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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마음의 기원, 전염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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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우리 마음의 뜻밖의 기원은 전염병이다. 우리 마음에는 선조들이 반복적으로 겪어왔던 전염병들의 흔적이 있다.

코로나가 불러올 의식의 변화 #외향성, 개방성, 창의성의 위축 #열린 마음과 개성 회복 필요

그동안 마음의 기원을 찾으려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왔다. 그중 최근 들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구가 전염병과 마음의 관계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뼛속 깊이 느끼고 있듯이 대규모 전염병은 라이프 스타일을 통째로 바꾸어 놓는다. 소비와 사교 패턴을 바꾸고, 일하는 방식을 바꾼다. 수업과 예배와 미사의 형식을 바꾸고, 축하와 애도의 방식까지 바꾼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런 일체의 변화들은 감염의 위험을 줄이려는 예방 행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문화와 의식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전염병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나

‘사회적 거리두기’ 행위들의 공통점은 ‘이동(mobility)의 제한’이다. 개인이 활용하는 공간의 범위가 축소되고, 국가들은 서로의 국경을 닫는다. 이동을 꿈꾸는 자들의 꿈은 유보되고, 다른 문화와의 접촉은 죄악시되기까지 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경계하고, 집이 아닌 공간들을 회피하게 된다.

이동성의 쇠퇴는 물리적 폐쇄성을 유발하고, 물리적 폐쇄성은 필연적으로 의식의 폐쇄성을 가져온다. 외집단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고, 내집단에 대한 응집이 공고해진다. 강력한 규범을 지배원리로 하는 집단주의 문화가 생겨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제한되고 침해받는다. 개성보다는 생존이, 개방성보다는 폐쇄성이 의식의 지배원리가 된다.

그러다 보면 개인 중심의 도덕보다는 집단 중심의 도덕이 우세하여 집단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 요구된다. 급기야 외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정당화되기 시작한다. 개인과 사회 모두 다른 사람과 다른 세상을 향한 마음을 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염병 지역일수록 외향성·개방성 위축

코로나 사태와 같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겪어왔다고 생각해보라. 바이러스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드라이브 스루(Drive-Thru)’와 같은 혁신적인 진단 시스템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에 대규모 전염병이 반복적으로 창궐했다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 전략은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폐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전염병이 창궐했던 지역들과 그렇지 않았던 지역들을 비교해보면, 이런 생각이 소설 같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나름의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상충, 뎅기열, 결핵과 같은 질병이 역사적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수준으로 창궐했는지 추정한 기록을 기초로, 일군의 심리학자들은 세계 230여 개 지역의 병원균 창궐 정도를 점수화했다.

이 점수들을 바탕으로 각 지역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마음의 기원이 전염병에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게 되었다. 우선 각 지역의 개인주의·집단주의 정도를 살펴보면, 대규모 질병이 창궐한 지역일수록 집단주의 성향이 강했다. 더 내성적이고 덜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향성과 개방성은 타인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접촉을 유발하는 요인이자, 그런 접촉으로 인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는 지역에서는 타인과의 접촉을 지향하는 외향성과 개방성이 위축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규모 감염병이 자주 발생한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창의성이 낮았다. 열린 마음이 창의성의 핵심임을 감안할 때 그리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다. 그런 지역일수록 민주주의 정도가 약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남긴 숙제, 닫힌 마음의 회복

전염병이 마음의 유일한 기원은 아니다. 그러나 전염병이 우리의 의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코로나 사태 이후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마음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의식의 개방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현관을 개방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집단에 근거한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의식의 저편에 은밀하게 생겨난 다른 인종과 다른 지역에 대한 미움을 내려놓아야 한다.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위축된 개인의 권리와 개성을 회복해야 한다. 영화관으로, 미술관으로, 콘서트 장으로 재빠르게 내달려야 한다. 의식의 폐쇄성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을 감염시키는 위험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