해왔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서울 상암동에 10㎡(3평) 크기의 점포를 임대해 아내 권점득(59·여)씨와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큰딸(34)을 출가시키고 아내·작은딸(30), 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장애인 아들(27)과 행신동의 66㎡(20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살아오면서 노후도 준비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에 도움도 되는 일을 하려고 사놓은 땅이라고 한다. 김씨는 “이번 코로나 확산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점포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지금의 경제위기를 실감한 게 땅을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내가 가진 것을 내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앞서 1996년부터 2017년까지 21년간 헌 구두 5000여 켤레를 수선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때로는 헌 우산·양산을 고쳐 건넸다. 97년부터는 이발 기술을 배운 뒤 매달 4~5차례 요양원·노인정 등을 찾아 이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뒤차 돈 내주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동안 400여 차례 뒤차의 톨게이트비를 대신 내줬다. 김씨는 “별것 아닌 일이지만 단돈 몇천 원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그날 하루 행복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