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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300원 초읽기…정유·항공 “이러다 정말 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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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40원 떨어진 1285.7원에 마감됐다. 뉴시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40원 떨어진 1285.7원에 마감됐다. 뉴시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로 전 세계 달러화 수요가 급증하면서 달러당 원화가치가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로나 19 사태로 이미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기업들은 수요 위축에 환율까지 요동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에 고전하고 있다.

환율 11년 만에 최고, 기업 초비상 #정제 역마진에 팔수록 손해 눈덩이 #SK이노 1분기만 5700억 적자 전망 #대한항공 10원 하락에 850억 손실 #1분기 외환손실만 5300억 넘을 듯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전일 종가보다 40원 떨어진(환율상승) 달러당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종가가 1280원 선을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가시지 않았던 2009년 7월 14일(장중 1293.0원) 이후 11년 만이다.

정유업, 수출 줄어 원가부담 만회 못해 

정유업계는 이미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인 상황이다. 기업이 만드는 휘발유(석유제품) 가격이 원유(원자재)보다 싸다는 얘기다. 실제 18일(현지시간) 기준 두바이유 현물 평균 가격은 배럴당 28.26달러로 휘발유(27.44달러)보다 더 높았다.

여기에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유 수입 가격 부담까지 커지고 있다. 통상 정유 기업들은 환율이 높을수록 부담인 원유 수입분을 환율이 높을수록 유리한 석유제품 ‘수출’로 헷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항공기와 물류가 멈추는 등 기름 수요 자체가 줄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됐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은 18일 국내 대표 정유기업인 SK이노베이션이 1분기에만 573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학 업계 역시 환율 상승에 따른 원자재 수입 부담을 중간재 수출로 만회해 왔지만 수요 위축으로 마찬가지 처지다.

대한항공 외화손실 1분기만 5340억 전망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국내 항공사 여객기들이 멈춰서 있다. 뉴스1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국내 항공사 여객기들이 멈춰서 있다. 뉴스1

항공 업계는 말 그대로 생존 위기에 놓였다. 비행기 연료와 항공기 구매·임대 등을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재무구조가 나빠진다. 업계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 가치가 10원 떨어질 때마다 대한항공에 약 850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한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대한항공과 제주항공은 1분기에만 각각 5340억원과 366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1분기 손실이 지난해 전체 외화환산차 손실(3758억원)보다 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환율도 환율이지만 비행기가 안 뜬다. 매출이 안 나고 있다”며 “‘이러다 정말 망하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고 전했다.

현대차 “4월 미국 판매 지난해보다 50% 감소” 전망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직원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임에 따라 지난 18일(현지시간) 가동을 중지했다고 현대차가 밝혔다. 사진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전경. 연합뉴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직원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임에 따라 지난 18일(현지시간) 가동을 중지했다고 현대차가 밝혔다. 사진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전경. 연합뉴스

자동차와 가전 등 수출 업계는 원래 원가가치가 떨어질수록 판매 가격에 경쟁력이 생겨 유리하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선 사정이 다르다.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며 해외 소비가 위축돼 제품 판매 둔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사장) 은 18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다음달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50%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했다. 여기에 달러 강세로 상대적으로 신흥국 통화 약세가 지속할 경우 브라질과 러시아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현대차 등 자동차 업체들은 환손실 발생을 피할 수 없다.

식품·화장품·바이오 등 ‘노심초사’ 

롯데푸드와 CJ제일제당, 동원F&B 등 식품 업계도 환율 변동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동원 관계자는 “원재료를 수입하는 경우 평균 3개월 치를 미리 구매해 아직 타격은 없다”면서도 “환율이 계속 높아질 경우 식품 원자재 수입가가 올라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원화가치 하락은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악재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임상 거점이 미국인 경우가 많아 달러화 결제가 주를 이루는데 최근 환율 단기 변동이 워낙 커서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며 “현재로썬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증권가 “달러당 1500원 선까지 가진 않을 것”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각국의 정책대응 강화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산이 쉽사리 진정되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선진국으로 자금이탈이 심화하며 원화 약세가 지속해 환율 안정에 추가적인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엔 단기차입 급증이나 외국인의 투기성 채권현물 순매도 현상이 없는 만큼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환율이 달러당 1500~1600원까지 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이소아·이수기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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