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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4월 현금 1000달러씩 받는다"…민주·공화 모두 기본소득 지지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1조 달러(약 1242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마련 중이라고 1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난 2009년 금융위기 때 동원한 부양책(7870억 달러)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트럼프 정부, 코로나 경기부양책 1200조원 추진 #308조원으로 국민 1인당 1000달러씩 현금 지급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 제안 곧바로 수용 #실업 공포 소기업·항공업계 등 1조2000억달러 지원 #대상자 고르는 행정력·시간 낭비 없어 신속 지원 #받은 현금 월세·식료품에 지출, 경기 부양 효과도 #"실업률 20%로 뛸 수도" 실직 공포에 현금지급 검토

이 재원 안에서 국민 1인당 현금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총 소요 예산은 2500억 달러(약 308조원)다. '코로나 재난 기본소득' 제안은 의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 미국인들은 빠르면 4월 말 현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블룸버그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17일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부양책을 설명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17일 의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부양책을 설명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빨라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전 국민 현금 지급 계획을 내놓았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의회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부양책을 설명한 뒤 "경제에 1조 달러를 투입하는 제안을 테이블에 올려놨다"면서 "큰 숫자"라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앞서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기자회견에서 "미국인들은 지금 현금이 필요하다"면서 "그들에게 즉각 수표를 지급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소득층은 제외할 방침이다. 그는 "대통령이 2주 안에 현금 지급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2주는 어렵지만 4월 말까지는 지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제안에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대부분 찬성하고 있어 정책 입안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1인당 1000달러씩 주자는 아이디어는 사실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주)으로부터 나왔다.

전 국민 현금 지급을 제안한 밋 롬니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이 17일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 국민 현금 지급을 제안한 밋 롬니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이 17일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치 성향 불문, 기본소득 지지하는 이유

롬니는 전날인 16일 '다른 정부 지원금이 도착할 때까지 미국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모든 성인에게 즉시 1000달러짜리 수표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 파산으로 향하는 '보릿고개'를 버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양당 모두 이 제안을 곧바로 지지했다. 민주당은 별도 현금 지급안을 내놓기도 했다. 팀 라이언 상원의원(오하이오) 등은 미국인의 75%를 구성하는 연 소득 6만5000달러 미만인 이들에게 1000달러씩 주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미국 정치인과 경제전문가들이 기본소득을 환영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에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보기 때문이다.

WP는 "제도가 단순해 긴급 구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빠르게 전달되고, 실업 급여나 복지 급여처럼 정부에 지원을 신청할 필요가 없으며 돈 사용처에 제한이 없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행정력과 시간을 쓰기보다는 일괄해서 1000달러씩 지급하는 게 신속한 구제책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앞서 두 차례 경제 위기에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2007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2009년까지 이어진 대침체(Great Recession) 당시 거의 모든 성인에게 300~600달러, 아동에게 300달러를 지급했다고 WP가 전했다. 2001년 8개월간 이어진 경기 침체 때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300달러를 받았다.

저소득층은 받은 현금을 월세와 식료품 등에 바로 지출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 효과도 있다. 2001년과 2008년 조사에 따르면 현금을 받은 사람 가운데 3분의 2 정도는 수표를 받은 지 6개월 이내에 전액 지출했다.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이 자리에서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이 자리에서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돈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급여세 면제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감세 정책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직접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개인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선회했다. 경기 하강을 막아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도 반영됐다. 트럼프는 급여세 면제가 이행되기까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보다 신속한 현금 지급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급여세 면제는 한 가지 방법이고, 수개월 걸릴 수 있다"면서 "우린 그보다 훨씬 빠른 걸 원한다. 돈을 상당히 빠르고 정확하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므누신 "실업률 20%로 오를 수도"…실직 공포 

현금 지급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고 식당과 쇼핑몰 등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자가 확 늘어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 각 주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식당과 술집, 극장, 영화관, 운동시설 등 다중이용시설을 폐쇄하거나 이용 제한 명령을 내렸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17일 한 여성이 음식을 포장해 가고 있다.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내 17개 이상 주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 내 모든 음식점과 술집의 매장 내 영업을 금지했다. 서비스업 종사자 대량 실직이 불가피하다.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17일 한 여성이 음식을 포장해 가고 있다. 텍사스주를 비롯한 미국 내 17개 이상 주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주 내 모든 음식점과 술집의 매장 내 영업을 금지했다. 서비스업 종사자 대량 실직이 불가피하다. [AP=연합뉴스]

뉴욕과 일리노이, 텍사스 등 17개가 넘는 주에서 모든 식당과 술집의 영업을 금지했다.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직으로 생계가 막막한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음식점 관련 일자리 740만개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항공업계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중국과 유럽으로 가는 항공편 대부분이 끊기거나 축소 운행되면서 일부 항공사는 무급 휴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그룹은 무급휴직을 시작했다. 여행 관련 일자리 46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19로 치료받거나 격리되거나, 확진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하지 못하는 미국인도 늘고 있다. 유급 병가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지 않은 주에서는 당장 생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므누신 장관은 정부 개입이 없다면 3.5% 수준(2월)인 미국 실업률이 20%로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복수의 공화당 소식통이 미 언론에 전했다.

백악관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기업과 항공업계에 대한 지원 방안도 이번 예산안에 배정할 예정이다. 항공업계 지원에 500억 달러, 소상공인 지원 등에 5000억 달러가 포함됐다. 세금 납부 유예분 3000억 달러까지 더하면 경기부양책 규모는 1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추산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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