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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가 떴다, 영하 30도 추위는 잊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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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모두가 꿈꾸는 오로라 여행. 사실 쉽진 않다. 오로라(북극광)가 나타나는 지역은 멀고 춥다. 작심하고 가도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허탕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오로라 여행을 ‘확률 게임’이라 한다. 중앙일보 독자와 함께 오로라를 만나러 북위 60도의 캐나다 화이트호스를 다녀왔다. 신비한 밤하늘을 우러러본 경험을 나눈다. 봄나들이조차 꺼려지는 시절, 잠시라도 기분 전환하셨으면 좋겠다.

버킷리스트 여행

캐나다 화이트호스의 눈 덮인 호수에서 기적처럼 오로라를 만났다. 이렇게 초록빛 커튼이 일렁이는 것 같은 오로라를 보려면 KP 지수가 3~4 정도는 돼야 한다. 오로라는 지표면으로부터 100㎞ 높이에 펼쳐지는데 이날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캐나다 화이트호스의 눈 덮인 호수에서 기적처럼 오로라를 만났다. 이렇게 초록빛 커튼이 일렁이는 것 같은 오로라를 보려면 KP 지수가 3~4 정도는 돼야 한다. 오로라는 지표면으로부터 100㎞ 높이에 펼쳐지는데 이날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중앙일보 테마여행 ‘캐나다 오로라 투어’는 여행사 ‘샬레트래블’과 함께 기획했다. 지난해 11월 지면에 안내가 나가자마자 정원 17명이 마감됐다. 모두 오로라 여행을 버킷리스트로 꼽았고, 암 치료 날짜까지 미룬 참가자도 있었다. 지난달 출발일 시점에서 캐나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1명이었고, 입출국 제한도 없었다. 그리고 캐나다 정부는 3월 18일(현지시각)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입국을 금지했다.

오로라센터 원주민 텐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참가자 가족.

오로라센터 원주민 텐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참가자 가족.

첫날부터 오로라 투어에 나섰다. 오후 10시30분. 방한복과 방한화로 무장한 일행이 뒤뚱거리며 로비에 모였다. 버스를 타고 오로라센터로 향했다. 현지 여행사가 ‘빛 공해’를 피해 도시 외곽에 조성한 오로라 관측소다.

하늘에 모래처럼 박힌 별이 일행을 반겼다. 좋은 징조였다. 북쪽 하늘이 희부옜는데 분명 구름은 아니었다. 장노출로 사진을 찍어 보니 오로라가 옅게 나타났다. 모두 삼각대를 펼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새벽 2시까지 눈이 떼꾼해지도록 하늘을 주시했다. 하나 맨눈으로 오로라를 식별할 순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신기하긴 하네요. 근데 이 정도로 오로라를 봤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이튿날에도 오로라센터로 출근했다. 예보대로면, 일정 중 가장 센 오로라가 나올 날이었다. 문제는 날씨. 먹구름이 완전히 하늘을 덮었다. 하릴없이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설원을 질주하다

캐나다 유콘은 개썰매의 본고장이다. 여섯 마리 개와 함께 숲길을 질주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캐나다 유콘은 개썰매의 본고장이다. 여섯 마리 개와 함께 숲길을 질주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오로라를 못 봤다고 낙심할 일은 아니었다. 화이트호스는 여느 북극권 도시와 달리 낮에도 즐길 거리가 많았다. 여행 이틀째 낮. 유콘 야생동물 보호소를 들러 사향소·북극여우 같은 북극권 동물을 구경한 뒤 인근 ‘타키니 온천’을 찾았다. 영하 10도에 바들바들 떨다가 섭씨 42도 노천탕에 몸을 담그니 전자레인지에서 해동된 백설기가 된 것 같았다.

화이트호스는 유콘 준주 최대 도시다. 그래 봤자 인구는 2만5000명이다. 다운타운을 산책하고 ‘맥브라이드 박물관’에서 골드러시 시절의 역사를 살폈다. 캐나다 전국대회서 상을 거머쥔 양조장도 들렀다. 이 작은 도시에 맥주 양조장만 10곳이 넘는다.

가장 호응이 뜨거웠던 건 개썰매 체험이었다. 유콘은 개썰매의 본고장이다. 먼 옛날부터 원주민의 이동수단이었다. 화이트호스에만 10여 개 개썰매 업체가 있다. 알라육(Alayuk)이란 업체를 찾아갔다. 2인1조로 알래스칸 허스키 6마리가 끄는 썰매에 몸을 실었다. 가문비나무와 사시나무가 우거진 숲을 누볐다. 임상학(69)씨는 “개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달리는 기분이 남달랐다”며 “겨울왕국에 온 게 비로소 실감 났다”고 말했다.

동화 같은 통나무집

‘인 온 더 레이크’ 별채. 중앙일보 테마여행이 정원을 17명으로 제한한 건 이 숙소에 묵기 위해서였다.

‘인 온 더 레이크’ 별채. 중앙일보 테마여행이 정원을 17명으로 제한한 건 이 숙소에 묵기 위해서였다.

여행 사흘째, 호숫가 통나무집 ‘인 온 더 레이크(Inn on the lake)’로 숙소를 옮겼다. 순백의 눈 세상에 통나무집이 들어앉은 모습이 그림 한 폭 같았다. 통나무집에 머무는 이틀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느긋하게 쉬다 설피를 신고 눈 덮인 호수를 걸었다. 식사는 모두 숙소에서 해결했다. 음식 맛으로도 정평이 난 숙소답게 셰프의 솜씨가 상당했다. 바이슨(아메리카 들소) 고기 수프, 독일식 소고기말이 ‘롤라덴’이 인상적이었다.

밤이면 어김없이 오로라를 기다렸다. 한데 계속 날씨가 궂었다. 심지어 마지막 날은 종일 눈이 쏟아졌다. 다행히 오후 9시부터 하늘이 갠다는 예보가 떴다. 오후 11시 객실 문을 열고 나왔다. 거짓말처럼 숙소 뒤편 북쪽 하늘에 연둣빛 띠가 걸려 있었다. 모두 호수로 뛰쳐나갔다. 무지개처럼 타원형으로 생긴 띠가 점점 진해지더니 좌우로 파도치듯 일렁였다. 테두리에는 분홍빛과 보랏빛도 보였다. 검은 하늘을 무대 삼은 오로라의 춤사위가 1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자연의 신비를 감상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숙소 테라스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북극광을 보는 이도 있었다. 이날 기온은 영하 22도, 체감기온 영하 30도였다. 모두가 극한의 추위 따위는 잊었다. 차분히 오로라를 지켜보던 조치근(73)씨가 말했다. “이번 여행, 시작은 희미하고 깜깜했는데 끝은 장엄하고 찬란하네요.”

유콘 일정을 마무리하고 빅토리아와 밴쿠버에서 하루씩 시간을 보냈다. 매서운 추위와 장거리 이동에도 불구하고 일행 모두 탈없이 여행을 마쳤다. 6박8일의 오로라 여행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여행정보

캐나다 유콘을 가려면 에어캐나다의 인천~밴쿠버~화이트호스 노선을 이용하면 된다. 인천~밴쿠버 9~11시간, 밴쿠버~화이트호스 2시간 30분 소요. 유콘은 한국보다 16시간 늦다. 유콘에서는 8월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오로라를 볼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캐나다관광청 홈페이지 참조. 하반기 오로라 테마여행 일정은 추후 공지한다.

화이트호스(캐나다)=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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