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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한번 시작된 포퓰리즘, 나라 거덜 나도 안 멈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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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포퓰리즘을 쏘다 ③ 에보 모랄레스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을 추종했던 모랄레스(오른쪽)에게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은 정치적 대부와 같았다. 그는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정책 모델을 따르라고 조언했다“고 적었다. 사진은 합성 이미지.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을 추종했던 모랄레스(오른쪽)에게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왼쪽)은 정치적 대부와 같았다. 그는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정책 모델을 따르라고 조언했다“고 적었다. 사진은 합성 이미지.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의 포퓰리즘은 운명이었다.”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 회귀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선택했듯 #깨어 있는 시민이 막지 못하면 #모랄레스, 볼리비아 복귀할 것

이종철 전 볼리비아 대사(2015~2018년)가 두 시간여 인터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2주 전 그를 만난 건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의 포퓰리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듣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 전 대사는 반만 동의했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를 산업화하고 싶어 했다.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알고 있고, 배우고 싶어 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다.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3370달러(2018년, 세계은행)로 국민 15%가 절대 빈곤선 아래 허덕인다. 절대 빈곤선의 국민에겐 시장·경쟁·자유마저도 사치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주면 좋아한다. 생존이 걸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포퓰리즘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 전 대사는 모랄레스에게 인간적 교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모랄레스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5년 전 볼리비아 대사로 부임했을 때 모랄레스는 그에게 스페인어로 된 자서전을 선물했다. 이 전 대사는 이를 번역해 2년 뒤 한국어판『나의 인생』을 출간했다. 그 인연으로 모랄레스와는 대사 재임 중 10여 차례 만났다.

“모랄레스는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낙후한 마을 오리노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코카 재배 농가의 노조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다. 인구의 55%(약 605만명)에 달하는 원주민의 비참한 삶을 바꾸고 싶어했다. 최대 걸림돌이 미국이었다. 원주민의 생업은 주로 코카 재배에 의존했는데, 미국은 중남미 코카 재배를 뿌리 뽑으려 했다. 그가 태생부터 반미, 반(反)신자유주의였던 이유다. 미국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정치적으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연대했다. 모랄레스에게 좌파 포퓰리즘은 역사와 민족, 정치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일정 부분 납득할 만하다.”

모랄레스에 대한 평가는 이 전 대사의 말마따나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의 집권 14년 중 처음 10년간 볼리비아는 연평균 4~5%씩 성장했다. 집권 초인 2006년 54%였던 국가부채를 30%대로 끌어내려 2014년까지 40% 밑으로 유지했다. UN 통계에 따르면 집권 당시 40%였던 극빈층은 2015년 15%대로 떨어졌다. 퍼주기로 폭망한 여타 중남미 국가와는 결이 달랐다. 이 전 대사는 “볼리비아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할 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그의 운명이라면 실패 역시 운명이었다. 그가 차베스에게 배울 때부터 실패는 예견돼 있었다. 그가 차베스의 정책을 따른 데는 그의 정치적 대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모랄레스는 취임식 때 체 게바라를 위해 1분간 묵념을 할 만큼 쿠바 혁명의 열성적 지지자였다. 카스트로는 대통령 취임 전 그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하지 말라. 우고 차베스가 했던 것처럼 해라. 혁명은 (군대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식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조언했다. 카스트로의 조언에 따라 모랄레스는 차베스에게 배웠지만, 어느 면에선 차베스보다 더했다.

모랄레스 재임 중 5배 오른 최저임금

모랄레스 재임 중 5배 오른 최저임금

①편 가르기=백인과 중산층을 적으로 규정했다. 원주민 우대정책을 펼쳐 정부와 공기업 요직을 원주민 출신으로 채웠다. 원주민 깃발을 만들어 공식 국가 상징으로 사용했다. 11년간 주미대사를 보내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반미정서를 자극했다. 2016년엔 반미 엘리트 양성을 위해 반제국주의 군사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②직접민주주의=2003년부터 원주민 중심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두 명의 대통령(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카를로스 메사)을 중도 퇴진시켰다. 2008년 보수우파 야권의 저항 수위가 높아지자 정·부통령과 9명의 주지사에 대한 신임투표를 결행, 67%의 지지율로 재신임을 얻어냈다. 2009년엔 헌법을 개정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법위원회의 판사를 직접 선거로 선출하도록 했다.

