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당에 영향력 커질까 우려 극한 반발이 김종인 밀어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측근이 밝힌 ‘김종인 카드’ 무산 전말

김종인 전 대표는 통합당 선대위원장이 될 경우 1000만 중소상공인에 고용지원금 지급 등 중도층을 흡인할 수 있는 전략을 준비중이었으며 현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사실을 집중 부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종인 전 대표는 통합당 선대위원장이 될 경우 1000만 중소상공인에 고용지원금 지급 등 중도층을 흡인할 수 있는 전략을 준비중이었으며 현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사실을 집중 부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중앙포토]

“황교안 대표가 일요일이라 집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제가 당의 상황을 극복할 능력이 없다’고 하더라. ‘김종인에게 단독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반발이 워낙 심하니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오시라는 말만 되풀이하더라. 대표가 이렇게 당을 컨트롤 못 하는 마당에 뭘 하겠어. 그래서 ‘없던 거로 하자’고 했지….”

친이계 긴장, ‘김종인 주의보’ 발령 #태영호 파동 핑계로 황교안 맹공 #박관용 등 원로,영남 의원들 앞장 #이낙연, 김종인 만류하다 일축당해

지난 일요일(15일).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통합당행이 끝내 좌절됐다. 김종인은 그날 저녁 전화를 걸어온 황 대표에게 ‘결별’을 통보한 뒤 필자에게 통화내용을 전해줬다. 김종인을 비토하는 당내 반발의 벽을 황교안이 보름 동안 넘으려 시도했지만 좌절해 ‘김종인 카드’가 무산됐다는 것이다.

“황교안 리더십 붕괴할 정도로 압박”

‘당내 반발’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김종인 카드를 처음 제안한 박형준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렇게 전한다.

“지난 주중 ‘태영호 파동’이 터지면서 당내 보수파의 반발이 폭발했다. 황교안 리더십이 붕괴할 정도로 엄청난 반발이었다. ‘민주당 정권 1등 공신을 왜 데려오느냐’는 비판에다 ‘김종인 데려오면 당의 그립을 세게 잡을 터라 황교안이 리더십을 잃을 것’이란 주장도 많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원로들과 대구·경북 및 부산·경남 의원들의 반발이 특히 심했다. 내게도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중도 지식인, 새 보수당계 인사들까지 김종인 영입에 부정적이더라. 상황이 심각해 학자·언론인 10여명에게 전화를 돌려 "김종인 붙잡아야한다"는 등의 조언을 듣고 황교안에게 보고한 뒤 김종인 측근 최명길 전 의원과 수습에 나섰지만, 황 대표가 끝내 당내 압박을 못 이긴 듯하다.”

최명길은 김종인 곁에서 황교안과의 협상에 깊숙이 참여하며 선대위원장 파동의 전말을 지켜본 이다. 그에게 물었다.

김종인 카드 무산의 전말을 얘기해달라.
“원래 통합당은 김종인 전 대표(이하 김종인으로 표기)에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기려 했다. 공관위원장 추천을 책임졌던 조경태 최고위원이 찾아와 그런 얘기를 꺼냈다. 김종인은 그럴(공관위원장직을 수락할)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돌연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공관위원장이 되더라. 그러다가 2월 28일께부터 황교안이 김종인을 찾기 시작해 지난 주말까지 4~5차례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통화도 자주 했다. 황교안은 첫 만남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면서 ‘공동’이란 토를 달더라. 김종인은 ‘그런 얘기 하려면 만나지 말자’고 했다. 그러자 2~3일 뒤 황교안이 다시 와 ‘그러면 전권을 가지시는 것(단독 위원장)으로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일이 굴러가나 싶었는데 황교안이 당내 압박을 받았는지 ‘아직 당이 통합이 안 됐으니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입장으로 돌아가더라. 김종인이 ‘더는 만나지 말자’고 했다. 그러자 지난 토요일(14일) 황교안이 김종인을 만나 ‘제가 한 번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걸 해보겠다’고 하고 가길래 지켜봤지만, 다음날 결국 무너지더라.”
김종인이 ‘단독’ 선대위원장을 고수한 이유는 뭔가.
“다른 이들과 공동 위원장을 하면 김종인이 총선에 이기려고 준비한 전략들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한 신문에서 김종인의 통합당행을 두고 ‘차르가 돌아온다’는 기사를 냈다. 그러자 통합당내 친이계들 사이에 ‘김종인 주의보’가 퍼졌다. 그들은 총선 이후 당권을 잡으려고 김종인의 영입을 꺼렸던 거다. 그 와중에 ‘태영호 파동’이 났다. 김종인이 태영호를 두고 ‘지역구 대신 비례대표가 적합하다’는 얘기를 한 것뿐인데 태영호를 깎아내렸다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보도가 나갔다. 이 때문에 김종인을 눈엣가시로 봐온 통합당 보수들이 들고 일어났다.”
태영호 본인도 ‘난 뇌물 수수로 실형 받은 적도 없다’는 말까지 하며 김종인을 비판했는데.
“비화가 있다. 실은 태영호 본인도 ‘뇌물수수’까지 언급한 건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김종인에게 ‘제가 섭섭한 마음에 과하게 반응했다는 입장을 밝히겠습니다’는 뜻을 메신저를 통해 전해왔다. 그래서 김종인도 ‘당신을 비토하는 게 아니라 비례 출마가 맞다는 얘기였다’고 화답했다. 김종인은 그 직후 월간지 인터뷰에서도 ‘태영호가 출마하면 지지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했다. 수도권에 출마한 통합당 후보들도 태영호에게 ‘우리 당에 올 어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 결과 태영호가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가서 내가 과하고 무례했다고 밝히겠다’고 김종인 측에 전했고, 김종인이 ‘알아서 하시오’라 받으면서 상황이 정리되는 단계까지 갔는데 일이 또 꼬였다.”
꼬였다면.
“태영호가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알아보니 태영호 후원회장이 우파 당 원로인데 그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태영호에게 ‘왜 김종인에게 사과하냐’며 뜯어말린 것이라고 들었다. 태영호가 김종인에게 ‘하루만 더 상황을 보겠다’고 하더니 다음날 입장을 바꿔 김종인을 재차 비판하더라. 김종인은 웃고 말았다.”
당내 강경파가 공동 선대위원장을 고집한 이유는 뭔가.
“김종인이 총선을 지휘해 승리하고, 그 뒤 당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통합당은 7월 말 전당대회를 열 예정인데 대권 주자는 대표에 출마할 수 없다. 황교안이 못 나오는 것이다. 그럼 통합당은 무주공산 아닌가. 당권을 장악하려는 권력투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김종인, 통합당 총선 승리 비책 미리 구상

