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달러의 방주’에 올라타야 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위기 때 실력이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지금까지는 낙제점이다. 위기 때 리더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분명한 메시지, 구체적 대안이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두루뭉술하다. “경제와 방역, 두 토끼 잡겠다” “전례 없는 대책 필요”, 이런 건 리더의 언어일 수 없다. ‘어떻게’가 빠졌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 큰 둑이 무너지면 작은 고랑은 함께 휩쓸린다. 지금 당장 서둘러야 할 게 한·미 통화 스와프의 복원이다. 왜 그런가.

한·미 통화 스와프는 동맹의 복원 #원화·증시 폭락 막을 최상의 방패 #“못 올라타면 죽음” 각오로 추진을

첫째, 통화 스와프는 동맹의 복원이다. 돈은 혈액이다. 미국은 혈액인 달러를 아무 통화와 바꿔주지 않는다. 지역 맹주 통화, 동맹의 통화와만 바꿔준다. 성공한다면 ‘문재인 정부=친중반미’란 그간의 오해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다. 친중, 친북 올인 때보다 북한과 중국을 다루는 데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총선용 호재로도 이만 한 게 없다.

둘째, 달러의 방주만이 안전하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자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주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표적 안전 자산인 금값마저 곤두박질 중이다. 채권과 암호화폐도 피난처가 못 된다. 오직 달러만이 팬데믹 세상의 ‘노아의 방주’다. 올라타면 살고, 낙오하면 죽는다.

셋째, 기회가 좋다. 월가의 대변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주 사설에서 “금융 패닉을 가라앉히기 위해 미 연준(fed)이 한국 등과 통화 스와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12년 전 금융위기 때 WSJ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지원을 거론하며 한국과의 통화 스와프에 부정적이었다. WSJ의 태도 변화는 미 정부와 fed를 설득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쉽게 될 리 없다. 예측 불가 트럼프가 무슨 반대급부를 요구할지 모른다.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다른 나라를 끌어들여야 한다. 호주·싱가포르·대만 등을 움직여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은 한국 등 14개 나라와 통화 스와프를 맺었다. 끝까지 매달렸던 인도네시아와 홍콩은 거절했다. 당시 한국은 자타공인, 친미 국가였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 혼자선 쉽지 않다. 그 점에서 이낙연 전 총리가 국회에서 “G20 국가와 통화 스와프 추진”을 말한 것은 아마추어스럽다. 미국은 연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 기후협약도 탈퇴했다. 특히 중국과는 스와프를 맺지 않을 것이다. 달러 빠진 통화 스와프는 어느 나라에도 의미가 없다.

둘째, 월가의 인맥을 총동원해야 한다. fed의 핵심은 의장, 부의장, 뉴욕 연준 총재 3인방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씨티그룹 회장 로버트 루빈을 인맥으로 동원했다. 루빈이 당시 뉴욕 연준 총재 티머시 가이트너와 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뉴욕과 워싱턴의 인맥이 사실상 단절됐다. 이 인맥부터 복원해야 한다. 마침 이주열 한은 총재는 첫 연임 총재다. 파월 연준 의장과 안면이 제법 있다.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경제통인 조윤제 전 주미대사도 한몫 거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fed는 자존심이 강하다. 미국 대통령의 말도 무시한다. 큰 소리로 떠드는 건 fed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고 fed에만 매달려서도 안 된다. 결정권은 fed에 있지만 재무부와 백악관, IMF와 교감한다. 이들을 동시 공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직접 트럼프를 설득할 필요도 있다.

서두를수록 좋다. 지금도 늦었다. 당장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뉴욕과 워싱턴으로 보내라. 이들을 청와대로 불러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마스크 대책을 요구할 때가 아니다. 마스크는 국무총리실에서 총괄하면 된다. 장광설을 늘어놨지만 사실은 걱정이다. 워낙 전문가 얘기는 안 듣기 일쑤요, 불리하면 딴소리 전문인 정부라 별 노력도 안 하다가 잘 안 되면 어느 날 “통화 스와프 필요 없다”고 할까 봐 말이다. 처음엔 “꼭 써야 한다”더니 수급 대란이 나자 “필요 없다”고 했던 마스크 사태 때처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