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늘면 치명률 떨어진다는데···'독일 4배' 한국 역주행,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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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뒤 두 달이 흘렀다. 대구ㆍ경북을 중심으로 한 급증세가 한풀 꺾이며 20일 신규 확진자수는 다시 두자릿수(87명)로 떨어졌다. 완치된 격리해제자도 이날 기준 2233명으로 전날보다 286명 늘었다.

 낫는 환자가 늘고 신규 환자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지만, 반대의 흐름을 보이는 지표가 있다. 높아지는 치명률(치사율)이다. 신규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한 지난 1일 0.48%이던 치명률은 20일 1.09%로 상승했다.

 치명률은 코로나19 사망자를 확진자 숫자로 나눈 수치로, 위험노출 인구에서 사망자수를 따지는 사망률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감염병 확진자와 검사 인원수가 늘어날수록 치명률은 떨어진다.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비지니스 인사이더가 지난 17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이 넘는 국가의 치명률을 비교한 것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6일 5.9%던 치명률이 지난 17일 1.7%로 뚝 떨어졌다. 2000명 미만이던 검사 숫자가 5만8000명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463명(239→5702명) 늘었다.

 반면 한국은 확진자와 검사자가 늘어났음에도 이달초 0.5% 안팎이던 치명률이 20일 1.09%로 오히려 뛰었다. 게다가 지난 17일 기준으로 한국(8320명)과 확진자 규모가 엇비슷한 독일(9257명)과 비교해도 치명률 격차는 크다. 독일의 치명률은 0.26%, 한국은 0.97%다. 4배가량 높다.

 단순히 드러나는 수치로 보면 한국의 치명률만 ‘역주행’하는 듯 보인다. 한국의 의료 수준과 보건 환경 등을 감안하면, 환자 감소에 따른 결과라고 여기기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의 특수 상황’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확진자 분포에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일 기준 코로나19 확진자 중 20대(20~29세)는 전체의 27.33%를 차지한다. 가장 많다. 50대(19.48%)와 40대(13.79%), 60대(12.70%), 30대(10.32%) 순이다. 70대(6.56%)ㆍ80대 이상(3.80%) 등 고령층 비중은 10.3%다.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대구ㆍ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신천지 교인에 대한 ‘저인망식 공격적 진단검사’가 진행되며 ‘젊은 환자’와 ‘경증 환자’가 대거 확진자에 포함되며 치명률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질본이 발표한 치명률도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20일 기준 80세 이상의 치명률은 10.03%에 이른다. 70대 치명률도 6.16%나 된다. 반면 50대로 넘어가면 치명률은 1.55%, 20대~40대는 0.11~0.42%로 뚝 떨어진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고령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의 위험인자로서 국내 확진자의 약 20%가 60세 이상의 고령"이라고 지적했다.

 로렌 앤셀메이어 미 텍사스오스틴대 감염과 교수는 비즈니스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감염병 발생 초기에는 중증 환자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확진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경증 환자는 방역 당국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실제 감염자수는 보고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상 결과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환자의 80% 가량은 경증 환자로 분류된다.

 김동현 한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후 검사를 통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따지는 한국과 달리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진단 검사 없이 (폐렴 등으로) 사망한 경우에도 코로나19 검사를 하지 않는다”며 “원칙대로 검사하는 한국의 치명률과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감염 이후 치료기간이 길어지며 중증 환자의 사망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 들어 치명률이 높아진 이유로 꼽혔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격리해제된 확진자의 치료기간은 평균 14.7일”이라며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뒤 중증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며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도 치명률을 높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대구ㆍ경북 지역의 확진자가 쏟아지며 의료 시설에 과부하가 걸린 것도 치명률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구ㆍ경북 지역에서 환자가 급증하며 입원하지 못하고 자가격리 상태로 있다 상태가 나빠져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치명률 상승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엇비슷한 독일과의 치명률 차도 이런 요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때문에 치명률이 1%까지 오른 것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수치가 정상 범위로 근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이번달 전 세계적인 치명률은 3.4%이고,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 우한의 치명률은 1.4% 정도”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치명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같은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해도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고위험군 중심의 집단발병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김동현 교수는 “요양병원이나 유사 시설 등에서 (기저질환 등이 있는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고 있는 것은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20대 확진자의 비중이 큰 가운데 과면역 반응인 ‘사이토카인 폭풍’도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신우 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은 20일 브리핑에서 “대구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중 중증 환자가 다수 있고, 이 중 26세 환자 1명이 사이토카인 폭풍과 연관성이 있어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사이토카인 폭풍은 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면역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많은 염증이 생겨 폐 등 장기에 손상이 생기고 사망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김우주 교수는 “확진자 중 고령환자가 늘고 치료기간이 2~3주에 이르는 상황에서 중증도가 심해지고, 대구ㆍ경북 지역의 의료 시스템이 치료에 충분히 동원되지 못했던 만큼 당분간은 한국의 치명률은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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