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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사건과 '조국사태' 엮었다···진실보다 그럴듯한 음모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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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21세기 'on liberty'

'나꼼수'의 주축은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등이다.

'나꼼수'의 주축은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등이다.

지난회 '인간혁명'에서는 '조국 사태'를 중심으로 한국의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확산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인지적 편향 이론의 관점에서 행동 편향, 부정 편향 등을 논의했죠. 그 중 핵심은 오늘 살펴볼 이야기 편향, 즉 음모론입니다. 이는 가짜 뉴스나 근거 없는 이야기가 대중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는 현상입니다.

 이를 가장 많이 활용한 집단 중 하나는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들입니다. 처음 이들은 “국내 유일의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한 의혹 제기로 진실을 밝히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측면도 있지만 문제점 또한 많았습니다.

  나꼼수의 기본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은 팩트와 팩트를 연이어 나열하고, 이들 사이에 ‘합리적 의심’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해 ‘상상력이 뛰어난’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선후관계나 심지어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팩트들까지 ‘합리적 의심’에 따라 인과성을 부여하죠. 수용자들에겐 그들의 이야기가 매우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나꼼수가 만들어낸 과도한 편파와 음모론의 폐해는 매우 컸습니다.

왜 21세기 '온리버티'인가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on liberty)』은 J.S. 밀이 1859년 출간한 자유주의의 교과서입니다. 철학에서의 ‘자유의지’와 달리 ‘사회적 자유’란 무엇이며, 이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깊은 통찰력으로 논했습니다. 밀은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역사를 발전시키는지 체계적으로 논증한 최초의 학자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온리버티’는 새 시대에 걸맞은 21세기의 ‘on liberty’라는 뜻과 ‘only liberty’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only liberty’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처럼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의 모든 권리와 가치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최후에 남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 뿐(only liberty)이라는 이야기죠.
   ‘온리버티’는 인간 이성의 마지막 보루인 자유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합니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끝나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날카로운 현실 비판과 인문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음모론

 부정적 측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비합리적인 접근 방식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잘 짜인 각본같이 딱 떨어지는 서사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보다 더 설득력 있어 많은 이들에게 소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음모론의 나라’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로 음모론이 공론장에 자주 등장합니다.”(한보희. 2013. ‘음모 대세: 혹은 음모론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문학과 사회26)

 ‘조국 사태’ 당시 가장 많이 나온 음모론은 검찰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 전 장관의 검찰개혁이 두려워 윤석열 검찰총장이 표적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죠. 이런 논리에 따라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은 검찰 개혁을 외치며 각종 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사건건 윤 총장의 발목을 잡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동도 그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조 전 장관에 대한 각종 의혹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자 적극적으로 음모론을 폈습니다. 그러자 한국일보(2019년 9월6일)는 “민주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구하기가 산 넘어 산이다. 연일 새로운 의혹이 터지면서 온 여권이 ‘궤변 총력전’에 동원되거나 진영논리에 빠져 논란을 자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조 전 장관의 딸 표창장과 관련해 여권의 회유 의혹을 제기한 최성해 동양대 총장을 “태극기 부대”라고 비하한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음모론을 적극 이용하는 여야 정치권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가운데)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가운데)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사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9월 5일 최 총장을 향해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태극기 부대’에 가시던 분”이라며 “우리한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당 페이스북에 “최 총장은 한국교회언론회 이사장이며, 극우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고 올렸다가 ‘극우적 사고’라는 표현을 뒤늦게 뺐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는 “평소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던 민주당이 편가르기 발언으로 최 총장을 폄하했다”고 평했습니다.

 한편 보수 진영에서는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가 밝혀진 것이 ‘조국 사태’를 덮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됐습니다. 이 같은 음모론은 결국 ‘진영 논리’만 심화시킵니다. 음모론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모든 이슈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강준만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가 우리 편에 유리하면 국민의 위대한 선택이고 불리하면 반대파의 공작과 음모라고 돌린다”며 “누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 평가하는 기준은 오로지 우리 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왜 대중은 반지성주의에 매료되는가’. 정치정보연구22)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

지난 1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도로에서 열린 '조국수호 서초달빛집회'. 정은혜 기자

지난 1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도로에서 열린 '조국수호 서초달빛집회'. 정은혜 기자

 개인들이 인지적 편향에 따라 진영 논리에 빠져드는 사이 정치권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지지자를 결집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죠.

