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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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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알리페이 QR 결제 안착시킨 ICB 이한용 대표

서울 합정동 ICB 사옥 지하 1층 카페 디벙크에서 이한용 대표를 만났다. 암호화폐 결제나 테이블 QR 결제 등 다양한 결제 서비스를 시험하기 위해 ICB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알리페이 파트너인 ICB는 지금 한중 간 송금을 활용한 무역대금 정산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김상선 기자

서울 합정동 ICB 사옥 지하 1층 카페 디벙크에서 이한용 대표를 만났다. 암호화폐 결제나 테이블 QR 결제 등 다양한 결제 서비스를 시험하기 위해 ICB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알리페이 파트너인 ICB는 지금 한중 간 송금을 활용한 무역대금 정산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김상선 기자

아, 중국!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반중 정서가 팽배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양국을 오가는 사람 수가 확연히 줄면서 중국 관련 비즈니스에 빨간 불이 켜졌지만 분명 버릴 수도, 버려서도 안 되는 시장이다. 지금부터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중 간 여러 정치적 고비 불구 #알리페이 국내 파트너로 급성장 #중국과 경쟁 대신 가교에 기회 #환치기 양성화 서비스 준비 중

ICB 이한용(46) 대표를 떠올린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국내 소비자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2013년 창업과 동시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의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의 한국 독점 파트너(2014~17)가 된 데 이어, 2015년엔 알리바바의 물류회사 차오니아오 파트너로 선정돼 급성장한 기업이다. 2014년 판매 10위권 밖이던 한국이 2015년 광군제(매년 11월 11일 열리는 지상 최대의 온라인 쇼핑 축제) 당시 미국·일본 다음으로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었던 데는 100톤짜리 전용 화물기 3대로 49만 건, 270억 원어치의 물건을 제때 중국에 실어 보낸 ICB의 역할이 컸다.

지금도 광군제에 물건을 팔려는 한국 판매자라면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ICB의 물류 서비스를 거쳐야 한다. 이제 겨우 창업 7년, 여전히 100명이 채 안 되는 직원이 연 매출 285억 원(2019년 기준)을 올리는 작은 회사가 이처럼 숫자를 넘어서는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코로나 이후를 바라보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코로나가 모든 걸 삼켜버린 현재 중국, 더 정확히는 알리바바와 함께 커온 이한용 대표를 서울 합정동 ICB 사옥 지하 1층 북카페 디벙크에서 만났다. 벌써 두 달 가까이 마스크 대란을 겪고 있던 터라 마스크 얘기부터 물었다. 마침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일본에 기부한 마스크 100만 장이 한국산으로 밝혀져 화제가 됐다.

혹시 ICB가 중국에 마스크를 보냈나.
“설 전후로 알리바바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비공식적으로 구해달라기에 알아보니 이미 공장에 줄을 섰더라.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이 너무 올라 몇몇 생산공장을 연결해주기만 했다.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는 물류창고에 마스크를 보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문제 소지도 있고 창고에 여유가 없어 거절했지만.”

※ICB는 알리바바의 온라인 상거래(B2C) 플랫폼인 T몰에서 판매되는 한국 상품을 물류센터에 모았다가 중국으로 배송한다. 이를 위해 2017년 인천에 3만5000㎡ 규모 물류창고를 지었다.

