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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재테크가 국민 폭탄 될라…증시 급락에 'ELS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 불리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리스크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해외 지수형 ELS 투자자가 무더기 손실 위험에 처한 데 이어, 이젠 판매사인 증권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덮친 결과다. 대체 이 상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이 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식 중개인이 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해외 증시 폭락에 투자자 비상

ELS는 주가지수나 종목 같은 이른바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주도록 만들어진 파생상품이다. 예컨대 1년 뒤 코스피200 지수가 현재 수준의 60% 이상을 유지하면 연 4%의 이자를 주는 식이다. 주식 투자보다 위험이 낮으면서 예·적금보다 기대 수익률이 높다는 매력에 투자자가 몰렸고, 증권사도 ELS 발행을 늘렸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ELS 발행액은 약 100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상품은 주식시장이 안정적이거나 상승기 땐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증시가 급락할 땐 '폭탄'이 된다. 특유의 상품 구조 때문이다. ELS는 통상 기초자산이 기준가 대비 35~40% 초과 하락하면 손실 가능(녹인) 구간에 진입한다. 최근 코로나19 공포로 글로벌 증시가 고점 대비 30~40% 급락하면서 ELS 상당수가 손실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ELS 발행 잔액은 48조5000억원 정도다.

기초자산이 늘어난 것도 위험 요인이다. 과거엔 ELS 기초자산이 1~2개였지만, 최근엔 3~4개씩 담는다. 한 곳만 무너져도 손실 위험이 생기는 셈이다. 특히 유로스톡스50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홍콩H 등 해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둔 상품이 대거 손실 구간에 들어갔다. 유로스톡스50지수 ELS 미상환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 41조원이 넘는다. 김고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유로스톡스50의 경우 현재 2500선에서 2000선까지 지수가 밀릴 경우 고객 원금 손실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증권사, 마진콜에 '달러 확보' 비상

증권사 역시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다. 증권사는 ELS를 발행하면 가입자에게 수익을 주기 위해 헤지(위험 회피)를 한다. 헤지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손실이나 이익을 외국계 증권사 등에 넘기는 '백투백 헤지'와 직접 투자 방식의 '자체 헤지'다. 대개 중소형사는 백투백, 대형사는 자체 헤지 비중이 높다. 특히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의 자체 헤지 비중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체 헤지 계정을 보유한 국내 증권사 물량은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시장 악화로 ELS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해외지수가 폭락하자 증권사가 자체 헤지를 위해 매수한 파생상품에서 증거금을 더 내라는 요구(마진콜)가 빗발쳤다. 증권사는 손실에 대비해 일정 비율의 증거금을 쌓도록 하고 있다. 당장 돈이 없는데, 일부 증권사는 1조원 넘게 필요한 상황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지난주부터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는 과정에서 마진콜 규모가 누적해서 1조원 정도 생겼다"고 했다. 이에 증권사들은 보유하고 있던 기업어음(CP)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시장에 내다 팔며 달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이 때문에 실적이 타격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B증권사 관계자는 "CP를 팔아서 재원을 마련하지 않고, 충분히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 실적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 "ELS 투자 너무 많아 위험 키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3일 오후 주식시장이 마감된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3일 오후 주식시장이 마감된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금융위원회 논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권사의 '달러 확보'로 CP 금리가 뛰자 정부도 화들짝 놀랐다. 지난 19일 기준 CP 91일물 금리는 연 1.434%로 2월 말 대비 0.254%포인트 급등했다. 20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6개 증권사 관계자를 불러 CP 등 단기금융시장 유동성 실태를 점검했다. 가뜩이나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 확보 비상이 걸린 상황이어서 금융당국은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마진콜 발생 규모는 해외주가지수 수준, 환율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며 "혹시 쏠림이 있진 않은지 금융당국이 계속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ELS 투자를 너무 많이 한 것이 위험을 키웠다"며 "코스피200지수 연계 ELS 경우에도 (헤지 물량 때문에) 오히려 주가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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