③국유화와 퍼주기=2006년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이후 통신(2008년 5월) 전기(2009년 8월) 철도(2010년 1월)를 차례로 국유화했다. 개인 사유지 보유 한도를 5000헥타르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사유지는 국유화하되, 생산 활동에 사용되고 있는 경우에만 소유권을 추가로 인정했다. 은퇴 연금을 국영화해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58세로 낮췄다. 연금 대상에 자영업자·택시기사 등 직업을 추가했다. 수령액은 소득의 25%에서 62%로 올렸다. 최저임금은 재임 중 5배 올렸다. 2005년 440볼리비아노(1볼리비아노=약 0.14달러)였던 최저임금은 2019년 2122볼리비아노로 뛰었다. 그는 “돈이 부족하면 국유화 기업을 통해 조달하면 된다”며 큰소리쳤다.

집권 초기엔 어느 정도 굴러갔다. 원자재값이 고공 행진 중이라 국유화 기업을 통한 퍼주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외국 기업과 결탁해 축재에 열을 올렸던 전임 대통령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부패 스캔들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어떤 국가도 재분배만으로 번영을 누릴 수는 없다. 그런 사례도 없다. 이종철 전 대사는 실패의 또 다른 이유로 “과유불급과 과속”을 꼽았다.

“모랄레스는 더블 보너스제도를 도입했다. 전년 GDP 성장이 4.5% 이상이면 연말에 보너스를 한 번 더 주는 제도다. 여기에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기업은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2011년~2015년 5년간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은 연평균 20%씩 올랐다. 마침 미국의 셰일 혁명으로 원자재값마저 급락하자 더는 재원마련이 불가능했다. 경제가 곡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모랄레스가 산업화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삼성엔지니어링과 합작해 요소비료 공장을 완공했다. 리튬을 무기로 1차 가공 산업을 일으키려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 속도가 늦고, 단기 표심과 퍼주기에 더 몰두해 화를 불렀다.

지난해 부정선거로 쫓겨난 모랄레스는 현재 아르헨티나에 망명 중이다. 그는 복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5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모랄레스는 “나는 볼리비아의 국부, 근대화의 기수다. 나 아니면 안 된다. 원주민의 삶은 원주민인 내가 잘 안다”고 말해왔다. 지지층은 아직도 “모랄레스는 태양”이라고 떠받든다. 그의 복귀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전 대사는 “꽤 크다”고 말했다.

“포퓰리즘은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시작되면 나라가 절단돼도 멈출 수 없다. 아르헨티나가 좋은 예다. 정치인은 죽었다 깨도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깨어있는 시민이 막지 못하면 나라가 거덜 날 때까지 갈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가 다시 페론주의로 돌아서고 베네수엘라가 마두로를 선택했듯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로 돌아올 것이다.”

코로나19, 한국 최저임금 바꿀까

최저임금은 포퓰리즘을 재는 중요한 잣대다. 거의 무한정 올리더라도 집권 세력에 긍정적 효과를 낸다.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가 경제난에 허덕이면서도 많게는 40~3000%까지 최저임금을 올린 이유다. 미국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는 “정당의 목적은 정권의 획득·유지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정책을 고안·실행하는 유인구조가 항상 존재한다”고 했다. 이를 최저임금에 적용하면 극단적으로 100명의 임금 근로자가 있을 때 최저 임금 인상으로 49명이 일자리를 잃고 51명이 임금이 오르면 정치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일 이유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최저임금법을 시행했다. 우파인 이명박(평균 4.9%)·박근혜(7.4%) 때보다 좌파인 김대중(평균 9.4%) 노무현(10.4%) 문재인 정부(10.1%) 때 인상 폭이 컸다. 문재인 정부 2년간 29.1%가 올라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넘는 OECD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2019년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국민총소득(1인당 GNI) 대비 OECD 1위다. 과속 인상의 후유증도 심하다. 저숙련 노동자부터 임금과 일자리를 잃고 있다. OECD는 2019년 보고서에서 노동생산성을 뛰어넘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을 완화하라고 권고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다음 달부터 본격 논의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웬만한 기업은 생사마저 불확실하다. 사용자 측은 최소한 동결을 주장한다. 어느 때보다 고용 불안이 커졌다. 노조 입장에서도 임금보다 고용 유지가 중요해졌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수십~수백조 원의 재정을 동원해야 하는 정부도 실패한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일 여력이 없다. 2021 최저임금 협상은 노사정 모두에게 양보와 타협, 배려와 관용을 요구하고 있다. 복잡한 게임이 되겠지만, 최저임금 포퓰리즘에 브레이크를 거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