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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경제 위기 올 줄 몰랐다…코로나 바이러스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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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crisis는 이제 경제위기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애초 ‘병세의 흐름 가운데 결정적이어서 해결책이 필요한 순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krisis에서 왔습니다. 실제 글로벌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전염으로 ‘결정적이고 해결책이 필요한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메리 모건 교수(경제사상사)는 “위기 순간 경제 전문가와 시장 참여자들이 서가의 먼지 속에 있는 경제사를 꺼내 해결의 단서를 찾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 속 위기 사례와 현재를 견줘보는 ‘Crisis 스토리’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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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한해 미국에서 독감으로 몇 명이나 숨지는지 아는가? 2만 명 정도다.”
코로나19가 중국에 이어 한국과 일본에서 발병하기 시작한 올 1월 중순 무디스애널리틱스 소속 이코노미스트인 토니 휴즈 박사가 이메일 답변에서 한 말이다. 바이러스가 경제위기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Crisis 스토리①] #‘패닉 1825’ 이후 홍수와 흉년, 전염병발 위기는 거의 없었다. # 패닉 진정은 코로나19 전염 속도, 치료제 개발 여부에 달렸다 #통화와 재정 정책은 고통을 줄이는 감기약에 지나지 않는다.

휴즈 박사의 코멘트 이후 두 달 정도 흘렀다. 글로벌 경제가 미물인 바이러스에 흔들거리고 있다. 채권과 주식 시장이 요동했다. 금융회사와 큰손들이 노는 단기 자금시장 여기저기서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양적 완화(QE)를 재개했다. ‘돈의 홍수’를 일으키고 있는 모양새다.

심지어 미국과 영국 등 주요 나라가 파격적인 재정정책을 내놓고 있다. 기업과 개인에 대한 금융지원 차원이 아니다. 직접 개인과 사업주에 현찰을 주는 대책마저 내놓고 있다. 세계 경제가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바이러스 역습, 경제 외적인 변수가 부활했다

놀라운 반전이다. 사실 휴즈만이 코로나19 위력을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가 2003년 급성호흡기증후군(SARAS)처럼 코로나19 탓에 소비와 생산이 줄어도 가파르게 반등한다는 쪽이었다.

'위기 전문가'인 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위기 역사에서 전염병 등 경제 외적인 요인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기 전문가'인 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위기 역사에서 전염병 등 경제 외적인 요인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전문가들이 초기에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봤을까. 답은 요즘 경제 전문가들이 공유하는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위기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대 카멘 라인하트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6월 기자와 인터뷰에서 “위기를 촉발한 원인 가운데 비경제적인(exogenous) 요인은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비경제적인 요인이란 바로 전염병ᆞ흉년ᆞ홍수 등이다. 휴즈 등이다. 이런 요인이 일으킨 위기가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라인하트는 이른바 ‘위기 전문가’다. 그는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66개 나라에서 최근 800년 정도 사이에 일어난 위기를 분석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지금은 다르다』이다.

‘패닉 1825년’은 위기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실제 우리가 기억하는 위기는 거의 100% 경제 내적인(endogenous) 요인들에 의해 일어났다. 투자ᆞ생산 과잉,  유동성 급증, 신기술 환상 등이었다. 경제학 교과서를 펼치면 위기 요인으로 흉년과 전염병 등 외적인 변수가 설명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산업혁명 이전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한 시점 이후 경제 외적인 변수가 야기한 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바로 ‘1825년 패닉(Panic of 1825s)’이다. 이스라엘 벤구리온대 아리 아논 교수(경제학) 등은 “1825년 패닉이 최고의 자본시주의 시장경제적 위기”라고 말했다. 순수하게 경제 내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첫 위기여서다.

직전 영국에서는 남미 투자붐이 불었다. 산업혁명도 본격화했다. 시중은행이 금본위제 아래에 있었지만, 자체 은행권을 찍어 유동성 공급도 빠르게 늘렸다. 결국 사달이 났다. 남미 채권이 부도났다. 순식간에 런던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위기는 도버해협을 건너 유럽 대륙으로 번졌다. 이렇게 시작한 경제 내적인 위기는 2차대전 이후 거의 모든 위기의 일반적인인 패턴이 됐다.

경제대책은 치료보다는 고통을 줄여주는 감기약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경제를 얼마나 할퀴고 지나갈지 가늠할 선례나 공식이 시장 참여자들의 머리에 없다. 그 바람에 주가가 추락했다. 코로나19 상흔을 얼마로 평가해 주가에 반영할지 모르니 일단 팔아 현찰로 바꿔놓고 본다.

낯선 원인 탓에 피해 예측 시나리오도 편차가 크다. 몇몇 전문가들은 현재 글로벌 경제가 올 2분기에 침체에 빠졌다가 빠르게 회복한다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헤지펀드 그루’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 회장은 “세계 기업들이 입을 피해가 12조 달러(약 1경5000조원)에 이른다”을 예측을 내놓았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의 8배에 이르는 피해 규모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나라 경제정책 담당자들도 코로나 사태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일단은 2008년 위기 때 쓴 처방으로 구성된 대응전략(playbook)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와 QE,  개인ᆞ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등을 쏟아내놓고 있다.

잊혀진 변수인 전염병이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의 시장 참여자들은 피해를 가늠하지 못해 패닉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잊혀진 변수인 전염병이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등의 시장 참여자들은 피해를 가늠하지 못해 패닉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부활의 첫 단추인 패닉 진정이 경제 내부 메커니즘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폴 애스워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전염이 정점에 이르거나 치료 백신의 개발에 중요한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금융시장 패닉은 좀체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위기 때는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정부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어느 정도 수준이면 패닉이 진정됐다. 결국 지금까지 경제대책은 고통을 줄이고 시간을 버는 용도에 가깝다. 전염의 속도ᆞ규모, 치료제 개발은 경제 관료나 중앙은행가가 직접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어서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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