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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세계증시 흔들어도 나홀로 거뜬···日증시 받친 'BOJ·연기금의 힘'

중앙일보

입력

23일 일본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이날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 225지수는 전 거래일과 비교해 23.33포인트(0.14%) 오른 1만6576.16으로 출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조 달러(약 2500조원) 규모 긴급 예산안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속보가 전해진 직후였다. 일본 증시에 흔들림은 없었다.

금융시장을 뒤흔들만한 악재는 연이어 터졌다. 이날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20 도쿄 올림픽’ 연기를 처음으로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나와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 실시가 어렵다면 연기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도쿄 올림픽 연기 가능성에 선을 그었던 아베 총리마저 이날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내놨다.

이때도 도쿄 주식시장은 경제 공식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오전 10시쯤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장중 최대 낙폭은 0.41%에 그쳤다. 그마저도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회복해 상승 흐름을 다시 탔다.

23일 일본 도쿄 시내 증시 전광판 앞. 이날 다른 아시아 증시와 달리 일본 증시는 상승 마감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시내 증시 전광판 앞. 이날 다른 아시아 증시와 달리 일본 증시는 상승 마감했다. 연합뉴스

같은 시각 미국 야간 선물시장, 다른 아시아 증시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주가지수가 급락하며 비상이 걸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선물지수는 5% 넘게 떨어지면서 가격 제한폭에 걸려 거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한국 코스피ㆍ코스닥 지수는 6% 이상 추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주식 매도 호가 효력을 일시 중지)가 동시 발동되는 사태를 다시 맞았다.

오후에도 일본 증시만 ‘나홀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날 코스피(-5.34%), 중국 상하이(-3.11%), 홍콩 항셍(-4.86%), 대만 자취안(-3.73%) 등 아시아 다른 주가지수는 3~5% 하락해 마감했다. 일본만 예외였다. 닛케이 225지수는 전 거래일과 견줘 334.95포인트(2.02%) 상승해 거래를 마쳤다.

23일 일본 도쿄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날 아베 총리는 도쿄 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연합뉴스

23일 일본 도쿄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날 아베 총리는 도쿄 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경기 부양책 불발에도, 일본 경제ㆍ산업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는 도쿄 올림픽 연기 가능성에도 일본 증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증시 흐름을 두고 “(일본) 시장 내에서도 놀랍게 받아들이는 현상”이라며 “공적 자금이 버팀목”이라고 전했다. 아사히신문도 “이날 해외의 기관투자가가 매물을 쏟아냈지만 연기금 자금의 매수세로 도쿄 증시는 상승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겉으로 보기에 일본 주가지수 흐름은 평온했지만 수면 아래는 금융위기 상황과 맞먹는 사실상의 공적 자금 투입이 있다는 얘기다. 현재 일본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큰 손’은 두 곳이다. 일본 공적연금(GPIF) 그리고 일본은행(BOJ)이다.

일본 GPIF는 한국의 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19년 3분기 기준 자산 규모가 168조9897억 엔(약 1950조원)에 이르는 세계 1위 연기금이다. GPIF는 자산의 일정 비율을 주식으로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지분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연적으로 주식 보유 비중도 작아졌다. 이 비율을 끌어올리고, 시장도 지탱하려 GPIF가 공격적으로 매수에 나서고 있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BOJ는 일본의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과 성격이 비슷하다. BOJ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직접 일본 증시에 개입하고 있다. 이달 들어 BOJ는 ETF 1000억 엔어치 이상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들이는 중이다. 빈도도 잦아졌고 액수도 늘고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9일 하루에만 BOJ는 2016억 엔 상당 ETF를 매입했다. 하루 사이 한국 돈으로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직접 일본 증시에 주입했다는 뜻이다. BOJ가 ETF 직접 매입에 나서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일일 매수액으로는 역대 최고를 이날 기록했다.

2020 도쿄 올림픽 개최일을 알리는 시설물 앞. 연합뉴스

2020 도쿄 올림픽 개최일을 알리는 시설물 앞. 연합뉴스

일본 연기금과 중앙은행이 증시 떠받치기 ‘총력전’에 나섰지만 사실 근본적 대책은 아니다. 주요 기관투자가가 몰려 있는 미국·유럽 지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 충격이 올 것이란 경고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전 세계 증시를 대상으로 한 ‘팔자’ 흐름은 단기간에 바뀔 성격이 아니다. 일본 증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의 급변동을 막을 순 있어도 매도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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