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텔레그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미국 화가 겸 발명가 새뮤얼 핀리 브리즈 모스(1791~1872)는 1825년 워싱턴DC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고향(뉴헤이번)에서부터 말을 타고 온 전령사한테 편지 한 통을 건네받았다. “아내가 위독하다”고 적혀 있었다. 곧장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편지가 그에게 닿기 이틀 전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도 그가 집에 도착하기 7일 전 끝났다. 그는 ‘먼 곳에 빨리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모스 전신기가 탄생했다. 1844년 워싱턴DC와 볼티모어 간 세계 최초의 전신이 개통됐다. 그는 워싱턴DC에서 볼티모어의 동업자 앨프리드 루이스 베일(1807∼1859)에 첫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What Hath God Wrought(신은 무엇을 만드셨는가).”

전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전보(電報), 영어로는 텔레그램(telegram)이다. 전화 등장 후에도 명맥을 유지했지만, 2006년 2월 서비스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7년 뒤인 2013년 8월, 텔레그램이 세상에 재등장했다. 동명의 인터넷 메신저였다. 개발자는 러시아 소셜미디어인 ‘VK’(브이깐딱쩨)를 만든 니콜라이(40)와 파벨 두로프(36) 형제다. 텔레그램은 광고 없는 오픈소스 무료 메신저를 표방했다. 앱 소스코드 등을 과감하게 공개하고도 보안성을 자신했다. 2014년 2월 메신저 ‘왓츠앱’이 3시간 장애를 일으켰다. 그 사이 텔레그램 사용자가 500만명 늘었다. 세계적인 메신저로 발돋움했다.

2014년 9월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인터넷상의 허위 사실 유포에 강력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메신저 카카오톡 사용자가 대거 텔레그램으로 옮겨갔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다. 검찰이 수사 명목으로 카카오톡을 들여다보자 이에 가속도가 붙었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 보안성이 강력할 거라는 믿음에서다. 그래서일까. 사건마다 단골손님이다. 드루킹 사건 때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스캔들 사건 때도,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 때도 등장했다. 그리고 2020년 또 한 번 사건의 중심에 섰다. 디지털 성범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다. 천인공노 범죄에 치가 떨린다. 구속된 주범 조모씨 신상을 공개하고 포토라인에 세우라는 청와대 청원에 240만명 넘게 동의했다. 이 ‘분수대’를 쓴 이도 그중 한 명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