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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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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전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쓰나미에 떨고 있다. 방파제가 될  6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 스와프가 성사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어떤 제약도 뛰어넘어야 한다.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발언이 현실로 이뤄지기 바란다.

MB의 2008년 위기 극복 배워야 #강만수, 연준 움직여 통화 스와프 #감사원장 시켜 공무원 실수 면책 #실패 정책 수정할 좋은 기회 왔다

그러려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이명박(MB) 정부를 연구해야 한다. 미국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하자 MB는 “위기 때는 현금이 가장 중요하다”며 한·미 통화 스와프 추진을 지시했다. 정의와 윤리라는 추상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이런 경제 현실감각이 취약하다. 이걸 인정해야 해법이 나온다.

MB 정부도 처음에는 미국 측으로부터 “통화 스와프가 뭔지나 아느냐”는 면박을 당했다. 놀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뉴욕으로 날아가 씨티은행 고문인 루빈 전 재무장관과 로즈 씨티은행 부회장을 만났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 행장이 주선한 자리였다. 강만수는 “미국이 일으킨 위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받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이  위기관리를 위해 보유 중인 미국 재무부 채권을 팔면 미국 통화정책을 저해하는 역류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했다. 당당하게 통화 스와프를 설득하고 압박했다.

루빈의 마음이 움직였다. 로즈 부회장은 결정적인 권한을 가진 실력자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만나 강만수와 루빈의 뜻을 전했다. 가이트너는 “100% 가능하다”고 했다. 10월 30일 300억 달러의 한·미 통화 스와프가 발표됐다. 기축통화인 달러와 원화가 맺은  최초의 경제동맹이었다. 강한 달러가 초래할 세계경제 파산 도미노가 미국에 미칠 충격을 예방하기 위해 연준이 서둘러 9개국과 체결한 이번 통화 스와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일본과도 각각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강만수는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을 만나 “한·중 통화 스와프는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설득했다. 소극적이었던 일본은 한·중 합의 소식을 듣고서야 돌아섰다. 위기의 한국이 세 강대국을 우군으로 만든 과정은 지금의 정부가 반드시 복기해야 한다.

MB의 비상경제대책회의는 2009년 1월 8일부터 2012년 12월까지 145차례 열렸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정책이 올라오면 대통령은 장관, 청와대 참모들과 치열하게 토론해 이견을 조정한 뒤 집행했다.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MB에게 “‘대통령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언성을 높이면 웃으면서 수용했다. MB는 대인배였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대응 정책 집행 속도는 느리다. 한 달간의 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률은 10%에도 미달한다. 민생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MB는 현장에서 62차례 회의를 했다. 사채업자에게 꾼 100만원이 불어나 매달 600만원의 원리금을 갚는 김밥가게 주인이 “은행권에서 대출받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자 바로 해결해 줬다. 내친김에 미소금융을 포함한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다. MB는 김황식 감사원장에게 지시해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의 실수를 문제삼지 않는 적극행정 면책제도도 만들었다.

MB는 새해 초부터 3월까지 이뤄지던 대통령 업무보고를  2008년에는 12월에 끝내도록 했다. 2009년 예산은 1월부터 집행됐고, 64.8%의 예산이 상반기에 집행됐다. 이렇게 해서 2009년의 위기를 넘겼고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8%를 뛰어넘는 6.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 경제가 침몰할 것”이라고 했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위기를 통제하는 데 만점을 받았다”고 격찬했다.

위기에는 최고의 인재를 써야 한다. MB는 강만수·윤증현·김석동·박병원·최중경·김대기를 기용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했다. 미국에서도 통하는 일류 경제학자들에게 청와대와 정부의 요직을 맡겼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의 김대중 정부도 동교동계를 배제하고 김용환·이규성·이헌재·진념·강봉균·정덕구를 중용했다. 문 대통령은 김석동·박병원과 글로벌 금융의 실력자 하영구를 포함한 경제드림팀을 구성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최종 성적표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취약계층 지원에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 미국과 EU처럼 파산위기의 기간산업 지원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는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4차산업 시대의 선두주자가 되기 위한 규제개혁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세계 제일의 원전 강국 지위를 포기하고 멀쩡한 두산중공업을 죽이는 탈원전 정책은 접어야 한다.

위기에는 역설적으로 실패한 정책의 궤도를 과감하게 수정할 기회가 주어진다. “모든 자원과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대통령 발언에 주목한다. MB는 논쟁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노하우는 활용돼야 한다. 끔찍한 ‘코로나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전 세계가 겪는 지금의 위기를 선용(善用)하면 이번 세기에 한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