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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수학…과학 엘리트만 뽑아 ‘30년X39% 수익’ 신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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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호 22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퀀트투자’의 대가 사이먼스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출신으로 수학 이론 등으로 시장의 패턴을 찾아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퀀트투자’로 성공한 사이먼스. [중앙포토]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 출신으로 수학 이론 등으로 시장의 패턴을 찾아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퀀트투자’로 성공한 사이먼스. [중앙포토]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플랫아이언(Flatiron) 연구소’. 200여 명의 연구원들이 수학·물리학·천문학 등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곳이다. 이 연구소는 직접 실험을 하기보단 전 세계의 대학·연구소에서 수집한 복잡한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해 인류의 삶을 개선할 해법을 찾고 있다. 이 연구소의 설립자가 헤지펀드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창업자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다.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고 실패의 리스크가 커 정부나 대학이 주도하는 기초과학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사이먼스는 특히 ‘수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 학생들의 수학 능력 향상을 위해 ‘Math for America’라는 비영리단체를 세우고 공립학교 수학 교사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역대 최고 투자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사이먼스가 이토록 수학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건 그의 남다른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투자 신기원 연 천재 수학자 출신 #수학적 알고리즘 활용 ‘감정’ 차단 #1988~2018년 운용 메달리온펀드 #버핏 투자 수익률의 200배 수준 #직원들 투자만 허용, 보상 차별화 #비밀주의로 정보 유출 용납 안 해

#사이먼스의 성공 투자를 이끈 양대 축은 수학과 컴퓨터다. 대부분의 성공한 투자가들이 내세우는 펀더멘털 분석, 가치투자, 직관 등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는 수학 이론과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컴퓨터를 활용해 시장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미래를 예측하는 ‘퀀트투자’에 집중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불린 사이먼스는 17세 때 수학 전공으로 MIT에 조기 입학해 3년 만에 졸업했다. 그 후 버클리대에서 3년 만에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고속 학위 취득과 함께 뛰어난 연구 실적도 다수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천-사이먼스 공식’이다. 사이먼스는 이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76년에 기하학자에게 수여되는 가장 영예로운 상인 ‘오즈월드 베블런 기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학위를 받은 후 모교인 MIT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교수 생활을 한 사이먼스는 국가 정보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국방연구원(IDA)에서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었다. 교수직을 떠나 암호 해독가의 길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교수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수학을 연구할 수 있고, 교수 봉급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이 경제적 부를 얻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으로 깨달은 셈이다.

암호 해독의 경험은 후일 그의 퀀트투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둘 다 ‘소음’ 속에서 ‘신호’, 즉 ‘패턴’을 찾아내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먼스의 외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베트남전 와중에 자신의 반전 의사를 언론에 공개적으로 표명한 일로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1967년 다시 대학에 돌아가기로 결심한 사이먼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뉴욕주립대 중 하나인 스토니브룩대의 수학과 학과장에 임용되면서다. 스토니브룩대 시절은 사이먼스의 학문적 전성기였다. 그의 뛰어난 연구 업적은 수학의 변방 스토니브룩대가 기하학에서 최고 명문 대학의 하나로 자리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 50년 이상 이어진 사이먼스와 스토니브룩대의 인연은 매우 특별하다. 자신은 학교를 떠났지만 회사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스토니브룩에 자리해 있다. 학교에 대한 그의 재정적 지원도 상당해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이 4억 달러에 이른다. 기부뿐만 아니라 대학 내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등에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기도  한다.

스토니브룩에 정착한 지 10년째 되던 1977년 사이먼스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투자 회사 ‘모네메트릭스(Monemetrics)’를 설립하고 전업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박사 과정 시절부터 취미 삼아 거래하던 선물(futures)로 큰 돈을 벌며 경제적 자유를 얻은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외환시장에서 투자의 기회를 발견한 것도 창업의 동기가 됐다.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외환 거래가 급증하면서다.

