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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이토카인 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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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면역 폭풍? 젊고 건강하면 다행인 거 아닙니까. 면역력이 좋아서.”(유시진)

“그게 아이러니한데 면역력이 좋아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강모연)

한류에 다시 불을 지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인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 분)이 나누는 대화다. 가상의 국가 우르크에 파병된 군인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드라마에서 군의관으로 파병된 윤명주 중위(김지원 분)가 가상의 M3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강모연의 걱정대로 고열 등을 동반한 면역 폭풍이 나타나고 윤 중위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치른다.

이들이 말한 ‘면역 폭풍’은 신체가 과도한 면역 물질을 분비해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면역 과잉반응을 일컫는다.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다. 사이토카인은 바이러스 등 외부 침입자가 몸에 들어오면 다른 면역세포를 자극해 병원체와의 싸움을 유도하고, 감염 상태에 따라 분비량을 조정하는 등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문제는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를 공격할 때다. 목표물을 ‘정밀 타격’하는 유도탄이 아닌 일대를 몽땅 태우는 네이팜탄처럼 감염 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조직과 장기까지 망가뜨리게 된다. ‘자폭’ 현상이다. 고열과 내출혈 등을 동반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은 면역 체계가 강력한 젊은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최악의 감염병 사례로 기록된 스페인 독감과 사이토카인 폭풍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1918년 발병한 뒤 최소 5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 70% 이상이 25~35세 젊은 층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 요인이 있기는 했지만 면역 폭풍이 젊은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사이토카인 폭풍이 화제의 키워드가 됐다. 방역 관계자가 26세의 코로나19 환자와 사이토카인 폭풍의 연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다. 젊은층도 안전지대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노인이 코로나19의 가장 큰 타격을 받았지만 젊은이도 천하무적이 아니다”며 “아프지 않더라도 당신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몸속의 면역 폭풍이든, 사회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감염 폭풍이든 자유로운 이는 없다.

하현옥 복지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