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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급상승 짜파게티, 짜장 스프 아이디어는 어디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84년 출시 당시의 포장. 사진 농심

현재 포장의 모습. 사진 농심

‘첫 전성기보다 막강한 제2의 전성기’

[한국의 장수 브랜드]31.짜파게티

짜장라면 ‘대표선수’ 짜파게티의 요즘은 이렇다. 1984년 3월 19일 출시된 이후 큰 굴곡 없이 잘나갔다. 하지만 요즘은 영화 ‘기생충’을 등에 업고 국제적 명성까지 얻었다. 같은 집(농심) 식구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신라면의 자리를 넘보기에 이르렀다. 지난해엔 18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2000억원 고지를 바라본다. 짜파게티 누적 판매량은 약 75억개. 국민 한 사람이 짜파게티 145개를 끓여 먹은 셈이다. 신라면(34년간 325억개), 안성탕면(37년간 153억개) 다음으로 많이 팔린 라면이다.

짜파게티의 현재 포장. 사진 농심

짜파게티의 현재 포장. 사진 농심

짜파게티는 한국 대표 외식 메뉴인 짜장면을 간편하게 먹기 위한 시도 끝에 탄생했다. 농심은 일찌감치 인스턴트 짜장면 개발에 열을 올렸다. 70년엔 짜장라면의 효시인 ‘롯데짜장면’을 만들었다. 연구원이 전국 소문난 중국집을 찾아다니면서 최적을 짜장 맛을 배워 낸 제품이었다. 이 짜장라면은 발매되자마자 히트를 기록했다. 공장을 최대치로 가동해 하루 최고 9000여 박스를 생산할 정도로 주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 1위 라면기업이었던 삼양을 이기지 못했다. 78년 7월 24일 중앙일보 3면에 실린 기사에선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신제품을 계속 내고도 경쟁에 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제로 신춘호 사장(현 회장)은 적지 않은 번민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껌 이미지가 강한 롯데라는 이름으로 라면을 냈다는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는 것…새 이름을 찾기에 골몰하던 중 75년 봄 수원 새마을학교에서 농심에 대한 강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제품과 회사 이름을 모두 농심으로 바꾸었다.  

기사처럼 신춘호 회장은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삼선짜장면’이란 업그레드 된 버전을 선보였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짜장라면에도 단점이 있었다. 물을 줄이고 스프를 넣으면 스프 가루가 면에 균일하게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풀리도록 물을  많이 남기면 싱거운 짜장면 국이 된다. 회사 이름까지 바꾼 농심, 새 각오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커피에서 영감을 얻은 ‘비법 스프’  

‘면에 골고루 비벼지는 스프’는 우연히 탄생했다. 연구원이 커피를 타서 마시다가 ‘커피 알갱이처럼 만든 스프’ 를 생각하게 됐다. 영감을 얻자 연구에 속도가 붙었다. 라면 스프제조에 처음으로 ‘그래뉼 공법’을 도입하면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 은 것이다. 모래처럼 고운 가루 타입의 과립 스프는 물에 잘 풀어져 짜장라면에 제격이었다.

짜파게티 스프 맛은 ‘볶은 간짜장 맛’이라는 게 농심 측 설명이다. 춘장과 양파를 달달 볶은 맛을 최대한 재현했다. 짜파게티의 상징, 조미유도 인기에 한몫한다. 고소함을 위해 냄비를 불에서 내린 직후 기름을 넣고 면에 비비는 방식이다. 면이 촉촉하게 유지되는 등 풍미가 한결 살아난다.

배우 강부자씨는 짜파게티 모델로 장기간 활약했다. 초기 짜파게티 광고. 사진 농심

배우 강부자씨는 짜파게티 모델로 장기간 활약했다. 초기 짜파게티 광고. 사진 농심

출시 당시 짜파게티의 가격은 기존 짜장라면보다 50원이 비싼 200원대에 달했다. 제품 이름도 당시로써는 파격이었다.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합성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스파게티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새로운 형식에 어린이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짜파게티가 별미 라면으로 인기를 끌자 업계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짜장라면이 산발적으로 등장했다. 짜파게티 출시 이듬해인 85년 짜짜로니(삼양식품), 짜스면(삼양식품), 모두짜장(팔도)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이어 88년 짜호띵(삼양식품)과 짜장박사(오뚜기), 89년 일미짜장면(오뚜기) 등이 출시됐지만, 짜파게티만큼 오래 버티지 못했다. 현재 당시 도전장을 낸 경쟁 제품 중 짜짜로니를 제외하고 모두 단종됐다.

짜파게티는 레시피 변형이 유난히 많은 제품이다. 사진은 계란 치즈를 얹은 변형. 사진 농심

짜파게티는 레시피 변형이 유난히 많은 제품이다. 사진은 계란 치즈를 얹은 변형. 사진 농심

짜파게티가 국민라면이 되기까지 광고도 한몫했다. “짜라짜라짜 짜~파게티~”로 시작하는 익숙한 CM송에,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수십년간 유지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짜파게티를 끓이는 아빠,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아들을 내세워 주말에 먹는 간편한 한 끼라는 점을 강조했다. 2010년 후반부터는 일요일 대신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로 나가고 있다. 1인 가구 증가, 혼밥(혼자 먹는 밥) 트렌드 등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다. 광고 구성은 가족이 함께 끓여 나눠 먹는 모습에서 혼자라도 맛있게 즐기는 모습으로 변화했다.

영화 '기생충'의 영국 개봉에 맞춰 제작된 짜파구리 포스터. 사진 농심

영화 '기생충'의 영국 개봉에 맞춰 제작된 짜파구리 포스터. 사진 농심

‘기생충’에 힘입어 해외 매출 120% 늘어

짜파게티는 유난히 레시피 변형이 많은 제품이다. 유튜브에서 짜파게티를 검색하면 첫 번째로 ‘짜파게티 먹방’이 뜨고 인스타그램에는 짜파게티를 요리한 17만여개의 사진이 뜬다. 냉동 만두속을 넣거나 치즈, 계란을 얹는 평범한 변형에서 여러 라면과 함께 끓이는 ‘실험적’ 레시피’까지 다양하다. 레시피 후기가 1만여개에 달한다. 가장 유명한 변형은 너구리와 함께 끓인 짜파구리다. 2013년 가수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서 맛있게 먹어 대대적인 짜파구리 붐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영화 ‘기생충’ 속 메뉴로 해외에서 관심을 끌면서 글로벌 간식으로 부상했다. 해외 소비자가 짜파구리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인증하기 시작하면서 농심 해외 매출에도 날개를 달았다.

'기생충'에서 한우 채끝살을 얹은 짜파구리 요리가 화제가 되자 유튜브 여러 '먹방'들도 앞다퉈 이를 다뤘다. 유튜브 캡처

'기생충'에서 한우 채끝살을 얹은 짜파구리 요리가 화제가 되자 유튜브 여러 '먹방'들도 앞다퉈 이를 다뤘다. 유튜브 캡처

농심 관계자는 “라면시장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짜파게티는 짜장라면 시장  점유율이 85% 정도로 경쟁자가 없는 독보적인 아이템, 대체 불가능한 제품”이라며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지난달 9일부터 수입 문의가 쇄도한다”고 말했다.
짜파게티의 지난달 해외매출은 전년(68만 달러) 대비 두배 이상 증가한 150만 달러다. 이는 해외 진출 이후 월간 최대 실적이다. 지난달 칠레, 바레인, 팔라우, 수단에서 새롭게 짜파게티 수입을 요청해 수출국이 총 70개국으로 늘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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