 특히 ‘조국 사태’ 국면에서 자유한국당은 조 전 장관 개인에 대한 비리 문제를 넘어 정권 차원의 게이트로 확대 재생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보수 진영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권 퇴진’, ‘문재인 out’ 같은 구호들이 나오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최한 집회를 찾아가 ‘숟가락을 얻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서울·고려대 학생들이 주최한 집회에서 정치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학생증이나 졸업증명서를 검사하는 일까지 벌어졌을까요.

 다양한 사회 갈등과 균열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해 정치적으로 대중을 결집시키는 현상을 ‘편향성의 동원’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진보 진영의 대규모 서초동 집회가 처음 있고 난 뒤 더불어민주당은 집회 참가 규모를 놓고 국민의 뜻이라며 침소봉대 했습니다. 당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폭주에 보다 못한 국민이 나섰다, 어제 200만 국민이 검찰청 앞에 모여 검찰개혁을 외쳤다”고 밝혔습니다.

여야 가리지 않는 집회 숫자 부풀리기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뉴시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뉴시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민주당의 ‘숫자 부풀리기’라며 즉각 반발했습니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국 지지시위' 참가 인원은 많아야 5만 명에 불과하다, 현장에 '조국 사퇴' 시위대도 섞여 있었고 '서리풀 축제' 참여한 시민들이 혼재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이 쓰는 '페르미 기법'을 적용하면 사람이 서있을 때를 가정해 평당 최대 9명씩 총 5만 명”이라고 설명했죠.

 그러나 며칠 후 광화문 보수 집회에선 한국당 역시 ‘숫자 부풀리기’를 시도합니다. 10월 3일자 서울신문은 “자유한국당은 집회 참석 인원을 300만 명 이상으로 추정했고,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2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단상에 올라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이다, 지난번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보셨느냐, 그들이 200만이면 우린 오늘 2000만이 왔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당 이학재 의원도 “문재인 정권을 퇴진시켜야 한다, 문재인을 둘러싸고 있는 쓰레기 같은 패거리들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민이 빠진 정치권의 대중 동원 

지난해 9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전 장관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뉴스1]

지난해 9월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전 장관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뉴스1]

 이처럼 여야 할 것 없이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아전인수 식으로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정당과 정치 엘리트가 여러 균열 중 특정 균열을 선택적으로 동원하고 배제한다,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 효과는 자신에게 유리한 균열을 동원하고 그렇지 않은 균열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지금까지 ‘온리버티’는 ‘조국 사태’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인지적 편향의 관점에서 살펴봤습니다. 인지적 편향에 빠진 개인들이 편향성의 동원을 일삼는 정치세력과 맞물리면서 반지성주의는 중우정치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런 반지성주의는 비단 한국 사회만의 일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성숙도가 높은 지금의 미국 사회도 트럼프 대통령을 전후로 반지성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극우·극좌의 포퓰리즘 정당이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이처럼 반지성주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반지성주의와 이로 인한 중우정치는 시민의 수준이 낮고 이를 악용하는 정치세력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반지성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라파엘로는 그리스 문화의 부활을 꿈꾸며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화면 정중앙의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이상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옆에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를 강조했다. 그림 왼편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중앙포토]

 성숙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비판적 지성으로 정치권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한다면 정치의 수준도 낮아질리 없습니다. 4·19 혁명과 6월 항쟁이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 있어 시민의 힘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혁명과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 것과 그 이후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정착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일입니다.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확산하고 체화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민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고 성숙한 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듯 문명을 발전시킨 것은 지성의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치인의 화려한 수사를 걸러내고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깨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가는 늘 ‘위대한 국민’, ‘현명한 민심’과 같은 레토릭으로 시민을 치켜세우고 눈을 가리려 합니다. 이들은 시민의 표와 지지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의견에 쉽게 동조하고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팬덤(fandom)’을 키우길 희망합니다.

 그러나 ‘팬덤’의 ‘팬(fan)’은 라틴어 ‘fanátĭcus’에서 유래한 말로 ‘광신자’를 뜻합니다. 옳고 그름과 진위를 따지는 이성의 개념이 아니라 좋고 나쁨을 뜻하는 감정의 언어죠. 정치인에겐 광신적 팬덤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자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반지성주의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시민뿐입니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sam@joongang.co.kr

#유튜브에서도 인간혁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pp-I9olmN4

윤석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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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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