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돼도 먹고 살아야죠" 대구 할머니 국숫집 다시 문 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03.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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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1지구 앞 '국수골목' 모습. 10여곳의 칼국수 점포들이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만큼 손님이 몰리지는 않은 모습이다. 김정석기자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1지구 앞 '국수골목' 모습. 10여곳의 칼국수 점포들이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만큼 손님이 몰리지는 않은 모습이다. 김정석기자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1지구 앞. 칼국수를 파는 노점들이 늘어선 ‘국수골목’에서 이수자(78) 할머니가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점심때만 되면 앉을 자리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었던 서문시장의 명소 국수골목에서 이 할머니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다. 코로나19에 손님이 뚝 끊겨 버렸다. 할머니는 한 달 가까이 장사를 접었다가 16일에서야 영업을 재개했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할머니 이웃 점포 중에선 오후 1시가 되도록 손님 한 명 받지 못한 곳도 있었다.

전면 휴업했던 500년 전통 서문시장도 영업 재개
번화가와 대형서점·백화점·식당도 점차 회복세로
일부 업종은 아직 기 못 펴…“종식없인 생계 막막”
대구시 ‘3·28 운동’ 전개…“숨통 트여도 위협 여전”

앞서 지난달 25일 500년 역사를 이어온 대구 최대 전통시장 서문시장이 개장 이래 처음으로 전면 휴업했다. 그 바람에 이 할머니도 근 한 달을 집에만 있었다. 서문시장은 일주일 동안 방역을 마치고 지난 1일부터 자율적으로 각 매장이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아직도 문을 열지 않은 점포가 상당수다. 이수자 할머니는 “장사를 하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다. 생전 처음 보는 병 때문에 대구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고 푸념했다.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1지구 앞. 점포들이 영업을 재개하면서 손님들의 수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김정석기자

17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 1지구 앞. 점포들이 영업을 재개하면서 손님들의 수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 김정석기자

지난달 18일 대구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한 달. 첫날 확진자 1명에서 17일 현재 대구의 확진자 수는 6098명에 이른다. 전국 코로나19 확진자 8320명 중 73.3%가 대구에서 나왔다. 확진자 1112명인 경북까지 합치면 대구·경북(TK)이 국내 코로나19 환자의 86.7%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구의 코로나19 확산세는 크게 누그러졌다. 지난달 29일 하루 추가 확진자가 741명에 달하면서는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난 지금은 하루 추가 확진자 수가 30명대로 뚝 떨어졌다. 경북도 추가 확진자 수가 최근 닷새 연속 한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대구·경북은 줄어들고 수도권은 늘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대구·경북은 줄어들고 수도권은 늘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던 코로나19 확산 기세를 틀어막은 건 전국에서 몰려든 의료인과 각계각층의 지원 덕분이다. 코로나19 사태 한 달간 대구에는 사실상 ‘전시 수준’의 의료 서비스가 집중됐다. 의료인력은 사상 최대 규모.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31번 대구 첫 코로나19 확진 환자 발생 후 대구에는 전국 의료진 1618명이 모였다. 의사만 328명이다. 여기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등이 대구로 달려왔다. 대구 시민은 이들에게 감사한다.

수그러든 확산세 덕에 대구·경북 지역도 느리게나마 해빙 분위기다. 17일 오후 찾은 대구 최대 번화가인 중구 동성로는 2주 전과 비교해 오가는 행인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지난달 29일은 주말에도 동성로엔 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워 마치 ‘유령도시’ 같은 풍경이었다. 반면 이날엔 봄 날씨를 즐기는 시민들이 거리 곳곳에서 보였다.

17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가장 가팔랐던 지난달 29일에는 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한 달이 지난 이날은 조금씩 행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김정석기자

17일 오후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 광장.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가장 가팔랐던 지난달 29일에는 행인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한 달이 지난 이날은 조금씩 행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김정석기자

확진자 동선에 포함돼 있었거나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임시 휴업했던 매장들도 속속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던 교보문고 대구점도 비록 영업시간을 단축하긴 했지만, 다시 문을 열어 손님들로 북적였다. 동성로 인근에 있는 지하주차장도 제법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차량으로 가득 찼다. 백화점과 식당들에도 손님이 늘었다.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업종도 있다. 최근 소규모 집단감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노래방이나 PC방, 학원 등이다. 대구 북구에서 입시학원을 운영 중인 최모(39·여)씨는 “확산세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아 며칠 전 학생들 자율적으로 등원하도록 해 수업을 진행했다가 다른 학원과 인근 주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며 “코로나 완전 종식까지는 생계 걱정을 해야 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중구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은선(34·여)씨는 “대구가 조금 나아졌지만 수도권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코로나가 가라앉아야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대구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과 공포가 지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코로나19로 관광 산업에 치명타를 맞은 ‘관광 1번지’ 경북 경주도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정상화는 요원한 상태다. 경주시 인왕동 동궁과 월지를 찾은 관광객은 코로나19가 지역에 발생하기 전인 지난달 2월 2일 하루에만 5646명에 달했지만, 2월 29일~3월 1일 808명으로 줄었다. 다행히 이달 7~8일에는 1237명, 14~15일에는 1679명으로 조금씩 회복 중이다.

17일 오후 대구 중구 교보문고 매장. 책을 구입하러 온 손님들이 매장을 제법 채우고 있다. 김정석기자

17일 오후 대구 중구 교보문고 매장. 책을 구입하러 온 손님들이 매장을 제법 채우고 있다. 김정석기자

경주시 관계자는 “관광객 수가 회복세지만 여전히 평년의 절반도 안 된다. 보통 3월 말쯤 벚꽃이 피기 시작해 주말이 되면 하루 약 1만 명이 온다. 겨울에도 주말 하루 5000명씩은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빠르게 잡힌 건 무엇보다 대규모 집단감염의 원인이 된 신천지에 대한 조사와 검사가 마무리된 것이 한몫했다. 대구시는 31번 환자가 참석한 신천지 예배에서 추가 확진자가 걷잡을 수 없이 발생하자, 신천지 대구교회로부터 교인 명단을 제출받아 전수조사를 하고 교인 1만434명에 대한 진단검사도 진행했다. 지난 13일에는 신천지 대구교회 건물 안으로 진입해 행정조사를 단행, 53권의 교인 명부와 각종 자료를 확보했다. 17일에도 추가 조사를 했다.

17일 오전 대구시 관계자들이 대구 남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다대오지파 대구교회(신천지 대구교회) 행정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입구에 붙은 봉인 스티커를 뜯고 있다. [사진 대구시]

17일 오전 대구시 관계자들이 대구 남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다대오지파 대구교회(신천지 대구교회) 행정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입구에 붙은 봉인 스티커를 뜯고 있다. [사진 대구시]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은 최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특별재난지역은 지자체 능력만으로 재난 상황을 수습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 지정되는 조치다. 감염병 관련 문제로 특별재난지역이 지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구시는 ‘코로나 종식 캠페인’을 통해 지역 경제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5일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며 ‘3·28 대구 운동’을 제안했다. ‘3·28 대구 운동’은 오는 28일까지 시민들의 외출·이동 최소화, 노래방·PC방 등 다중 밀집 실내 영업장 운영 중단, 손 씻기, 타인과 2m 거리 두기, 각자 덜어 먹기, 대화 줄이기, 간격 넓게 앉아 식사하기 등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자는 운동이다.

대구·경주=김정석·김윤호·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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