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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트럼프 절친 사우디 왕세자, 왜 세계 경제 대폭락 원흉됐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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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왼쪽) 왕세자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왼쪽) 왕세자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아랍에미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통화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협력을 위한 통화였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열흘 넘게 지난 17일에서야 공개했다. 청와대의 조심스러운 접근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청와대는 왜 이런 신중함을 택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상 인물이 UAE의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라는 점이 하나의 열쇠다. UAE의 이 왕세제는 영어권에서는 앞글자를 딴 MBZ로 유명한 중동의 최고 실세다. 청와대는 MBZ를 필두로 중동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퇴임 후에도 여전히 ‘UAE 특임 외교특별보좌관’이라는 다소 튀는 명함을 가진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MBZ는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막후에서 쥐락펴락하는 실세다.

그런 MBZ가 아끼는 존재가 있으니, 이웃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사우디 왕세자 역시 영어권에선 MBS로 통한다. 뉴욕타임스(NYT)의 중동 전문기자인 로버트 워스에 따르면 “MBZ는 MBS의 멘토이자 후견인”이다. MBZ는 UAE의, MBS는 사우디의 사실상의 넘버 원 실세다. MBZ는 1961년생으로 59세, MBS는 1985년생으로 35세다. MBZ와 MBS가 누구인지 아는 건 앞으로의 불안한 국제 정세 및 경제 위기를 가늠하는 필수 나침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MBS와 MBZ의 왕좌의 게임  

MBS는 큰 형 격인 MBZ와는 달리 좀 성급한 캐릭터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의 불같은 성격과 황소고집이 지난 9일 블랙 먼데이 사태를 촉발했다는 게 경제 전문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ㆍ블룸버그통신 등의 공통된 평가다. WSJ는 지난 9일 블랙 먼데이 장세를 분석하며 “MBS는 성급하고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악명이 높다”며 "앞으로 MBS의 판단이 세계 경제에 갖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 전망했다. NYT 역시 전 세계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건 신종 코로나뿐만이 아니라 MBS라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차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AFP=연합뉴스]

 MBZ 역시 MBS의 후견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내심 걱정이 많은 듯하다. 중동 전문 매체인 미들이스트 메모아르는 지난 1월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MBZ는 MBS에 대해 ‘참을성 없이 개혁을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의 비전을 영업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후 둘은 예멘 및 일부 왕족 납치 사건 등을 둘러싸고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MBS는 MBZ의 ‘지도’ 하에 급진 이슬람주의인 와하비즘으로부터 한발 뒤로 물러나 서방 세계에 개방적인 개혁을 표방했는데, 그 구체적 방법론에서 삐걱대고 있다는 게 MBZ의 불만이었다고 한다.

MBS의 리더십엔 늘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그가 과연 민주적 리더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2018년 암살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에 MBS가 연관돼있다는 의혹은 이제 영어권 매체에선 ‘설(說)’ 수준을 넘어 확신에 가깝다. 최근엔 사우디의 주요 방송국인 MBC의 사장인 왈리드 알 이브라힘과 알왈리드 빈 탈랄 왕세자를 체포했는데, 여기엔 MBS의 언론 장악 의도가 숨어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잠재적 왕좌 위협자인 왕세자도 치고, 언론도 장악해 '꿩 먹고 알 먹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엔 MBS의 사촌인 바스마 빈 사우드 공주가 납치됐는데, 스페인의 언론매체인 ABC는 “MBS가 지시한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납치 및 체포 등의 비민주적 수단을 동원하는 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그에게 비판적인 영어권 매체의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가까운 사이다. 이 둘의 친분은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의 작품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는 가까운 사이다. 이 둘의 친분은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의 작품이다. [로이터=연합뉴스]

35세 야심가 왕세자, 트럼프 사위와 ‘절친’ 됐지만…  

MBS는 사우디 왕가의 지난한 권력 다툼 끝에 왕세자 자리를 꿰찼다. 아버지인 살만 국왕이 총리를 맡고 있는 사우디에서 후계 서열 1위는 부총리를 맡는 데, MBS는 이 자리를 2017년 공식적으로 맡았다. 2015년부터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며 이미 실세 자리를 다져놓은 뒤 예비 대관식을 치른 것이다

사업가인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수석 고문은 진작에 MBS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특히 쿠슈너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MBS를 백악관 만찬에 초대했을 당시 쿠슈너는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직접 챙겼다. NYT는 “쿠슈너가 MBS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와 살만 국왕. [AFP=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와 살만 국왕. [AFP=연합뉴스]

그러나 MBS는 최근 트럼프의 등에 칼을 꽂았다. 그가 이끄는 사우디가 맹주 격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원유 감산 논의에 실패하는 과정에서다. 영구 집권이 걸린 개헌 국민투표를 약 한 달 앞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감산에 반대했고, 발끈한 MBS는 감산을 강행했다. 원유 가치에 이어 미국 주가는 폭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악몽처럼 생각하는 주가 폭락의 시동을 건 게 MBS였던 셈이다.

미국이 제로 금리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꺼냈지만, 시장은 대폭락으로 응답한 지금, MBS의 욱하는 성격이 한 번 더 발동되면 세계 경제엔 최악의 악몽이 덮칠 수 있다. WSJ은 “푸틴은 (원유 감산 반대로 주가 폭락을 일으킴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가 아님을 인증했다”며 “앞으로 MBS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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