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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77조 지원 SOS···GM 파산 전철 밟는 '美 상징' 보잉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1일 보잉이 각 항공사에 납품하려는 737 맥스(MAX) 항공기들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보잉 전용 공항에 나란히 서 있다. 737 맥스 기종은 2018년 10월과 2019년 3월 잇달아 추락했다. 보잉은 지난 1월부터 해당 기종 생산을 중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7월 1일 보잉이 각 항공사에 납품하려는 737 맥스(MAX) 항공기들이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보잉 전용 공항에 나란히 서 있다. 737 맥스 기종은 2018년 10월과 2019년 3월 잇달아 추락했다. 보잉은 지난 1월부터 해당 기종 생산을 중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최대 제조업체이자 군산복합체인 보잉이 심각한 경영위기에 빠졌다. 737 맥스(MAX) 추락사고 등 악재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항공산업이 얼어붙으면서다.

100년 가까이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로 군림하던 ‘미국의 상징’ 제너럴 모터스(GM)가 2008년 금융위기로 휘청이다가 파산했던 전철을 밟는 양상이라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9일 전했다.

◇10만 고용력ㆍ방위력 의존도  

당장 미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보잉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미국 내에서만 10만여 명의 고용력을 가진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 여객기뿐 아니라 각종 군용기와 미사일, 로켓 등 보잉의 기술은 미국의 방위력과도 직결된다.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대기 중인 라이언에어 소속 보잉 737-800기의 내부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가 소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대기 중인 라이언에어 소속 보잉 737-800기의 내부에서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가 소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사태 와중에 미국 증시에 패닉을 몰고 온 장본인도 대장주인 보잉이다. 지난 16일 증시에선 보잉 주가가 무려 23.83% 빠지자 다우존스 지수가 장중 3000포인트 넘게 급락했다. 18일에도 보잉은 -17.92%, 뉴욕증권거래소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등 지수 하락을 부채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보잉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며 공적자금 투입 의사를 밝혔지만, 시장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보잉은 미국 정부와 금융기관에 600억 달러(약 77조 4000억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737 맥스'로 드러난 보잉의 병폐

시장의 전망은 어둡다. 보잉의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여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닛케이는 "2018년 10월과 지난해 3월 잇달아 추락했던 737 맥스의 안전성 논란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 속에 보잉의 고질적인 병폐가 숨어있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 최근 미 하원 교통위원회는 737 맥스 사고에 대한 중간보고에서 5가지 문제점을 들었다.

지난해 12월 17일 보잉 협력사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의 미국 캔사스주 위치토 생산 공장에 납품하지 못한 737 맥스 동체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7일 보잉 협력사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의 미국 캔사스주 위치토 생산 공장에 납품하지 못한 737 맥스 동체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선 보잉은 최대 경쟁업체인 유럽의 에어버스와 무리하게 경쟁했다. 전 세계에서 저비용항공사(LCC) 붐이 일자 에어버스는 소형 기종인 A320과 파생 기종 수주를 확대했다. 다급해진 보잉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737 맥스 개발과 생산을 서둘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엔지니어들에게 “평소보다 2배 빠른 속도로 설계작업을 진행하라”고 독촉할 정도였다.

개발 일정을 재촉한 데는 비용을 대폭 줄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이런 무리수가 결국 사고를 촉발한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간보고서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조종특성향상체계(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ㆍMCAS)’로 불리는 소프트웨어의 설계 결함을 꼽았다. 기체의 자세를 제어하는 이 소프트웨어가 추락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4월 3일 당시 보잉 최고경영자(CEO)인 데니스 뮐렌버그(아래)가 737 맥스 추락사고 이후 '조종특성향상체계(MCAS)'를 업데이트한 기종의 시험비행을 참관하고 있다. 보잉은 지난해 12월 추락사고 책임을 물어 뮐렌버그를 해임했다. 그는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4월 3일 당시 보잉 최고경영자(CEO)인 데니스 뮐렌버그(아래)가 737 맥스 추락사고 이후 '조종특성향상체계(MCAS)'를 업데이트한 기종의 시험비행을 참관하고 있다. 보잉은 지난해 12월 추락사고 책임을 물어 뮐렌버그를 해임했다. 그는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AFP=연합뉴스]

세 번째는 ‘비밀주의’가 만연한 보잉의 기업문화다. 평소 고객인 항공사는 물론 관리·감독 당국인 미 연방항공청(FAA)에 은폐하는 사실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MCAS 설계 결함을 인지하고서도 항공사에 알리지 않은 것은 단적인 사례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요인은 보잉과 FAA 사이의 은밀한 관계와 관련이 있다. 보잉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FAA 담당자를 포섭하거나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감독직에 앉히는 등 이른바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에 열중했다.

FAA 고위 간부 중에 보잉을 편드는 사람이 많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FAA를 대신해 안전성을 점검해야 하는 보잉 내부의 책임자들은 결함 가능성을 눈감아줬다. 한마디로 주객이 뒤바뀌어 보잉이 FAA를 관리한 꼴이 됐다.

◇134억 달러 붓고도 파산한 GM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GM은 미국 정부로부터 134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20조 1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미국 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GM) 쉐보레 공장에 성조기가 걸려 있다. GM은 2009년 파산 이후 회생했지만 세계 최고 자동차기업 자리를 도요타, 폭스바겐 등 경쟁 업체에 내줘야 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오하이오주 로드스타운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GM) 쉐보레 공장에 성조기가 걸려 있다. GM은 2009년 파산 이후 회생했지만 세계 최고 자동차기업 자리를 도요타, 폭스바겐 등 경쟁 업체에 내줘야 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위기의 원인을 아시아 국가 환율 조작 등 외부 탓으로만 돌렸다. 연료 효율이 떨어지는 픽업트럭 등 대형차 의존도 심화, 강성 노조와 복지비의 과도한 지출 등 그동안 내부적으로 곪아 있던 문제에 대해선 외면하다가 이듬해 6월 1일 결국 파산했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보잉 역시 스스로 병폐를 직시하지 않으면 GM 모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대선 경선이 한창인 가운데 민주당에선 ‘보잉 주주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며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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