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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 눈감고 현장 다녔나" 경질론 다시 키운 '마스크 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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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족하지는 않다. 의료진이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마스크 수급과 관련 이렇게 발언한 것을 두고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당장 의료계에선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잦아들던 장관 경질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의료진의 공분을 자아낸 박 장관의 발언 배경과 실제 현장 상황을 짚어봤다.

“쌓아둔다?”..“현장 모르는 소리” 반발

실언·망언·폭언…. 의료계는 박 장관의 발언을 이렇게 평가했다. 의료 단체는 잇따라 성명서를 통해 “무능한 거짓말쟁이 장관을 즉각 파면하라”(전국의사총연합회)고 요구했다. 박 장관의 발언은 “의료계에 대한 평소 적대감이 표출된 것”(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라는 해석까지 내놨다.

누구보다도 현장을 많이 돌아다녔다는 박 장관의 말이 맞는 것일까. 지역별 편차는 있지만 현장 의료진에게 확인한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재까지 누적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선 KF94 마스크를 하루 600~800개 썼는데 물량이 달려 이 마스크 착용 대상을 고위험군 접촉 의료진으로 대폭 축소했다고 한다. 지금은 200개 미만으로 지급하고 있다. 대신 낮은 등급의 덴탈마스크(치과용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마스크를 쌓아놓고 쓸 정도면 정말 좋겠다. (박능후 장관의 발언은) 배부른 소리”라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시의사회 소속 한 간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간부는 “의사 장터라고 자체 온라인 사이트가 있는데 원래 정부가 이곳에 공급하고 우리는 주문을 하면 됐다. 정부에서 국민에게 준다고 조달을 하지 않아 물건이 안 들어온다. 전국에서 주문은 폭주하는데 전혀 신청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물건을 산 사람은 전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구 같은 경우 전시 상황인데 시 의사회로 들어오는 마스크를 즉각 병원에 나눠줄 정도로 물건이 부족하다. 검체를 채취하는 선별진료소 등에선 N95 마스크를 껴야 하는데 정말 부족하다. 응급상황엔 2~3일 치가 한꺼번에 소모된다. 그래서 며칠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장관이라는 사람이 쟁여놓는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나”고 분통을 터트렸다.

“돈 됐고 마스크 보내달라” 

대구 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지원을 하는 방상혁 대한의사협회 부회장도 “장관이 한마디로 ‘눈감고 현장을 다녔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날을 세웠다.

방 부회장은 “의협 이사들의 주요 업무가 마스크를 구하러 다니는 게 됐다. 현장 인원이 마스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현장 의료진이 마스크를 빨아서 쓰기도 한다. 의협에서 권고하지 않는 일이지만, 마스크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의왕시 고천동 의왕시 보건소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보건소 관계자가 감염테스트를 받기 위해 방문한 시민을 안내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1일 의왕시 고천동 의왕시 보건소에 설치된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보건소 관계자가 감염테스트를 받기 위해 방문한 시민을 안내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대구에 며칠 전 돈을 보내주려 했더니 ‘돈은 됐고 방호복이랑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해서 부랴부랴 구해서 보내준 적이 있었다. 돈이 있어도 (마스크와 방호복을) 못 구하는 게 현실”이라며 “이 상황이 얼마나 갈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마스크를 많이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마스크가 없으면 환자 진료도 못 하는데 그걸 어떻게 사재기란 식으로 말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소규모 집단 감염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수도권 지역 얘기를 들어봐도 장관 판단은 현실과 괴리가 있어 보인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는 “비공식적인 의사 커뮤니티를 보면 재고가 부족해 아껴 쓰거나 재사용하는 것 같더라. 한 달 전부터 이미 전공의들은 병원이 물자를 아끼기 시작해 일하면서 마음 놓고 꺼내 쓰던 마스크를 병동 수간호사 등 관리하는 사람에게 받아 사용한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전국적으로 의료 물품을 유통하는 업체도 마스크를 이전처럼 확보하기가 힘들어 전국 병원에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 “‘보호구 충분’ 강조하려 한 듯” 해명

현장의 온도와 사뭇 다른 장관의 발언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걸까.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홍보관리반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장관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대구 의료현장에 배급되는 레벨D 등 보호구가 필요 수량보다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장관이 그 부분을 강조하려다 그렇게 답변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논란을 의식한 듯 현장과의 괴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를 줄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의료인 마스크 공급을 위해 100만장에 대해선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144만장까지 추가 확대를 하고 있다”면서도 “총량적인 부분과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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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스크 수급 브리핑에서 양진영 식약처 차장도 “현재 공급이 아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현실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복지부 장관이 다른 차원에서 아니면 전체적인 시각에서 한 말일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진창일·황수연·백희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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