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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쇠고랑 찰 수 있다···탈법·합법 사이에 선 비례정당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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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불출마했거나 컷오프된 5명의 의원(신창현ㆍ심기준ㆍ이규희ㆍ이훈ㆍ최운열)의원과 오찬을 함께 했다. 민주당에선 “비례정당에 의원 꿔주기를 위한 자락깔기”(한 불출마 의원의 보좌관)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이 자리에 함께 한 윤호중 사무총장은 “출마를 못 하게 된 의원들을 위로하는 자리”라고만 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설명은 달랐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윤 총장은 비례연합정당 논의 진행 과정을 설명했고 “이대로 가면 비례정당의 기호가 8번이 된다”“좀 당겨서 앞 순위에 오르는 게 지지자들이 선택하기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 대표와 윤 총장이 직접 당적 변경을 권유하진 않았다”는 데선 참석자와 윤 총장의 말이 일치했다.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와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의원들이 오찬을 위해 음식점으로 향하고 있다. 〈br〉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훈, 최운열, 이 대표, 심기준, 신창현 의원. [연합뉴스]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운데)와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의원들이 오찬을 위해 음식점으로 향하고 있다. 〈br〉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훈, 최운열, 이 대표, 심기준, 신창현 의원. [연합뉴스]

①‘의원 꿔주기’ 곡예 경쟁=여ㆍ야 간 위성정당에 의원 꿔주기(당적 변경) 경쟁이 본격화 됐다. 선거법 150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전국 통일의 정당 기호는 지역구 의원이 5명 이상이거나 최근 전국 선거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게만 부여된다. 원내 정당간에는 의석수에 따라, 의석이 없는 정당들 사이에서는 정당명의 가나다순에 따라 기호가 부여된다. 미래통합당은 이미 미래한국당에 조훈현 의원 등 5명을 보냈다. 민주당은 6명을 보내야 그 윗 기호를 차지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이 당 저 당에 가입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었던 문제겠지만 정당법(42조 2항)엔 ‘누구든지 두 개 이상의 정당의 당원이 되지 못한다’고 적혀있다. 어기면 징역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중 당적 논란을 피해 선순위 정당 기호를 확보하기 위한 꼼수인 '의원 꿔주기'도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곡예다. 자칫 비례정당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권유했다가 탈이 나면 더 센 형(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활동의 자유를 위해 정당법엔 ‘누구든지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하는 승낙 없이 정당가입 또는 탈당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2일 통합당의 의원 꿔주기가 이 법 위반이라고 검찰에 고발했다. 이 대표와 의원들 사이의 이날 대화 내용이 알려지는게 조심스런 이유다.

②비례연합당 의외 흥행=뒤늦게 발동이 걸린 민주당은 범진보 '빅텐트' (정치개혁연합)합류냐 친문 중심의 '스몰텐트'(시민을 위하여) 주도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독자 창당은 '180도 말바꾸기'라는 부담이 있는데다 시간적으로 어려운 민주당 입장에선 외부와의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협력의 방법이 선거 연대가 아니라 '가설 정당'의 형식일 수밖에 없는 것도 법 때문이다. 선거법상(47조 등)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 길은 정당의 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으로 나서는 두 가지 방법 뿐이다. 비례대표 비중이 큰 의회 중심의 유럽 여러 국가에서 ‘선거연합(coalition)’을 허용하고 있는 것과 다른 점이다. 민주당의 움직임에 따라 한때 빅텐트 합류로 기울었던 미래당ㆍ시대전환ㆍ기본소득당ㆍ녹색당 등 일정한 실체를 갖춘 원외 정당들도 덩달아 출렁이고 있다.17일엔 1석의 원내 정당인 민중당(통합진보당의 후신)이 빅텐트 합류를 선언하기도 했다. 범진보 비례연합정당은 군소 정당들에겐 원내 진입의 기회일 수 있지만 법의 취지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선거법(189조)은 군소 정당 난립에 의한 혼란을 막기 위해 정당 투표에서 3%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게만 의석을 나눠주게 돼 있기 때문이다.큰 꼼수에 편승한 작은 꼼수인 셈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훈식 수석대변인. 변선구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훈식 수석대변인. 변선구 기자

