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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중앙은행을 낳고 탈바꿈한다…'마지막 매수자'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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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역사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23일(현지시간) 양적 완화(QE) 한도를 없앴다. 애초 이달 15일에 네 버째 QE를 발표하면서 제시한 한도는 7500억 달러(약 953조원)였다.

[Crisis 스토리③] #Fed가 돈가움을 해결하기 QE 한도를 없앴다. #미 국채에서 신용카드채권까지 사들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팔고 있을 때 유일한 메이저 매수자다. #위기를 맞아 중앙은행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경제학자가 아닌 변호사 출신이다. 이런 그가 Fed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고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경제학자가 아닌 변호사 출신이다. 이런 그가 Fed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끌고 있다.

앞선 QE3 등과 견줘 거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시장의 유동성 증발은 더 빠르게 진행됐다. 하루 파월은 450억 달러씩 투척했다. QE3 시절 한 달 동안 사들인 자산 규모다. 달러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파월은 한도를 없앴다. 인쇄기를 돌려 무제한 국채와 장기주택담보대출(모기지) 담보부 증권(MBS) 등을 무제한 사들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매입 대상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금융회사가 발행한 MBS도 사들이기로 했다.

금단의 영역에 뛰어들다

Fed는 자회사(펀드)를 설립해 회사채도 사들이기로 했다. 심지어 기업이 초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찍어낸 기업어음(CP)도 매입한다. 금단의 영역에 뛰어든 셈이다. 이전까지 중앙은행, 특히 Fed는 국채와 공공 기관이 발행한 증서를 주로 매입했다.

파월이 23일 제시한 매수 리스트엔 회사채와 CP만 있는 게 아니다. 학자금 관련 증권, 지방정부 채권도 들어 있다. 심지어 신용카드와 자동차 할부 채권 등이 들어 있는 자산담보부증권(ABS)도 사들인다.

파월은 이날 발표한 성명은 비장할 정도다. “Fed는 도전과제로 가득 찬 지금 가계와 기업, 미국 경제 전체를 지원하기 위해 보유한 모든 수단을 쓰기로 결단했다”고 발표했다. 미 의회가 논쟁 탓에 경기부양과 Fed법 개정 등의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틈에 Fed가 기존 법을 우회해서라도 대응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법은 멀고 주먹(중앙은행)은 가까웠다

중앙은행 역사를 보면 파월의 법 우회 전술이 새롭지 않다. 영미 중앙은행 역사가인 존 우드 레이포레스트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기자와 통화에서 “영란은행(BOE)은 전쟁이란 다급한 순간에 17세기 영국 정부가 의회 동의를 받기 전에 급전을 조달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말했다. 1694년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 7년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돼 있었다. 한 마디로 법은 멀리 있으니 가까운 주먹을 쓰는 셈이었다.

19세기 영란은행(BOE) 내부자들은 썩내키지 않았지만 위기 탓에 공적 책임을 하나씩 떠맡았다. 사진은 BOE를 상징하는 '트레들니들거리의 할머니'

19세기 영란은행(BOE) 내부자들은 썩내키지 않았지만 위기 탓에 공적 책임을 하나씩 떠맡았다. 사진은 BOE를 상징하는 '트레들니들거리의 할머니'

그렇다고 당시 영란은행이 중앙은행은 아니었다. 영국 런던 금융 중심지인 더시티(The City)의 상공인(휘그)들이 주로 투자한 주식회사형 시중은행이었다. 우드 교수는 “21세기 사람들은 17세기 영국 휘그들이 중앙은행 설계도에 맞춰 BOE를 세워 운영한 줄 안다”며 “이는 21세기 사람들의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위기는 중앙은행 탄생ᆞ변신의 어머니였다
실제 BOE가 설립 이후 100년 이상을 시중은행으로 구실 했다. 중앙은행으로 변신은 주로 19세기 이뤄졌다. 위기가 변신의 어머니였다. BOE에 사실상 첫 공적 업무가 맡겨진 계기는 패닉 1825(Panic of 1825)였다. 그해 위기 직후 통화 시스템 개혁이 단행됐다. 영국 정부가 BOE를 시중은행 부문과 발권 부문으로 쪼갰다. 발권 부문이 은행권 발행과 관리란 공적 책임을 졌다.

‘마지막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은 19세기 중반 위기 속에서 BOE가 떠맡은 임무였다. 부실한 시중은행과 머천트뱅크(투자은행)에 급전을 대주기 시작했다. 마지막 대부자 기능은 1820년대부터 논의가 됐다. 하지만 BOE 간부들이 “우리는 공적 책임보다는 은행가(돈놀이꾼) 역할이 적합하다”며 저항했다. 하지만 잇따른 위기에 BOE 간부들이 운명을 받아들였다.

국가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은 20세기 산물이다

BOE가 19세기를 거치며 중앙은행 기능을 하나씩 받아들였다. 하지만 1947년 영국 노동당 정부가 국가 기관화하기까지 BOE는 민간 회사였다. 우드 교수는 “19세기 내내 금융통화의 후진국이었던 미국이 1913년 설립한 Fed가 첫 국가기관으로서 중앙은행”이라고 설명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공화당이 내놓은 중앙은행법안을 수정해 현재 Fed 시스템이 등장하도록 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9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공화당이 내놓은 중앙은행법안을 수정해 현재 Fed 시스템이 등장하도록 했다.

Fed는 미국 역사상 ‘부자들의 패닉’으로 불리는 1907년 위기 때문에 탄생했다. 당시 집권세력인 공화당은 BOE처럼 시중은행이 출자한 민간-단일 은행 시스템을 계획했다. 하지만 개혁파인 우드로 윌슨(민주당)이 1912년 집권하면서 지배구조를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인사로 이뤄지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결국 Fed는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지 않다. 부작용도 상당했지만, 위기 순간 공적 책임을 지는 데 비교적 빨랐다. 대공황 직후에는 금리 결정을 위원회(FOMC) 방식으로 하도록 했고, 2차대전 이후에는 새로운 임무(고용유지) 등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2020년 현재 Fed는 마지막 대부자 수준을 넘어 ‘마지막 매수자(Buyer of Last Resort)’로 떠오르고 있다. 거의 모두가 달러를 위해 팔고 있는 와중에 국채에서 신용카드 채권까지 거의 모든 증서를 사들이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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