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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문재인의 한·중 공동운명체’ 그 치명적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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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말은 씨다. 말은 운을 가른다. 행운과 불운이 찾아온다. 그것은 언어의 오묘함이다. 어이없는 말은 불행의 씨앗이다. 그 이치는 나라에도 작동한다.

어이없는 말은 재앙을 불러와 #‘한·중 전염병 공동체’는 진행형 #시진핑의 중국몽은 한반도 패권 #운명 묶기는 너절하면서 끔찍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은 공동운명체’라고 했다. 그 다짐은 역사의 순리를 거역한다. 자유민주주의만이 한국의 운명이다. 재앙이 몰려왔다. 코로나19는 창궐 중이다. ‘한·중 전염병 공동체’는 진행형이다.

청도 대남병원 확진자가 긴급 이송됐다. 정신병동 50대 환자였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구급차 침대에 태우기 직전이다. 그는 들뜬 표정이었다고 한다. 10년 만의 외출이다. 그는 귀환하지 못했다. 코로나에 희생됐다. 그의 삶에 신천지교회는 없었다.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진다. 염습은 없다. 시신에 수의를 입히지 않는다. 보호 장구 차림의 가족들만 지켜본다. 최후의 존엄은 생략된다. 신속한 화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장관은 으스댄다. “한국은 새로운 방역관리 모델을 만들고 있다.” 비통한 풍광 속 자화자찬이다. 국민적 울분이 일어난다.

역병(疫病)이 돌면 문 닫기다. 전염원 차단은 상식이다. 문재인 정권은 기본을 묵살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처음부터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는 없었다. 문 대통령의 정략과 중국 편향, 역사관이 거기에 투사됐다. 치명적인 실책이다. 초동 방역은 실패했다.

한국 의료진 기량은 세계 최고다. 코로나 전선은 그들의 투혼으로 지켜진다. 자원봉사자의 헌신은 돋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중 위안이다.

청와대 회의장 글씨는 여전히 ‘나라답게 정의롭게’다. 리더십의 우선적 정의는 무엇인가. 바탕은 국민 건강·안전이다. 마스크 대란은 분통을 키운다. 정권의 무능은 절정에 이른다. 나라다움은 일그러졌다. 그 글귀는 심하게 비틀거린다. ‘여권 파워’는 마패의 힘이다. 한국은 세계 3위. 무비자로 전 세계(189개국)를 누볐다. 위력은 추락했다. 110 여 개 나라가 한국인 입국을 제한한다.

문 대통령은 집요하다. 그는 초기의 패착을 인정·사과하지 않는다. 마스크 혼란에만 사과한다. 지금도 중국을 의식한다. 정권의 실체가 폭로됐다. 그것은 고통 속 소득이다. 중국의 내면도 드러났다.

중국 지도부는 자책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화(中華)의 전통이다. 공산 체제의 속성이다. 그 자세는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코로나 발병을 미안해하지 않는다. 중국은 돌변한다. “외교보다 방역이 중요하다.” 치졸한 책임전가가 나타난다. “바이러스 발원지가 우한이 아닐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신천지에 의혹을 쏟는다. 신천지의 행태는 분노를 일으킨다. 하지만 코로나의 근원은 아니다. ‘문 정권 사람들’도 거기서 마녀사냥에 열중한다. 운명 공동체는 얽혀서 악성 변종한다.

중국 쑨춘란(孫春蘭) 부총리는 5일 우한에 갔다. 그곳 당국의 보고는 ‘식료품 공급 충분,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절규다. “쟈더(假的, 거짓)! 전부 거짓이다.” 그것은 대중 조작과 독재사회의 장면이다. 중화 대륙의 어두운 요소는 조폭적이다. 중국은 외교에 그런 성향을 주입했다. 조폭은 맞서면 주저한다. 베트남은 중국과 친숙하다. 하지만 분쟁 때는 다부진 저항이다. 중국은 그런 베트남을 꺼린다. 조폭은 비굴하면 깔본다. “한국은 작은 나라,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문 대통령의 그 언어는 굽신댄다. 그 외교는 중화 질서에 자진 종속이다. 수모는 국민의 몫이다. 코로나19가 한국에 급속히 퍼질 때다. 중국에서 한국인 입국자의 거친 격리가 시작됐다. 한국 교민의 아파트에 각목 빗장이 질러졌다.

문 대통령은 끈질기다. ‘한·중 공동운명체’ 깃발은 펄럭인다. 그 내면의 진실은 무엇일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일까. 북한 핵문제에 ‘중국의 역할론’ 때문일까. 그것만으로 문 대통령의 집착은 해부되지 않는다.

거대한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것은 한반도 질서의 전면 개조일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대안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몽에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 실현은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독점이다. 중국·남북한의 3각 구도 구축이다. 한·미 동맹은 헝클어졌다. 한·미·일 협력은 이미 깨졌다.

운명은 삶과 죽음이다. 나라의 흥망성쇠다. 중국과의 문화 친선은 확장해야 한다. 경제 교류는 면밀하게 다져야 한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다른 차원이다. 중국 패권 구도로의 편입은 치명타다. 그것은 역사의 패배주의다. 악몽으로 가는 통로다. 산업화와 IT에서 한국은 중국에 앞서 갔다. 중국을 누른 시절의 성취다. 한국의 경쟁력은 자유와 개방이다. 중국은 통제와 억압이다. 두 나라의 정체성은 충돌한다. 비교할수록 끔찍하다. 그 표현은 너절해진다.

역병은 역설을 생산한다. 한국인의 의식을 깨웠다. 그 속에서 중국에 대한 시각은 재조정된다. 그 작업은 친선과 경계 영역의 전략적 분류다. 중국 운명과의 동행은 거부로 표출된다. 다수 국민은 분개한다. 그 감정은 ‘한·중 공동운명’ 시도에 대한 저항이다. 그것은 역사 경험과 지혜에서 나온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