김종인이 단독 선대위원장이 됐다면 어떤 비전을 폈을까.
“‘문재인이 나쁘다’는 말만으로 어떻게 총선을 이기겠나. 그 심판은 이미 끝났지 않나. 그래서 김종인은 선대위원장이 되면 통합당이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 방안을 제시해 중도층 표를 끌어내려 했다. 가장 시급한 게 코로나 경제 대책이다. 소비가 위축됐다고 전 국민에게 일회성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건 답이 아니니, 1000만 중소상공인들에게 고용지원금을 지급해 노사가 다 살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이낙연 전 총리 측이 ‘지난 2일 이낙연이 김종인을 만나 말렸다’며 김종인의 통합당행 무산에 ‘기여’했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그때 거기 있었다. 아침에 김종인 전 대표와 차 마시고 있는데 김종인과 가까운 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찾아와 ‘총리(이낙연)가 곧 온다 합니다’고 하더라. 김종인이 ‘아, 또 오셨어?’ 하며 이낙연을 맞아줬다. 이낙연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김종인이 자꾸 시계를 보니까 ‘다음 약속 있으시죠?’ 하고 자리를 뜨면서 머쓱한 어조로 ‘이번에 저쪽(통합당)으로 안 가실 거죠?’라고 묻더라. 그러자 김종인이 ‘나한테 그런 거 묻지 마셔’ 라고 했다. 그게 전부다.”

김종인이 누구길래 이 소동?

5선 의원 경력의 김종인(80)은 선거에 강한 남자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총선·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제민주화와 노인연금 등 보수층이 생각하기 어려운 분배·복지 프로그램을 과감히 도입해 중도층의 표심을 잡은 공이 컸다.

4년 뒤인 2016년에는 민주당에 합류해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김종인의 전략가적 면모를 높이 사 한밤중 그의 자택을 찾아가 매달린 끝에 ‘박근혜의 남자’였던 김종인을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김종인은 ‘친노·친문 패권주의’를 친다는 명분 아래 이해찬, 강기정, 전병헌, 오영식, 정청래 등 현역 의원을 줄줄이 낙천시켰다. ‘진박 공천’으로 지탄받은 새누리당과 대비된 김종인의 화끈한 물갈이 덕분에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1당에 올라 정권 탈환의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김종인은 총선 이후 당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친문 그룹에 밀려 갈등을 빚다가 2017년 3월 금배지를 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당시 친문계는 ‘김종인의 성향이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험한 말을 서슴지 않아 김종인은 “두번 다시 친문들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김종인을 통합당이 영입하려 한 것은 “적을 제일 잘 아는 전략가를 영입하면 승리한다”는 의도였다. 김종인 카드의 제안자인 박형준 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중도층에 흡인력이 강한 김종인을 모시면 과거 자유한국당의 보수적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다. 또 ‘김종인이 돌아왔다’는 화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에도 흠집을 낼 수 있기에 추진한 것인데 당내 보수파 반발로 무산됐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