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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왜 홀로 산막에?” 누군가 묻는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51)

봄이 어디쯤 왔나? 누리 앞세워 뒷산에 올랐더니 아직도 봄은 오지 않았다 하더라. 혹시 싶은 마음에 누리 뒤를 쫓았으나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봄이 아니면 아니지 싶어 원두막에 올라본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맑고 명징한 의식으로 나의 봄을 기다려 본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함께가 오래다 보니 따로가 그리워진다. 곡우 여행 갈 때가 되었는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가질 못하니, 곡우도 나도 익숙지가 않다. 내가 갈까보다 했더니 자기가 간단다. 에라 모르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니 일단 먹고 보자. 해물 미나리 전에, 콩나물국밥에, 오이소박이. 여기에 막걸리 한 잔이 빠질 수 없지.

코로나 때문에 산막에 콕 박혀 지내는 요즘. 먹방이 빠질 수 없다. [사진 권대욱]

코로나 때문에 산막에 콕 박혀 지내는 요즘. 먹방이 빠질 수 없다. [사진 권대욱]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사람의 루틴은 이렇게 중요하다.

이 세상에 많은 물음이 있다. 대답이 필요한 물음도 있고 답이 없는 물음도 있으니, 반드시 답이 필요한 물음은 심오하지 않고, 심오한 물음에는 답이 없다. 왜 사느냐? 왜 산속에 있느냐? 그럴 땐 그냥 슬며시 웃기만 하자. 이 세상 가장 멋진 대답은 ‘소이부답(笑而不答)’.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빙그레 웃을 뿐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로운 것이다. 소이부답의 출처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읽어 보시라. 웃으시고 한가로우시라.

問余何 事棲碧山笑(문여하 사서벽산소)
-묻노니 그대는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뇨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을 뿐 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다
閑桃花流水(한도화유수)
-복사꽃은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杳然去別有 天地非人間(묘연거별유 천지비인간)
-별천지에 있는 것이지 인간 세계가 아니로다
問余何 事棲碧山笑(문여하 사서벽산소)
-묻노니 그대는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뇨
而不答心自(이부답심자)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왜 회사에 다니나? 왜 홀로 산막에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소이부답(笑而不答). 오늘의 내 심사가 딱히 그렇다.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산막이고 그래서 스쿨이다. 나는 산막의 신새벽,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좋아한다. [사진 pexels]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산막이고 그래서 스쿨이다. 나는 산막의 신새벽,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좋아한다. [사진 pexels]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몸과 맘이 둘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힘들어 때로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이름하여 오늘은 나무 데이. 계곡 공사로 베어진 잡목은 다음 기회에 정리해야겠다. 그 뿌듯함은 말로 못 한다. 그 만족을 알기에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도 나무 데이, 진짜 나무 데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장비 준비하고 날 잡을 거다.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산막이고 그래서 스쿨이다. 나는 산막의 신새벽,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을 좋아한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나 장작불 타는 소리, 굴뚝에서 피어나는 파란 연기를 좋아하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마음의 평온을 좋아한다. 산막의 아침에는 자유가 있다. 무엇이든 할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다.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고 무엇이든 이뤄야 할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을 때 공부하고 자유롭고 싶을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이 세상 모든 일엔 양면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다. 그러니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는 말이다. 공자의 조카 공멸과 제자 복자천이 각기 벼슬하여 잃은 것과 얻은 것만 말하고 있지만, 공멸인들 잃기만 했겠으며 복자천인들 얻기만 했을 것인가.

코로나 또한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많이 잃었다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경제가 나빠지고, 장사가 안되고, 움직일 수 없고, 우울해지고, 사람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나쁜 점이 있겠지만, 좋은 점인들 왜 없겠는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슨 거대한 담론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울한 시기 잠시 가벼운 이야기로 여유를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이 또한 지나간다. 모두 파이팅.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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