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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 수입 0원" 코로나 사각지대서 신음하는 독립·예술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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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찾아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을 찾아 코로나19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2, 3월 배급 수입은 ‘0’이다. 개봉하기로 했던 영화들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수익 창출이 아니라 손실 최소화가 목표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의 말이다.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5일 개봉) ‘비행’(19일 개봉)의 홍보사 필앤플랜 조계영 대표는 “코로나 때문에 극장에 영화 보러 오라는 말을 하기도 힘들다”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여파로 영화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평일 하루 극장 관객 수는 16일부터 전국 3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이 중 독립‧예술영화 관객 수는 올 3월 들어 21일까지 25만 명. 지난해 같은 기간 142만 명의 18%에 불과하다.

울면서 개봉하는 독립·예술영화들

그럼에도 독립영화들은 자본이 큰 대작들처럼 개봉 연기도 여의치 않다. 예산이 워낙 빠듯해 마케팅 기간이 지연되면 불어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코로나 19 확산 속에 개봉한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한 장면. [사진 찬란]

코로나 19 확산 속에 개봉한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 한 장면. [사진 찬란]

“극장 대관은 취소한다 해도, 이미 나온 전단, 프로모션 용품도 다시 찍어내야 한다. 그렇게 해도 홍보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독립영화 배급사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의 말이다. 이 배급사는 신작 ‘이장’의 개봉을 코로나 19로 인해 5일에서 한차례 미뤘다가 25일 개봉하기로 확정했다. “일정을 계속 미루느니 먼저 푸는 게 낫지 않나 싶었는데 (아직 코로나 사태가 안정화되지 않아) 조심스럽다”고 곽 대표는 말했다.

IPTV도 극장 개봉해야 제값 입성  

중소규모 영화사의 경우 영업수입이 없으면 당장 운영이 막막하다는 것도 한 이유다. 상업영화까지 일제히 개봉이 밀린 상황에서 작은 영화들은 일정을 늦춰도 상영관을 확보하기 어려우리라는 판단도 있다.

IPTV 직행도 마땅치 않다. 극장 상영 여부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상진 대표는 “영진위에서 예술영화로 인정받으면 5개 스크린, 예술영화 인정을 못 받으면 30개 스크린 이상 개봉해야 IPTV에서 (동시 개봉 기준) 편당 1만원에 개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 못 하면 신작이라 해도 IPTV 편당 이용금액이 그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발로 뛰는 작은 영화, 관객 만남 고민

'재꽃' '스틸 플라워' 등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박석영 감독은 새 영화 '바람의 언덕'을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을 돌며 공동체 상영으로 선보였다. 오는 4월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박석영]

'재꽃' '스틸 플라워' 등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박석영 감독은 새 영화 '바람의 언덕'을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광주, 제주 등 전국을 돌며 공동체 상영으로 선보였다. 오는 4월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박석영]

광고 대신 발로 뛰는 작은 영화 특성상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하지만, 요즘은 극장 행사도 쉽지 않다. “호흡의 장 자체가 관객한테 두려움을 줄 수 있고”(정상진 대표) “극장도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우려로) 관객을 끄는 행사에 호의적이지 않아서”(조계영 대표)다.

부산 영화의전당,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 서울 아리랑시네센터, 인천 영화공간주안 등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독립‧예술영화관은 잠정적 무기한 휴업에 돌입한 상태다. 그나마 남은 영화관도 운영이 쉽지 않다. 서울 동작구에서 예술영화 전용관 아트나인도 운영하고 있는 정상진 대표는 “영화관 관리비, 아르바이트 비용도 안 나오는 상태”라 전했다.

"정부 대책 규모 큰 곳 우선" 지적 

서울 종로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좌석의 절반 이하만 예매가 되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 인디스페이스]

서울 종로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좌석의 절반 이하만 예매가 되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 인디스페이스]

정부 대책이 일부에 편향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코로나 19 피해를 입은 영화관들을 위해 매월 납부해야 하는 영화발전기금 납부를 올 연말까지 유예해주고 손 세정제를 보내는 등 방안을 내놨다. 서울 종로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은 “현행 코로나 대책이 8개관 이상 멀티플렉스 등 규모가 큰 곳을 우선하고 있다”면서 “향후 정책도 같은 기조면 비영리‧비상업적 독립영화인들은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예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독립‧단편 영화의 경우 (찾아가는) 공동체 상영이 중요한 수익 구조인데 대부분 취소된 상황”이라면서 “당장 상영이 어렵더라도 일자리가 끊기고 수입도 없는 독립영화인들에게 상영지원금을 선지급하는 등 폭넓은 지원 방법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장 매출 곤두박질…투자 악순환

장기적으론 프랑스 칸영화제를 비롯해 전주국제영화제,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등 국내외 주요 영화제 개막 일정이 밀린 여파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인감독의 독립영화는 첫 데뷔 무대인 영화제 상영이 추후 배급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경쟁 부문 ‘프리미어(최초 공개) 규정’을 갖춘 영화제의 경우 개막 일정이 밀리면 초청작들의 이후 상영 일정 전체가 꼬일 수 있다.

촬영 장소 등을 섭외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영화들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영화 프로듀서는 “요즘은 학교·병원 등 촬영 섭외가 어렵다”면서 “극장 체인을 가진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극장 매출이 곤두박질치며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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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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