③선거운동도 ‘교도소 담장 위’=비례정당간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노력도 잘못하면 쇠고랑을 찰 수 있다. 선거법 88조가 ‘다른 정당’을 위한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자신들이 낳은 자식을 기를 수도 키워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처지다. 선거법상(69조ㆍ70조ㆍ82조의7) 총선을 위한 방송ㆍ신문ㆍ인터넷 광고는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들만 할 수 있다는 점도 선거운동의 변수다. 광고에 쓸 돈(국고보조금과 당비)이 넉넉한 거대 정당은 자격이 없고, 비례후보로 가득해 자격을 갖춘 비례정당들엔 돈이 없다.

④민주적 나눠먹기 가능할까=미래한국당엔 없고 민주당식 비례연합에는 있는 고민이 또 있다. 개정 선거법이 비례대표 후보 추천과정에 ‘민주적 절차’(47조)를 거치라고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군소정당들과 1차적으로 당선권에 몇 명의 후보를 넣을지 지분 협상을 벌여 제 몫을 정할테지만 이 과정 어딘가에 선거법이 제시한 ‘대의원ㆍ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를 우겨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보 등록이 무효화될 수 있다.(52조 4항) 연합정당 내 비례대표 공천과 관련해 현재까지 민주당이 공언한 것은 "후순위를 차지할 것"(이해찬 대표)이라는 말이 전부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의당처럼 시민 경선 등을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절차'는 정하기 나름이라서 기술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 위하여'에 합류하는 협약식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최용상 평화인권당 공동대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 우희종·최배근 시민을위하여 공동대표, 권기재 가자환경당 창준위 공동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조정훈 시대전환 공동대표. [사진=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17일 플랫폼 정당인 '시민을 위하여'에 합류하는 협약식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최용상 평화인권당 공동대표,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 우희종·최배근 시민을위하여 공동대표, 권기재 가자환경당 창준위 공동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조정훈 시대전환 공동대표. [사진=민주당]

⑤돌아올 수 있을까=비례정당의 설계자들은 "당선 뒤 원대복귀"(하승수 정치개혁연합 공동위원장)를 공언했다.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안전하게 본진으로 돌아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두 정당의 합당이다.(선거법 192조) 하지만 돌아갈 집이 서로 다른 '빅텐트' 차원에선 구사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별 걱정이 없어 보이던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재결합 전망에도 최근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지난 16일 비례대표 공천을 마친 미래한국당(대표 한선교)이 통합당 영인인사들을 후순위로 내쳐 '마이 웨이'를 선언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합당이 아니라면 남는 방법은 비례정당의 자진 해산과 제명 두 가지 뿐이다. 문제는 이 역시 당선된 의원들의 의지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먼저 출범한 미래한국당은 당헌에 '해산'은 전당대회 의결 사항으로, 소속 의원 제명은 최고위원회의 결정 사항으로 못박아 뒀다. 의원 제명 절차 등을 정당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열어둔 정당법(33조 등)을 활용한 조치다. 게다가 해산(정당법 45조)하면 개별 의원의 사퇴나 사망 등으로 생기는 빈 자리를 승계할 때 쓰이는 후보자 명부의 효력도 사라지는 문제도 있다.(200조 2항) 불의의 의석수 감소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유승민ㆍ안철수계 의원(김수민·이태규 등)들이 바른미래당을 벗어날 때 구사했던 꼼수인 ‘셀프 제명’은 한때 비례대표 의원들이 제발로 당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됐다. 이들은 손학규 대표가 해당행위를 일삼아 온 자신들에 대한 징계를 미루자 지난달 18일 의원총회를 열어 자신들에 대한 제명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17일 법원이 '셀프 제명'을 무효화하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졸지에 민생당으로 돌려보내졌다. 일종의 징계절차인 제명 과정에 당사자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건 "중대하고 명백한 절차적 하자"라는 취지의 결정이었다.지도부가 몽니를 부리면 비례정당에서 벗어날 길은 현재 없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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