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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냐오냐하면 버릇없어진다는 어른 말씀, 따라야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3)

아들이 백일을 좀 넘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정이 넘어 아들이 경기하듯 울어댔다. 열은 39도가 넘어가고 얼굴은 뻘겋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은 하얗고,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응급실에 가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들을 아기 보자기에 싸서 끌어안고 남편과 택시를 탔다.

응급실을 향해 가는 택시에서 아들은 울다가 토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아기가방이고 손수건이고 지갑이고 무엇 하나 들고나오지 않고 아이만 달랑 안고 택시를 탄 것이다. 그리고 그 황망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아이 챙기느라 정신이 없으면 가방은 당신이 알아서 좀 챙겼어야지!” 남편은 “아기가방 챙기라고 말을 해야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들은 울어대고 흥분된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며 싸웠다.

택시기사는 그 모습이 한심해 보였는지 그냥 우릴 병원 응급실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돌이켜 보면 아들이 지금까지 성장하는 동안 이보다 훨씬 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던 수많은 사건과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것은 비단 우리집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다른 집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부모가 됨에 대한 자격을 묻지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 나의 부모가 했던 방식, 우리 사회의 전통이나 통념‧가설에 의지해 아이를 키웠다. [사진 Pixabay]

사람들은 부모가 됨에 대한 자격을 묻지 않는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 나의 부모가 했던 방식, 우리 사회의 전통이나 통념‧가설에 의지해 아이를 키웠다. [사진 Pixabay]

아들이 다 성장한 지금 돌이킬 수도 없는, 내가 놓친 것들에 대한 후회가 여러 가지로 참 많다. ‘나와 아들이 마주한 문제 상황마다 내가 부모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나? 나는 어떤 말을 아이에게 던졌나? 어떤 방식으로 그때의 문제 상황을 풀어나갔는가? 좀 더 긍정적인 해결 방식을 선택할 수는 없었는가? 엄마로서 올바른 훈육을 했었나?’ 위 사례는 내 아이가 영아였을 당시의 경험이지만, 내 아이는 성장하면서 수많은 문제 상황에서 내 부모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다.

사람들은 부모 됨에 대한 자격을 묻지 않는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해 나의 부모가 했던 방식, 우리 사회의 전통이나 통념‧가설에 의지해 아이를 키웠다. 대표적인 예가 이런 것이었다. “어른 말 안 듣는 아이는 따끔하게 맞아야 돼.”,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버르장머리가 없어져.” 그러나 문제 상황으로 다가온 아이와의 갈등 순간순간이 혼란스러웠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렵기까지 했다.

정말 전통적인 가설이 맞는 것일까? 아무리 육아서를 뒤져 봐도 나와 있지 않았다(인터넷 사용이 없던 시절). 우리 아이는 그 아이만의 독특함이 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느 육아서도, 누구도 정답을 가르쳐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는 다양한 강의 중 가장 진지한 모드로 듣는 강연은 부모교육이다. 열심히 듣고 남아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 아이가요~~~ 어쩌면 좋죠?” 모두 한가득 걱정이 많다. 그렇지만 나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욕구가 천차만별이고, 일상의 리듬도 다르기 때문이다.

“저는 내 아이가 행복하고, 안정된 정서를 갖고, 좋은 학업 성취를 이루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단단한 자의식을 갖고 살면서 정말 많은 걸 누리면 좋겠습니다. 이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해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사실 강의 중 부모님, 선생님이 했던 질문은 모두 이 범주 안에 포함된다.

‘긍정적 훈육’을 소개합니다
이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더 오래’ 지면을 통해 몇 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농부에게는 농기구가 필요하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잘 살펴보기 위해 청진기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요리사가 칼을 잘 사용하면 멋진 요리가 생겨나듯 부모인 당신은 어떤 도구로 아이를 잘 성장하게끔 이끌 수 있을까?

그 새로운 훈육 방식이 ‘긍정적 훈육(Positive Discipline in Everyday Parenting)’이다. 이 훈육 방식은 흔히 우리가 사용했던 양육 방식과 다른 차원이다. 금방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 변화, 그리고 자녀 발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와 평생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튼튼한 관계를 만들고, 부모의 역할 수행이 훨씬 수월해지도록 할 것이다.

긍정적 훈육의 출발은 2006년 10월 유엔에서 발표한 ‘아동 폭력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랜 전통이란 이름으로 크고 작은 학대가 이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체벌의 심각성에 주목해 아동 권리에 입각한 양육 방식에 초점을 맞춰 캐나다 마니토바대학의 조안 듀란트 교수와 함께 ‘긍정적 훈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긍정적 훈육은 아동 발달 원리를 기반으로 아동을 존중하면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비폭력적인 양육 접근법이다.

‘긍정적 훈육 접근’ [자료 세이브더칠드런]

‘긍정적 훈육 접근’ [자료 세이브더칠드런]

‘긍정적 훈육’의 접근은 집짓기에 비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자. 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설계도를 그리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목표가 없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목표를 세웠다면 집을 지을 도구가 필요하다. 망치와 못…, 긍정적 훈육에서는 ‘따뜻함’과 같이 ‘구조화’(체계 주기)를 목표로 향해 가는 데 필요한 도구라고 본다.

설계도와 도구를 갖고 있다고 집이 완성되겠는가? 그다음은 내가 설계한 집에 들어가는 재료를 잘 알아야 한다. 가령 ‘나는 참나무 집을 짓기 원해’, ‘아니, 나는 붉은 벽돌집’. 어떤 집을 지을지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는 다르기 때문에 그 재료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참나무의 특성과 붉은 벽돌의 특성 말이다. 이것은 내 아이의 특성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때 부모는 아이의 발달 단계와 그 아이만의 기질을 눈여겨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뚜렷한 계획과 올바른 도구를 갖고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 해도 집을 짓다 보면 분명 수많은 장애물과 좌절을 마주하게 된다. 앞에서 들었던 사례와 같은 일상의 장애물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때 분노하거나 도망칠 것인가? 우리는 이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할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집을 짓다가 잘 안 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처럼 내 아이와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긍정적 훈육’의 접근법이다.

'긍정적 훈육 모델' [자료 세이브더칠드런]

'긍정적 훈육 모델' [자료 세이브더칠드런]

사람들은 ‘훈육=처벌’로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그럼 ‘긍정적 훈육’은 무엇일까? 긍정적 훈육은 자녀가 서서히 자제력을 키우도록 돕는 것, 부모의 기대‧규칙‧제한에 대해 명확하게 소통하는 것, 자녀를 존중하고 그들의 존중을 얻는 것, 자녀에게 좋은 결정을 내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 자녀가 어려운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자녀에게 공손함, 비폭력, 자신에 대한 존중, 인권과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긍정적 훈육’은 모든 연령대의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유용한 가르침이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에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부모들이 하는 말이다. 실제 아이들을 잘 키워낸 부모의 모습은 좀 다르다. 그 공통점은 좋은 과외, 풍부한 물리적 지원이 아니었다. 당신이 보아 왔던 부모나 전통적인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아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상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을 응원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한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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