그런데 모네메트릭스 시절 사이먼스의 투자는 수학·컴퓨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펀더멘털 분석에 기초해 주관적 판단으로 투자하는, 지금은 그가 가장 꺼리는 투자 형태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거래를 거듭할수록 감정에 좌우되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 결과가 부진한 실적으로 이어지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지는 수학이었다. 학자로서 수학 공식을 만들어 기하학의 난제를 푼 것처럼, 이번엔 투자가로서 수학적 알고리즘을 고안해 투자의 답을 구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마침내 사이먼스는 1982년 사명을 ‘르네상스테크놀로지’로 변경하고 퀀트투자의 초석을 쌓기 시작했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르네상스테크놀로지

#사이먼스의 퀀트투자가 내놓은 최고 걸작은 ‘메달리온펀드’다. 1988년 처음 조성된 이 펀드가 2018년까지 거둔 연 평균 수익률은 39%에 이른다. 같은 기간 S&P 500 지수 수익률의 1000배, 워런 버핏의 회사 버크셔해서웨이 주식 수익률의 200배 수준이다. 더 놀라운 건 이 성적이 메달리온펀드의 살인적인 보수(관리보수 5%, 성과보수 44%)를 모두 차감한 후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단순 수익률로만 비교한다면, 인간의 우수한 투자 능력을 대표하는 버핏이 고도의 연산 능력과 분석 능력을 가진 컴퓨터에 완패한 모양새다.

사이먼스의 리더십에도 수학을 비롯한 과학 중심적 사고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 직원 채용에서 금융경력자는 철저하게 배제한다. 투자에 감정의 개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다. 대신 자신과 유사한 배경을 지닌 과학기술 분야의 박사급 엘리트를 채용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은 기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보의 바다에서 투자의 해답을 찾아낸다. 둘째, 특별한 배경의 직원들을 위한 차별화된 동기부여 방식이다. 대부분의 직원이 자신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자 출신인 데다, 홀로 연구실에서 일하는 데 익숙한 성향을 지닌 탓에, 협업을 통한 회사의 목표 달성에 동참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이먼스는 직원들의 연구 활동이 회사의 수익, 그리고 더 나아가 직원 개인의 부로 이어지는 탄탄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메달리온펀드가 좋은 예다. 메달리온펀드는 1993년부터 더 이상 외부인의 투자를 받지 않는다. 오직 직원들의 투자만 허용한다. 직원들은 메달리온펀드 운용 모델의 진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그 결과 펀드의 천문학적 수익은 오롯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셋째는 극도의 ‘비밀주의’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모든 면에서 빈틈없는 보안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 운용 모델의 보안이다. 최고의 인프라와 인재로 빚어낸 투자공식은 외부로 유출되는 순간 그 수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차분한 학자 이미지의 사이먼스도 격노하고 절대 용납하지 않는 것이 직원의 이직에 따른 내부 정보 유출이다. 2007년에는 두 명의 직원이 경쟁사로 옮겨가며 운용 모델을 유출한 데 대해 법정소송을 벌여 2000만 달러의 보상을 받아내고 이직을 무효화시키기도 했다. 과학자들이 연구 표절에 민감한 것과 같은 이치이고, 이런 강력 대응은 남아있는 직원들에 대한 사전 경고의 의미로도 읽힌다.

투자사 통해 코로나 백신 도전, 빌 게이츠도 동참

사이먼스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자신의 개인 자산(216억 달러)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 ‘유클리드(Euclidean) 캐피털’을 통해서다. 유클리드 캐피털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유력한 후보 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바이오기술 스타트업 코다제닉스(Codagenix)의 지분을 25%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다제닉스는 스토니브룩대 내부 연구소를 모태로 하고 있어 사이먼스와의 인연이 특별한 회사이기도 하다. 게다가 컴퓨터 알고리즘을 백신 개발에 활용하는 신기술을 갖고 있어 사이먼스의 특별한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코다제닉스 투자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동참하고 있다. 공공의료 개선을 위한 투자를 목적으로 게이츠의 재단이 설립한 ‘어쥬번트(Adjuvant) 캐피털’이 코다제닉스의 대주주다. 코다제닉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사이먼스와 게이츠는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의 보건 향상에 기여했다는 유산을 남기게 될 것이다.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

르네상스테크놀로지 공동 창업자
출생연도 1938년(82세)
최종 학력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수학 박사(1961년 졸업)
개인 자산 216억 달러 (2020년 3월 기준, 포브스),
미국 21위(세계 44위)

최정혁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jung-hyuck.choy@sejong.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유비에스, 크레디트 스위스, 씨티그룹 FICC(Fixed Income, Currencies and Commodities, 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세종대 경영학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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