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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빠르게 늘어나는 불임부부, 혹시 환경호르몬 때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임종한의 디톡스(44)

요즘 상영되는 영화 ‘다크 워터스’는 거대기업의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건을 쫓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코로나19 난리 통에 마스크하고 띄엄띄엄 앉아 숨죽이면서 본 영화인데, 결론은 볼 만 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미국 거대 화학기업 듀폰의 비밀을 파헤치는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의 이야기다.

대기업을 담당하는 대형 로펌 변호사 롭빌럿에게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의 농장주 월버테넌트가 찾아와 자료를 건넨다. 어느 날부터인가 젖소가 흥분하고 치아가 검게 변하며 결국 죽는다는 섬뜩한 내용이다. 월버는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로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을 가르킨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롭 빌릿은 자료를 검토할수록 끔찍한 사실과 마주한다. 독성물질 ‘과불화옥탄산(PFOA)’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야기하고 있었다. 롭 빌릿은 결국 20여년간의 소송 끝에 듀폰으로부터 8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배상을 받아낸다.

거대기업의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건을 쫓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다크워터스'.

거대기업의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건을 쫓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다크워터스'.

PFOA는 과불화 화합물의 일종으로, 최근 미국 등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환경오염물질이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독성물질이란 PFOA와 같은 과불화 화합물이다. PFOA는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다는 테플론 프라이팬에 쓰이는 불소수지 코팅 제품, 콘택트렌즈, 종이컵 등 일회용 음식 용기의 코팅재료, 아기 매트, 반도체 세척작업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물론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 많이 쓰인다.

국내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프라이팬의 거의 다수는 코팅 프라이팬이다. 프라이팬을 가열할 때 온도가 올라가면서 불소수지 코팅제 일부가 기화되어 나오고, 프라이팬 자체에서 녹아 나오기도 한다. 이것을 요리 과정에서 코로 들이마시거나, 음식물에 섞여 들어간 것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 들어가 쌓이게 된다.

PFOA는 우리 몸에서 잘 배출되지 않는 잔류성 유기화합물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한다. PFOA의 반감기는 3년으로, 우리 몸에 들어가면 잘 배출되지 않는 독성물질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여 년 전에는 거의 독성 정보가 없었지만, 현재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 이런 화학물질의 생산과 소비량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PFOA는 몸속으로 들어와 쌓여 호르몬 교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생태계에 노출되어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도 밝혀졌다. 환경호르몬이 가질 수 있는 여러 특성 가운데 ‘호르몬 교란’이 가장 심각하다. 이것이 사람 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굉장히 다양하다.

환경오염물질 PFOA는 테플론 프라이팬에 쓰이는 불소수지 코팅 제품, 콘택트렌즈, 종이컵 등 일회용 음식 용기의 코팅재료, 아기 매트, 반도체 세척작업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진 pixabay]

환경오염물질 PFOA는 테플론 프라이팬에 쓰이는 불소수지 코팅 제품, 콘택트렌즈, 종이컵 등 일회용 음식 용기의 코팅재료, 아기 매트, 반도체 세척작업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진 pixabay]

PFOA 자체는 대기 또는 식품을 통해 노출되기도 한다. 프라이팬을 닦을 때 물에 씻겨 흘러 들어가 생태계에 노출되면 하천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하천이나 바다에서 플랑크톤을 비롯해 먹이사슬을 따라 영향을 미친다. 우선 작은 물고기, 그것을 먹는 큰 어류까지 축적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생식기 이상이나 자웅동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축적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조류와 파충류에게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고, ‘다크 워터스’에서와 같이 포유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돌아 결국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혈중 PFOA 농도’가 한국 여성과 아시아인에게서 가장 높게 나왔다. 그만큼 아시아에서 이 화학물질을 많이 활용한다. 한국은 화학물질 사용이나 활용 자체가 이미 세계 수준이다. 반면 화학물질이 가진 위험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조차 잘 안 되고 있어 사각지대인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실제 피해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선천성 기형이나 저체중 아이나 미숙아로 나타나고 여아는 성조숙증, 남아는 정자 수 감소, 무정자증과 연관될 수 있다. 환경호르몬이 과잉행동 장애, 비만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많이 보고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한 부부에게 불임은 20% 정도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자료로 조사해보면, 선천성 잠복고환이나 요도화열 같은 생식기 이상이 과거 20년 전과 비교해 굉장히 빠르게 늘어났다. 무려 10배나 많아졌다. 우연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PFOA는 암 발생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당뇨, 뇌 심혈관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호르몬 교란을 야기하고, 우리 몸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체계에 독성 영향을 미친다.

'다크 워터스'와 관련해 가장 유사한 국내 환경피해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다. 다국적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아이에게도 전혀 무해하고 안전하다며 17년이나 독성물질이 노출된 사건이다. [중앙포토]

'다크 워터스'와 관련해 가장 유사한 국내 환경피해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다. 다국적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 아이에게도 전혀 무해하고 안전하다며 17년이나 독성물질이 노출된 사건이다. [중앙포토]

대형 로펌에 있는 변호사가 세계 최대 기업과 맞서 싸우는 이 영화의 내용은 우리의 현실에선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미국에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환경과 건강에 피해를 준 세계 최대 기업에 징벌적 배상을 물리게 한다는 것이 부럽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왠지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다크 워터스’와 관련해 가장 유사한 국내 환경피해 사건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이다. 이를 제대로 관리 못 한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지만, 이런 사건을 초래한 기업에 대해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법원이 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산업사회에서 여러 화합물이 개발되고, 여러 형태로 쓰이지만 이 과정에서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고 확인되지 못하면 산업사회는 모래성에 쌓는 집과 같다. 온 사회를 공멸로 내 모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라도 이런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침해하는 사건을 저지르면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필수 조건이다.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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