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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로금리 시대…안이한 낙관론 접고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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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은행이 어제(16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해 0.75%로 낮췄다. 이로써 우리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0%대 금리 시대를 맞게 됐다.

미 1%p 전격 인하에 한은도 0.5%p 내려 #미·일 통화스와프 체결로 보호막 쌓아야

전날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코로나19로 공포에 빠진 시장을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리는 ‘빅 컷’을 단행하자 그간 신중론을 펼치던 한은도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 연준의 파격적인 시장 안정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날 코스피 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등 시장의 공포심리가 가라앉지 않자 마지못해 적극적인 부양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한은이 쫓기듯 뒤늦게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선택했지만 금리가 이미 바닥인 상황에서 소비나 투자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위기 상황에 노출된 만큼 전시에 준하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 청와대나 정부엔 이런 엄중한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주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방역이 최선의 경제정책”이라며 “신속히 방역에 성공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어제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여러 우려를 내놓으면서도 “경제 펀더멘털과 금융 시스템 건전성 모두 양호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언젠가 듣던 얘기다.

이 말을 믿고 싶지만 이런 낙관론만 기대하기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퍼펙트 스톰의 파고가 너무나 높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당시엔 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대폭 인하하는 등 금리를 여섯 차례 인하할 만큼 금리에 여유가 있었다. 또 미국과 일본 등 선진 금융시장과 맺은 통화 스와프가 훌륭한 소방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보호막이 거의 없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보유 외환이 넉넉한 게 사실이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실제로 외국인은 코로나 국면 이후 국내 증시에서 10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적자재정으로 국채를 더 찍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와 수출 경쟁력 저하로 달러가 빠져나가 환율이 불안해지면 그땐 걷잡을 수 없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자리에 맞는 존재감을 보여주기는커녕 추경을 놓고 여당 대표와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도장을 찍으려는 듯 마스크 공장에 달려간다. 이러니 경제 컨트롤타워가 있기는 한 것이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컨트롤타워를 정비해 통화 스와프를 서두르는 등 위기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