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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1300원도 뚫리나…"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돼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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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경기침체 우려는 19일 한국 외환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원화값은 장중 한때 달러당 1296원까지 추락했다. 정부가 전날 꺼낸 외화자금시장 안정대책에도 시장의 불안 심리를 막긴 역부족이었다.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1300원 붕괴는 가까스로 막았지만,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40원 하락한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40원 하락한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1달러=1285.7원…11년 전으로 돌아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40원 하락(환율은 상승)한 1285.7원에 마감했다. 달러당 원화값이 1280선으로 밀린 건 2009년 7월 14일(1293원) 이후 10년8개월 만이다. 장 초반부터 분위기는 암울했다. 지난밤 사이 쌓인 악재가 시장을 짓눌렀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를 위협받는 선까지 폭락했고, 이에 놀란 뉴욕증시는 5% 안팎 급락했다. 이에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11.3원 하락한 1257원으로 출발한 뒤 낙폭을 키워 오전 11시 무렵 1296원까지 추락했다. 하락 추세가 꺾인 건 "환율의 일방향 쏠림이 과도하다"는 당국의 입장이 전해지면서다. 동시에 시장에 '달러 매도' 주문이 늘었다. 외환(FX) 전문가들은 "당국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렇지 않고선 시장이 갑자기 진정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원화가치는 달러당 1280원대를 오르내리다 장을 마쳤다. 장중 변동 폭은 49.9원으로, 2010년 5월 25일 이후 가장 컸다.

원화값 급락은 여러 악재가 맞물린 결과다. 코로나19 확산에 국제 유가 급락까지 겹쳐 신용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코로나19발 신용 경색 우려는 안전자산인 달러화 '사재기'를 부추긴다. 즉 원화 대비 달러가 강세인 거다. 18일(현지시간) 달러 인덱스는 101.54를 기록해 2007년 3월 이후 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인덱스는 유로와 엔화, 파운드 등 6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투자심리가 위축된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도 원화값 약세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24일 이후 13조원어치 주식(코스피 시장)을 순매도했다. 소병은 NH선물 연구원은 "경기 침체 우려에 극도의 불안을 느낀 기업과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 금까지 팔며 달러 현금을 비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곤두박질치는 원화값. 그래픽=신재민 기자

곤두박질치는 원화값. 그래픽=신재민 기자

당국 시장 안정대책도 약발 없어

정부가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25% 확대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사실상 '약발'이 없었다. 선물환 포지션은 선물 외화자산에서 선물 외화부채를 뺀 것인데, 여기에 자기 자본 대비 상한을 설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외화자금 보유 규모를 늘릴 수 있고, 그만큼 시장에 공급되는 외화도 늘 수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단지 선물환 포지션 한도를 늘리는 것으로는 시장 불안을 막기 어려울 것 같다"며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도 보수적으로 바뀌어 달러를 잘 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은 당분간 원화값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미국 신용 경색이 진정되기 전까지 원화값 하단은 열려 있다"며 "당국이 강하게 나서지 않으면 달러당 1300원대로 떨어질 수 있지만, 금융위기 때처럼 빠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당 원화값은 2009년 3월 장중 1597원까지 폭락했다.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 거래다. 상대국 중앙은행에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건데 미국과 체결하면 달러를 더 쌓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미 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이는 2010년 2월 종료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효과나 필요성을 익히 잘 알고 있고, 외환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수단이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불안 눌러야"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092억 달러다. 1월보단 약간 줄었지만, 여전히 역대 최대 규모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332억 달러),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2622억 달러)보다 담장을 든든하게 쌓아둔 셈이다. 지난해 대외채무(4670억 달러) 가운데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외채는 1345억 달러로 2018년보다 89억 달러 늘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32.9%로 1.8%포인트 상승했다. 소폭 늘긴 했지만 통상 30% 안팎이면 외채 건전성 지표가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의 적정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며 “예상보다 빠른 자금 이탈 등으로 둑이 터지면 건전성이 급격히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는 필수”라고 말했다. 이번 충격의 파장이 어디까지 일지 예측이 쉽지 않은 가운데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차원에서도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20년 새 4배로 늘어난 외환보유액. 그래픽=신재민 기자

20년 새 4배로 늘어난 외환보유액.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부도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내막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스와프는 각국 중앙은행 간에 체결하는 것이지만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정부 간 협의가 필요하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미국과 구체적 협의를 시작한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08년처럼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체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오 회장은 “통화스와프는 한배를 탔다는 일종의 결의인데 미국과의 약화된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5일 일본 등 세계 5대 중앙은행에 대한 통화스와프 제공 조건을 완화했다.

황의영·장원석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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