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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WHO 요구땐 도쿄올림픽 포기" 야심가 바흐 속내 읽히는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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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시사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시사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2013년 9월 1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힐튼호텔 로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125차 총회의 마지막 날의 최고 하이라이트를 앞두고 IOC 위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새롭게 IOC를 이끌 위원장이 비밀투표로 막 발표될 참이었다. IOC 사상 가장 많은 6인의 후보가 난립한 선거였지만 사실상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준비된 2인자’로 불렸던 독일의 토마스 바흐 당시 IOC 부위원장이었다.

로비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신임 위원장의 이름이 발표됐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전을 취재하며 바흐 위원장을 3년간 지켜봤지만 그때만큼 밝은 표정을 보인 적은 없었다. 환호성을 지른 바흐 위원장은 곧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절친’들에게 축하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각국 취재진에게 악수를 건네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 바흐 위원장은 당선 8년차가 됐다. 그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올라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올해 7월 24일에 개막 예정인 도쿄 여름올림픽은 그와 인연이 깊다. 그가 당선된 125차 IOC 총회 첫날이었던 2013년 9월 7일 도쿄가 올림픽 유치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현장에 있었다. 유치 성공 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기자단에게 인사하던 아베 총리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바흐 위원장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눈 각별한 사이가 된 셈이다.

바흐 위원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로잔 IOC 본부에서 약식 회견을 하는 장면. 이 IOC 본부는 그의 재임 기간 중 새로 지어진 건물로 그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AFP=연합뉴스]

바흐 위원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로잔 IOC 본부에서 약식 회견을 하는 장면. 이 IOC 본부는 그의 재임 기간 중 새로 지어진 건물로 그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AFP=연합뉴스]

IOC에게 있어서 여름올림픽은 겨울올림픽에 비해 규모와 이익이 더 큰 주력 상품이다. 선진국에서 주로 즐기는 겨울스포츠와 달리 여름올림픽의 종목은 외연이 더 크다. 광고 수익과 중계권료 수익이 그만큼 더 크다는 얘기다. IOC 위원장에게 현실적으로 여름올림픽이 중요한 이유다.

재선 앞둔 바흐 위원장, 도쿄올림픽이 시험대  

올해 도쿄올림픽은 바흐 위원장이 당선 후 두 번째 치르는 여름올림픽이다. 올해 여름올림픽은 특히 중요한데, 그가 내년에 재선을 앞두고 있어서다. IOC 위원장은 첫 당선 후엔 임기 8년이 기본으로 주어지고, 재선에 성공하면 임기가 4년 연장된다. 그의 재선 운명을 가르는 IOC 총회는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만약 도쿄올림픽을 잘못 치른다면 그의 리더십엔 치명적일 수 있다.

만약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5년까지 그의 임기가 이어지는데, 이는 현재 한국 정부엔 큰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공동 유치 계획을 밝힌 2032년 올림픽의 개최지를 결정하는 게 관례대로라면 2025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8년 청와대에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으로부터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 올림픽에 공헌한 공로로 금장 훈장을 받고 기념배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018년 청와대에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으로부터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 올림픽에 공헌한 공로로 금장 훈장을 받고 기념배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바흐는 IOC 안팎에서 알아주는 야심가다. 바흐 위원장과 친분이 깊은 한 전직 IOC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11일 익명을 전제로 “내가 바흐 위원장이라면 올해 7월 개최를 강행하고 싶을 것”이라며 “무관중 경기로 치르는 것도 카드로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코로나 근심이 깊어질 수록 그의 고민도 커진다. 그가 12일(현지시간) 독일 ARD방송 인터뷰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요구한다면 도쿄올림픽 개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WHO가 올림픽 중지를 먼저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선택지다.

바흐 위원장은 야심이 큰 만큼 적도 꽤 있다는 게 복수의 IOC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IOC만 20년 넘게 취재해온 한 미국인 기자는 익명을 전제로 “바흐의 리더십에 불만이 있는 (IOC) 위원들도 있다고 파악된다”며 “그에겐 내년 그리스 IOC 총회가 큰 시험대”라고 말했다.

그에 대해 IOC 위원들은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다. 바흐 위원장 특유의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높게 사지만 다소 강압적이라는 불만도 있다고 한다. 그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특정 지역의 지도자들과 친분이 유난히 두텁다는 평판 역시 불만의 씨앗이 된다. 2013년 IOC 총회에서 그가 ‘예상된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선을 확정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18년 도쿄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 참석한 바흐 위원장과 아베 총리. 아베 총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쿠웨이트의 왕세자이자 IOC 위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알 파하드 알 사바다. [AP=연합뉴스]

2018년 도쿄에서 열린 IOC 집행위원회에 참석한 바흐 위원장과 아베 총리. 아베 총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쿠웨이트의 왕세자이자 IOC 위원인 셰이크 아흐마드 알 파하드 알 사바다. [AP=연합뉴스]

IOC와 일본 정부의 고민은 깊다. 둘 다 13일 현재까지는 강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3일 IOC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EB)를 주재하면서 “취소나 연기는 논의되지 않았고, 도쿄올림픽 성공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도쿄 올림픽, 1940년에도 취소된 선례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전 세계 주가가 대폭락하는데 무슨 올림픽이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IOC와 아베 정부에게 있어선 아주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베 총리에게 “1년 연기를 하면 어떻겠나”고 제안하자 아베 총리가 곧바로 전화 통화를 한 것을 봐도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에 사활을 걸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1940년 개최하기로 했던 도쿄 올림픽을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취소 당한 적이 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당시 IOC가 개최권을 박탈했었다. 개최 취소 및 연기는 일본에게 여러모로 악몽이다.

지난해 7월24일 일본에서 도쿄올림픽 관련 행사에 참석한 바흐 위원장(왼쪽)과 아베 총리. 개막까지 꼭 1년이 남은 때였다. 이때만 해도 2020년 7월24일 개막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24일 일본에서 도쿄올림픽 관련 행사에 참석한 바흐 위원장(왼쪽)과 아베 총리. 개막까지 꼭 1년이 남은 때였다. 이때만 해도 2020년 7월24일 개막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AP=연합뉴스]

올림픽 연기엔 현실적 문제가 산적해있다. 우선 몇 달 미루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림픽 중계권료 시장의 ‘큰 손’인 미국 NBC방송국은 이미 IOC와 도쿄올림픽 방송 광고로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했다. NBC 측으로선 도쿄올림픽은 그다지 큰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다. 시차 때문이다. 그나마 몇 달을 연기한다면 미국의 주요 스포츠 이벤트인 프로농구(NBA)와 프로풋볼(NFL)의 시즌과 겹친다. IOC로서는 NBC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도쿄올림픽 성화 채화 행사에서 발어하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지난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행사였다. [AF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성화 채화 행사에서 발어하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지난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행사였다. [AFP=연합뉴스]

이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조심스럽게 연기론이 나오면서도 ‘1~2년’이라는 선택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다카하시 하루유키(高橋治之) 집행위원도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올해 열리지 않는다면 1~2년 연기가 가장 현실적 옵션”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를 했던 알라스테어 게일 WSJ 도쿄지국장은 12일 기자에게 “(연기라는) 옵션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라며 “그러나 아직은 결정을 못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내년으로 연기한다면 IOC 위원장의 재선과 겹치고, 2022년으로 연기한다면 그 해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2022년엔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이어 카타르 월드컵도 예정되어 있어서다.

도쿄 올림픽을 위한 성화는 이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됐다. 이 성화를 끌 수 있는 최종 권한은 바흐 위원장에게 있다. 끌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바흐가 풀어야할 문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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