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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기업 일자리, 월급 줄 돈부터 수혈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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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경제 피가 돌게하라 〈하〉

#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이 오는 25일로 예정된 급여 지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23일 밝혔다.

이스타항공 “3월 급여지급 어렵다” #S&P도 올 한국성장률 -0.6% 전망 #산업현장 지원·규제완화 목소리 #유통업 “의무휴일 적용 중단해야” #재계,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 제언 #회사채 지원도 속도·규모가 중요 #“소비 늘려 위기 벗어날 시기 지나 #제조업 쓰러지지 않을 대책 내야”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는 23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정부의 긴급운영자금 지원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 부득이하게 이달 25일로 예정됐던 급여 지급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내부 자구 노력과 최소한의 영업활동만으로는 기본적인 운영자금 확보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에도 유동성 부족을 이유로 임직원의 급여를 40%만 지급한 바 있다. 기업이 부도난 것도 아닌데 급여를 아예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3일(이하 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약 -0.6%로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S&P는 지난 5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6%에서 1.1%로 내려 잡았다. 이어 이날 다시 전망치를 1.7%포인트 끌어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이 점차 커진 탓이다. 연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8년(-5.1%)이 마지막이다. S&P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부·은행·기업·가계들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이 약 6200억 달러(약 791조원)로 추정된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한국 산업에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처방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장에선 당장 실탄인 현금 유동성 지원을 요청한다. 항공업계에서 보듯, 매출이 없어도 기업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급한 곳은 중소기업이다. 대구 소재 자동차 부품 업체인 현대코퍼레이션의 권택훈 본부장은 “우리는 현대·기아차 같은 원청회사가 한 달만 공장을 닫아도 자금이 막혀 직격탄을 맞는다”고 전했다. 정부도 채권시장 안정펀드와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P-CBO) 확대 등을 밝혔지만 속도와 폭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유사 “수입부과금 감면” 극장 “영화기금 한시 면제를”

코로나19 피해 최소화 위한 산업별 제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 피해 최소화 위한 산업별 제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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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돈줄이 말라버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5개 국적 항공사는 지난 20일 정부에 정부(국책은행)가 항공사 회사채 발행 때 지급보증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항공업계의 자체 신용만으로는 자금을 조달하기 힘든 지경에 몰렸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유통업계에선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잠정적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일 규제의 적용 중단을 열망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체인스토어협회도 ‘국가 비상시국의 방역·생필품 등 유통·보급 인프라 개선 방안’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교통유발부담금 감면 또는 면제 요청도 이어진다. 교통유발부담금은 교통 수요 억제와 교통 개선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인데,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거둬들인 교통유발부담금은 17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부담을 덜어줄 필요도 있다. 정유업계의 숙원은 원유 무관세 도입 및 석유수입부과금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 호주, 멕시코 등인데 이 중 산유국이 아닌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석유수입부과금(L당 16원)의 일시 감면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지난해 정유사들이 낸 부과금은 1조4000억원 선이다. KB증권은 이날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현재 상태론 8302억원, GS칼텍스는 5587억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수요 회복기가 되면 무제한 가동 등 생산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파견·대체근무, 특별연장근로제 등 제도적 기반을 수요 위축기에 미리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지원은 물론 ‘그다음’ 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회적 거리 두기’ 등으로 사람이 모이지 않다 보니 극장 상영관마다 10여 명 남짓한 관람객을 두고 영화를 상영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대학로를 비롯한 공연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에 극장계는 영화발전기금(티켓값의 3%) 한시 면제와, 멀티플렉스가 입점한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줬을 경우 정부에서 주는 혜택(인하분의 50%를 소득세와 법인세로 감면)을 극장 건물주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고 있다. 정부가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는 건물주에게 주는 혜택은 대상이 소상공인일 때만 받을 수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금융 분야로도 번져가고 있다. 당장 3월부터 문제다. 최근 주가 하락으로 주식연계증권(ELS) 관련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시달리는 증권사들이 기업어음(CP) 발행을 크게 늘리면서 단기 자금시장이 경색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당장 시급한 것은 3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약 30조원 규모의 단기 자금”이라며 “단기 자금시장에 즉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 당국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타격이 현실이 됐다”며 “이 타격이 금융섹터에 전해졌다가 다시 실물 경제로 충격이 전이되는 연결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소비를 진작한다고 해서 위기를 벗어날 시기는 지났고,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기·김영주·박성우·하남현·곽재민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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