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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공장 팔아 재난소득 주자? 민노총 사내유보금 황당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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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10일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발표 및 대정부 교섭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재벌 기업 사내유보금을 활용한 재난생계소득 지급 방안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이 10일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코로나19 특별요구안 발표 및 대정부 교섭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재벌 기업 사내유보금을 활용한 재난생계소득 지급 방안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 공장·설비·창고 등을 팔아 '코로나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 대책으로 이를 거론하는 단체가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을 직접 지원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며 "950조원에 달하는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의 10% 정도만 재난생계소득(재난 기본소득) 기금으로 출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사내유보금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주장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내유보금 환수하면 실업난 왜? 

사내유보금은 민주노총이 이해하는 것처럼 '기업 곳간에 쌓인 현금'이 아니다. 이 돈은 기업이 사업을 하기 위해 끌어온 자본금의 일부다. 영업으로 번 돈에서 주주 배당금을 뺀 '이익잉여금'과 주주들이 자본금을 보태줄 때 생기는 '자본잉여금'을 더한 것이 사내유보금이다. 이 돈은 공장·토지·기계·연구개발 자산 등 기업 경영에 필요한 여러 자산에 투자돼 있기 때문에 현금 형태로 남은 돈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곧 생산설비 등 기업 자산 매각을 의미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업난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회계 전문가들은 오해를 낳을 수밖에 없는 사내유보금 대신 기업이 돈을 벌고 세금을 낸 뒤 다시 투자한 자산이란 의미로 '세후재투자자산(稅後再投資資産)'이란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내유보금. [중앙포토]

사내유보금. [중앙포토]

지난해 기업 현금성 자산은 줄어 

기업이 가진 현금이 얼마인지를 살펴보려면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를 봐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지난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529곳의 현금성 자산은 289조원으로 2018년 말 296조9000억원보다 2.7% 줄었다.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증가세를 보이던 현금성 자산 규모는 지난해 들어 감소한 것이다.

통상 기업은 영업활동으로 번 돈을 이윤이 생기지 않는 현금 형태로 쌓아두길 꺼린다. 끊임없이 생산 활동에 투자해 이윤을 남기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경기 부진으로 채권자의 부채 상환 압력이 높아지거나, 신기술 투자, 신산업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 등을 계획할 때는 쌓아두는 현금성 자산이 늘어날 수 있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개발주의 시대에는 은행 대출이 시행착오와 투자 실패 등을 참고 견디는 '인내 자본'으로서 기능했지만, 최근 대기업은 사내에 보유한 현금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금 환수 논란은 복지 재원 충당, 경제 민주화 이슈가 나올 때마다 등장한다. 거론 주체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이 사내유보금 과세를 거론했다. 최근 이 주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의 회계적 의미를 잘못 이해해 대기업이 감춰 둔 '화수분(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인 것처럼 쓰는 경향이 교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중공동행동 주최로 2019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중공동행동 주최로 2019년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근로소득세, 부가세 면세율 낮춰야" 

재난 기본소득 재원은 결국 경기 활성화에 따른 세수 증대, 국채 발행을 통한 나랏빚 확대, 증세 등 3가지 방법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중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위축하는 국면에서 당장 세수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나랏빚을 늘리는 것도 자녀 세대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이 남는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은 고소득층 증세 등을 거론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재원 충당이 어렵다. 이 때문에 40%(2018년)에 달하는 근로소득세 면세 비율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정면 돌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총선을 앞둬 사실상의 증세 논의가 쉽지는 않겠지만, 유럽 등 해외와 비교해 높은 근로소득세·부가가치세 등의 면세 비중을 국제 기준에 맞게 줄인 뒤, 세입 범위에서 재난 수당 등을 지급하는 게 원칙에 맞다"고 말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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