중국으로 마스크 배송도 했나.
“우리가 따로 하진 않았다. 다만 평소 중국 동방항공을 통해 중국에 화물을 보내는데 설 이후 2~3일 배송을 전혀 못 했다. 동방항공 측이 ‘구호품 수송이 우선’이라며 아예 일반 화물을 받지 않았다.”
본론으로 돌아가, 작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알리페이 파트너가 됐나.
“인연이 200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 거래 전자상거래 회사에 다니면서 답답한 게 많았다. 초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결제는 신용장이 오가며 몇 달이 걸리더라. 거래와 결제 모두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상거래 업체였던 알리바바를 찾았다.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는데 한번 와보라고 하더니 막 자회사로 독립한 알리페이의 담당자를 연결해줬다. 그땐 시기상조였는지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2013년 ICB 창업 후 다시 찾아갔더니 ‘무슨 아이디어든 가져와 보라’길래 예전 사업계획서를 그대로 다시 갖다 줬다. 그게 지금 알리페이의 QR 결제다. 처음엔 ‘중국서도 해봤는데 에러가 많다’며 회의적이길래 서울 명동 올리브영 매장에 데려가 멤버십 포인트 결제하는 걸 직접 보여줬다. 이후 OTP처럼 매번 일회용 QR코드를 생성하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를 공동으로 개발해 2014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사드 보복에 코로나까지, 중국 관광객이 줄어 사업에 타격이 크겠다.
※중국인 입국은 1월 13일 하루 1만 9000명에 육박하다 2월 말 현재 1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맞기도하고 틀리기도 하다. 정치적 이슈로 관광을 막아도 중국인들이 워낙 한국 물건을 선호하다 보니 온라인 거래든, 보따리상을 통하든 중국으로 가는 물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 관광객이 한국에 와 직접 계산하는 오프라인(대면) 결제도 사실 올해 사상 최고치를 찍을 거로 봤다. 당초 예상대로 시진핑 주석이 방한하면 아직 막혀있는 개별 관광 등 규제 보따리를 풀어 중국 관광객을 대거 몰고 올 걸로 기대했는데 코로나로 다 틀어졌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처리한 중국인 관광객 결제대금이 1조700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1조3000~4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 같다. 전체 사업에서 결제 비중을 줄이는 등 사업다변화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준비한 게 기업 간 무역대금 정산 서비스다. 주한 외국인 해외송금 통계를 보면 1위가 네팔, 2위가 필리핀이다. 말이 안 된다. 중국인이 압도적인 거주자 1위인데. 거주자든, 보따리상이든 중국인들이 정상적인 송금 거래 대신 다들 불법 환치기 시장을 이용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파악도 못 할 만큼 규모가 큰데 이 중 일부만 양성화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 올해 1조원, 내년엔 3조원까지 늘릴 수 있을 걸로 전망한다.”
다들 중국을 얘기하지만 정작 중국을 사업 파트너로 둬서 성공한 모델을 찾기 쉽지 않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중국 시장의 특성상 중국과 경쟁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손잡고 같이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 ICB는 결제·물류·송금 등 중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 서비스에서 답을 찾았다. 최근 독일 이커머스 업체인 레인지인터내셔널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품 브랜드 에이전트와 계약한 것도 사실 이런 맥락이다. 외형상 유럽 제품을 선호하는 한국 직구 시장을 노린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물류로 중국과 윈윈하는 구조다. 가령 동방항공이 중국 물건을 싣고 유럽에 갔다가 빈 비행기로 돌아오는데 우리가 여기에 화물을 실어 오면 싼값에 해결이 가능하다. 물류를 중심으로 하는 유통사업인 셈이다. ICB가 핀테크 회사냐, 물류 회사냐며 정체성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 이름 중 CB를 차이나 비즈니스로 오해하는데 크로스보더(국경간 거래)의 약자다. 무슨 영역이든 제대로 크로스보더 서비스를 하는 최고의 기업이 되고 싶다.”

ICB는 사스를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만든 알리바바처럼 이렇게 코로나 이후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윈의 마스크 선견지명

마윈

마윈

코로나19 이전에 중국엔 2002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있었다. WHO가 팬데믹으로 공식 선언한 건 아니었지만 중국 내에선 코로나와 비견할만한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당시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사스를 통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혜택을 봤다. 사스로 밖에 나가기 두려웠던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에 나서면서 급성장 기회를 얻었다.

처음엔 모든 게 불운처럼 보였다. 알리바바는 당시 중국시장 90%를 선점한 이베이에 맞서 소비자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준비 중이었다. 내부에서조차 “도대체 이베이에 어떻게 맞선단 말인가”라는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마윈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비밀스럽게 준비했다.

그 무렵 심지어 알리바바 본사 직원 중 사스 의심 환자가 나왔다. 마윈은 전 직원에게 마스크를 배포하고, 일주일 동안 모든 직원을 집에 있게 했다. 소리소문없이 새 서비스를 준비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또 마윈의 결단력 덕분인지 의심 환자로 분류된 직원을 비롯해 전 직원이 사스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았고, 알리바바는 차질없이 새 플랫폼 타오바오를 선보일 수 있었다.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자마자 알리바바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마스크를 신속하게 사들인 데는 이런 사스 때의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