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플]"코로나 팬데믹" CNN은 부르고 WHO는 못 부르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0.03.11 17:44

업데이트 2020.03.11 22:03

미국 어린이보스톤병원, 하버디메디컬스쿨 등이 공동 운영하는 실시간 세계보건지도 '헬스맵'의 코로나19 확진 추이 [HealthMap.org 캡처]

미국 어린이보스톤병원, 하버디메디컬스쿨 등이 공동 운영하는 실시간 세계보건지도 '헬스맵'의 코로나19 확진 추이 [HealthMap.org 캡처]

코로나19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인가, 아닌가. 이 논쟁에 미국 CNN 방송이 먼저 치고 나왔다.
CNN은 9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같은 날 "팬데믹 위협이 매우 현실화되고 있다"면서도 정작 팬데믹 선언은 보류했다. 전염병 위험 최고단계인 팬데믹은 "대다수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을 의미한다.

팬데믹이 왜 중요해?

-단어의 상징성파급력 때문이다.
-레베카 피셔 텍사스A&M 대학 조교수(바이러스학)는 "이번 논란은 단순히 의학적 이슈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했다. '회사가 망할 듯한 위험'이라는 말과 '파산'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다르듯, 팬데믹으로 선언하고 나면 전 세계에 미칠 정치·사회·경제적 여파가 크다는 거다.
-WHO는 팬데믹 단계에서 사재기 등 사회 갈등이나 입국제한 조치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을 우려한다. 설대우 중앙대 약대 교수는 "팬데믹 선언시 세계 경제는 거의 핵폭탄을 맞을 수 있어 WHO의 부담이 있을 것"고 말했다.

WHO의 입장

-"팬데믹이란 단어를 일찍 쓸수록 불합리한 공포와 낙인이 증폭돼 각국 시스템이 마비될 수 있다"(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팬데믹 선언시 보건 대응 정책은 '봉쇄(containment)'에서 '완화(mitigation)' 위주로 전환된다. 현재는 전염원 추적 같은 통제 위주 전략을 쓰지만, 완화로 전환되면 스포츠 경기 취소· 학교 폐쇄, 국경 통제 등 보다 광범위하게 정책이 적용된다.
-마이클 라이언 긴급대응팀장은 "각국 정부의 봉쇄 노력을 저해하고, 개별 국가의 전략이 너무 이른 시점에 바뀔 위험이 있다"고 했다.

-통제 불능의 상태가 아니라면 팬데믹이라는 용어는 신중하게 써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

CNN의 입장

-2009년 신종플루(H1N1)로 WHO가 팬데믹을 선언할 때 기록은 '74개국, 확진 3만 건'이었다. 이번은 11일 현재 113개국에서 11만명 이상이 확진됐다.
-팬데믹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질병이나 사망 유발 ▶지속적인 사람 간 감염 ▶전 세계 확산 증거를 기반으로 팬데믹으로 봐야 한다.

-적절한 대처를 위해서라도 솔직해야 한다. 위험을 과장하고 불안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전문가가 통제가 어려운 팬데믹으로 본다.

백그라운드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AP=연합뉴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AP=연합뉴스]

-WHO 입장에선 여러 이유로 '팬데믹 선언'이 쉽지는 않다.

팬데믹의 정확한 정의나 기준이 없다. 타릭 야사레비치 대변인은 "(신종플루가 아닌)코로나19를 위한 팬데믹 정의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신종플루 트라우마가 있다. 2009년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얼마 안돼 신종플루가 종식되자 "WHO가 제약회사의 공포마케팅과 손잡고 팬데믹을 선언해 불안 부추겼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치적 고려도 있어 보인다. 신종플루 때도 중국의 반발이 셌다. 중국은 현재 WHO 재정기여금 납부 2위 국가, 전체 12%인 1억 2928만 달러(2020~2021)를 내고 있다. 중국은 현 사무총장 선출 때도 "향후 10조원을 기여하겠다"며 지지를 선언했었다.
경제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 '글로벌 팬데믹' 공포로 글로벌 주가지수와 국제유가 하락이 본격화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의 '팬데믹 통제 실패 시뮬레이션(이벤트201)'은 전세계 주가 40% 하락을 우려했다.

현실은

-'팬데믹'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않았을 뿐, 코로나19 발생국은 '팬데믹' 상황에 준해 봉쇄와 완화 전략을 동시에 쓰고 있다.
-각국은 '이동제한 조치', '해외 입국제한 조치'를 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4일 "코로나19는 팬데믹"이라고 규정했다.
-한국도 지난달 23일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격리 치료 등 봉쇄 전략과 함께 '장기전'을 대비한 학교 개학 연기 등 완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WHO도 1월 30일 코로나19 전염 상황을 '국제비상사태'로 선포했지만, "팬데믹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만큼은 "아니"라고 답해왔다.

더 알면 좋은 점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면, 세계은행(World Bank)의 팬데믹본드 기금(약 3억 2000만 달러)이 개발도상국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기금은 2017년 신종플루 때 출범했다.
-미국 서명·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에는 현 WHO 사무총장 사퇴 청원이 올라왔다. 찬성자는 11일 오후 5시 현재 45만명을 넘어섰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팩플] "그래서, 팩트(fact)가 뭐야?"
 이 질문에 답하는 게 [팩플]입니다. 확인된 사실을 핵심만 잘 정리한 기사가 [팩플]입니다. [팩플]팀은 사실에 충실한 ‘팩트풀(factful)’ 기사, ‘팩트 플러스 알파’가 있는 기사를 씁니다. 빙빙 돌지 않습니다. 궁금해할 내용부터 콕콕 짚습니다. ‘팩트없는 기사는 이제 그만, 팩트로 플렉스(Flex)해버렸지 뭐야.’ [팩플]을 읽고 나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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