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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바이러스 앞에서 벌이는 종교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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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중세의 암흑을 상징하는 종교재판은 스페인에서 가장 극성을 부렸다. 1478년 종교재판소가 설치돼 1834년 폐지될 때까지 산 채로 화형대 기둥에 묶인 이단자가 3만 명이 넘는다. 다른 처형 방법이나 고문으로 희생된 숫자가 최소 30만, 최대 200만 명이라는 연구도 있다. 종교재판의 에너지는 신앙을 향한 맹목적 열정 같지만, 실제로는 세속적 셈법이 작동했다. 아라곤과 카스티야 왕실이 결합한 스페인 왕국은 정치적 안정을 위한 수단을 종교적 동질성 확보, 즉 이단 색출에서 찾았다. 로마 교황권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목적도 있었고, 이단으로 지목된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탐욕도 깔려 있었다.

신천지 매달리다 수도권 뚫려 #특정 집단 때리기로 ‘자기 정치’ #그럴 시간에 방역 더 집중하라

구로콜센터가 코로나19에 뚫리자 서울시는 가장 먼저 신천지 교도 명단을 들췄다. 역학조사상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조처마저 정치적 의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왜일까. 박원순 시장은 “콜센터 직원 중 두 명이 신천지 신도지만 ‘아직’ 음성이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무심코 나온 ‘아직’이란 단어가 미묘하다. 서울에서 발생한 대규모 집단 감염을 어떻게든 신천지와 연결하려는 ‘기대’를 읽었다면 과민 반응일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콜센터 직원 중 지금껏 드러난 5명의 신천지 신도는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한국 사회의 모든 현안이 그렇듯 코로나19 사태도 정치적 프레임에 갇혔다. 그 책임을 놓고 진영이 갈린다. 중국이냐, 신천지냐다. 세세하게 감염원을 따지는 일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팬데믹’이 됐는데도 공방은 여전하다. 화해 불능의 진영 논리지만, 굳이 따지자면 집권 세력에 책임이 더 돌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신천지 때리기를 종교재판 수준으로 행하며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한 여권의 행태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다.

신천지 교단의 은밀성·폐쇄성이 방역의 걸림돌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을 무조건 압박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방역 실무진의 의견이었다. 그런데도 여권의 유력 정치인들은 신천지 공격을 통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신공(神功)에 가까운 정치 기술을 발휘했다. 박원순 시장은 신천지 지도부를 살인 혐의로 고발했고, 이재명 경기지사는 밤중에 직접 교주의 거처를 급습하며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방역당국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검찰을 압박하며 강제 수사를 지시했다. 시민 보건을 위한 열정이라는 거룩한 포장 안에 ‘자기 정치’라는 세속적 욕망을 감추고 있는 점이 종교재판을 닮았다.

공동체의 재난에 정치적 사(邪)가 끼이면 희생양 찾기와 집단 혐오라는 독버섯이 자란다. 스페인 종교재판의 폭력이 오랫동안 가능했던 것은 대상이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이다. 레콩키스타(기독교의 이베리아반도 재정복)를 당한 무어인(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계), 종교적·인종적 소수자인 유대인, 교세가 약한 개신교들이 피해자였다. 만일 신천지라는 신흥 종교가 아닌 기성 거대 교회에서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졌다면 여권 지지세력들은 지금 같은 공격을 해댔을까. 대구가 아닌 여당 지자체장 지역이라면 ‘코로나19는 대구 사태’라는 친문 방송인의 막말이 과연 나왔을까.

혐오의 대상을 찾아 책임 전가에 골몰할 시간에 방역망 점검이라도 한 번 더 하라. 마스크 사느라 긴 줄 늘어선 시민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달래는 길이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가 아니라 ‘혐오의 정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의 정치는 정치의 혐오를 부를 뿐이다.

혹시나 신천지를 편든다는 억측이 있을까 봐 밝힌다. 개인적으로 신앙은 존중하지만, 모든 종류의 광신은 싫어하는 무신론자다. 이런 신앙 고백을 해야 하다니, 21세기 문명국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서글픈 중세적 풍경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