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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의 시선

바늘 도둑 야당, 소도둑 여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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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걸까. 정치권에 ‘도둑놈 비유’가 바이러스처럼 창궐하고 있다. 여야는 줄기차게 상대 당의 ‘의석 도둑질’을 고발한다.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악용해…블라블라…국민 표심을 훔치려 한다”는 주장이다. 중간을 생략한 건, 여야가 떠들어대는 논리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갸웃거려서다. 제대로 들리는 건 ‘도둑놈’ 소리뿐, 정치인의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여야, 서로 “의석 도둑질” 비난 #후보 명단 개입해 ‘장물’ 세탁 #예고된 범죄, 국민은 어금니 ‘꽉’

“위성정당이라는 반칙과 편법으로 의석을 도둑질하려 한다.”(지난 1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든 것을 도둑질이라 했다. 앞서 “위성정당은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고 정치를 장난으로 만든다”는 소신을 밝혔던 그다. 위성정당은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 기회를 주자는 입법 취지를 왜곡해 사실상 통합당의 비례대표 의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도 민주개혁 진영의 비례연합정당에 참가하는 명분이 됐다. 듣도 보도 못한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시민을위하여’와 연합해 비례정당을 만들었다. 이름은 더불어시민당으로 바꿨다. ‘같은 성’을 가진 정당의 후보 검증도 민주당이 맡았다. 도대체 누굴 향해 ‘도둑질’ 비난을 했는지 헷갈리는 국민은 따지고 싶다. “그런 게 위성정당 아닌가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다.”(지난 17일,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

심재철 원내대표는 민주당을 향해 ‘도둑놈이 도리어 매를 든다’고 비판했다. 통합당의 ‘의원 꿔주기’를 맹렬히 비판한 민주당 아니던가. 심 원내대표는 더불어시민당을 향해 “선거 앞두고 급조한 떴다방”이라고 했다. 혼란스런 와중에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은 자매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괴물 선거법을 통과시킨 범여권에 있다”면서다. 지켜보는 국민은 가슴 깊은 울분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자매당과 떴다방은 뭐가 다른데요?”

“경찰차가 출동하는데 왜 숨겨야 하느냐.”(지난 17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여야의 도둑질 공방에 자칭 ‘어용’ 독설가도 발을 담갔다. 유시민 이사장은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서 “기왕 만드는 건데 뭘 쭈뼛쭈뼛하느냐”라며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도둑을 잡으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한국당은 도둑차, 더불어시민당은 경찰차라는 얘기다. 그는 “민주당이 소수 정당의 몫을 가져가는 게 아니다”고 강변했다.

“경찰차가 아니라 도둑차니까 숨기는 거지.”(지난 18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교수가 유 이사장의 발언에 “참 멍청한 질문”이라며 한 말이다. 그의 비유는 뼈를 때린다. “이웃집 사람(통합당)이 마트에 들어가 물건(비례대표 의석)을 훔쳐 그에게 ‘도둑놈’이라고 온갖 욕을 퍼부어댔는데, 가만 보니 그놈이 자기보다 부자(총선 뒤 다수당)가 될 거 같다. 참을 수 없어서 그놈보다 부자가 되려고 자기도 같이 훔치기로 한다.” 이어 “마트 주인이 들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두 번째 (도둑)놈은 더 나쁘다. 범죄를 위해 아예 단체까지 구성했으니까”라고 했다.

누가 더 나쁜 도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야당이 바늘도둑이든, 여당이 소도둑이든 달라질 건 없다. 원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니까. 위성정당은 ‘위선정당’을 넘어 ‘위헌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 와중에도 ‘장물’(훔친 의석) 세탁 궁리만 하는 여야의 모습에 개전의 정은 없다.

장물은 민주당 금고에 쌓이게 될 것이다. 군소 정당의 국회 진출이라는 명분으로 친문·친조국 의원이라는 실리를 세탁하고 포장할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의 한 권리당원이 당원 게시판에서 “듣보잡 미니정당을 끌어들여 앞줄 세우는 행위는 진짜 원내 진입에 도전하던 당에 돌아갈 표를 도둑질하는 행위”라 했겠는가.

한발 앞서 위성정당의 길을 개척한 통합당도 꼼꼼하지 못해서 ‘자매’에게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맘에 안 드는 명단을 갈아 끼우고 ‘금전 관계’를 정리 중이다. 쫓겨난 동생은 언니에게 “참으로 가소로운 자들” “한 줌도 안 되는 야당 권력을 갖고 부패한 권력이 개혁을 막았다”고 했다가, “경솔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백기를 들었다.

이렇듯 여당이 고발하고, 야당이 폭로한 떠들썩한 도둑질이 23일 뒤 4·15 총선에서 자행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 예언을 듣고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위눌려 ‘도둑이야’ 소리 지를 여력이 없는 국민은 조용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다.

김승현 논설위원 겸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